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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보내는 편지

이상훈 광화문 희망사진사

입력 : 2021.04.25 07:47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으로 출근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으로 출근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녕하십니까? 오세훈 시장님! 시장 당선과 취임을 서울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만 50세의 홈리스(노숙인) 남성입니다. 지금 영등포의 한 사우나에서 휴대전화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원고지 16매를 쓰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언론사 기자에게는 카카오톡으로 글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저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희망사진관’에서 사진사로 일했습니다. 고 박원순 시장 재임시절 사진작가 조세현 선생님의 제안으로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 교육 프로그램 ‘희망프레임’이 시작됐고, 2012년부터 매년 수십명의 노숙인이 사진을 배우고 시민청과 광화문광장에서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100만원 남짓한 적은 월급에 겨울 3개월, 혹서기 한달을 무급으로 쉬는 일자리였지만 참으로 소중한 일자리였고 자활의 터전이었습니다.

희망사진사들은 매년 희망아카데미 홈리스 사진문화대학에서 조세현 선생님을 도와 보조강사로 활동했고, 때때로 시골장터를 돌며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을 찍어드리는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진사로서의 역량을 꾸준히 키워나갔고, 다른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성장해 왔습니다. 2019년에는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희망사진관 2호점을 오픈하고 언젠가는 희망사진관을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여 자력으로 운영해 볼 꿈까지 꾸게 되었습니다. 2020년 봄이 되기 전까진 그랬습니다.
 

희망사진관 폐쇄로 사진사 생계 막막
2020년은 누구에게나 잔인한 한 해였겠지만 희망사진사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3월부터 문을 열기로 했던 광화문광장과 어린이대공원의 희망사진관은 코로나19 1차 대유행으로 일단 한달 늦춘 4월에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희망사진관 두곳을 깨끗하게 청소해 두고 미뤄진 오픈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고, 결국 4월에도 사진관 문을 열지 못한 채 한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을 맞게 되었습니다.

5월 코로나19가 주춤했을 무렵 서울시 자활복지과 담당자들이 희망프레임에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다시 일할 수 있게 되는 건가? 기대를 가지고 그분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질문은 모두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려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희망아카데미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구입한 카메라를 확인하고 예산을 어떻게 썼는지를 집요하게 확인하면서 희망사진관 재개관에 대해선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희망사진사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몇달간 받아왔던 구직급여는 끝나서 공공근로를 신청하거나 대리운전을 하고, 편의점 캐셔를 하면서 이제나저제나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6월 하순에는 도저히 이대로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박원순 서울시장께 보내는 편지를 시사주간지에 기고했습니다.

당장 사진관 문을 여는 게 어렵다면 희망사진사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다른 임무를 맡겨달라고 했습니다. 서울시 방역현장에 파견해 필요한 사진을 찍는 일에 투입해 달라고 했고, 코로나19로 위축된 일상을 보내고 계신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을 순회하며 찍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다시 문을 열 날을 기다리겠다는 각오를 전했습니다. 다행히도 이 기고문을 보셨는지 박원순 시장이 화답을 하셨습니다. 그간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홈리스 사진사 하성수(사진왼쪽)와 최범석씨가 2013년 3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사진관 1호점 개소식을 마친 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사진작가 조세현씨를 첫손님으로 찍고 있다./ 정지윤 기자

홈리스 사진사 하성수(사진왼쪽)와 최범석씨가 2013년 3월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사진관 1호점 개소식을 마친 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사진작가 조세현씨를 첫손님으로 찍고 있다./ 정지윤 기자

기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7월 초에 들려온 소식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박원순 시장의 실종과 사망이었습니다. 슬프고 화나고 허탈한 뉴스였습니다. 이제 희망사진관은 어찌 되려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시 응답소에 민원도 넣어봤습니다. 한달쯤 후에나 돌아온 답변은 코로나19 감염이 계속되고 있고 희망프레임 프로그램에 대한 감사가 진행되고 있어 희망사진관을 열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년 모두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홈리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오픈된 공간인 공공시설은 모두 문을 닫아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은 사라졌고, 마스크나 손소독제 등에서도 홈리스는 소외됐습니다. 왜 저희같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재난지원금은 따로 없는 건가요? 모든 국민이 다 받는 재난지원금을 한번 받았을 뿐 자영업자, 소상공인, 프리랜서 등이 받는 지원금을 홈리스들은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방역수칙 지키면서 일하고 싶어
서울에서 가장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런 지원 없이 어떻게 기본적인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오죽하면 노숙인인 제가 케이크와 화과자를 만들어 팔면서 동료 노숙인들을 돌보고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저도 지치고 힘들어서 제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몇년 전 다쳤던 어깨를 방치한 탓에 최근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올해가 작년과 같다면, 과연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도 크게 위축됐습니다.

희망사진관은 홈리스들에게 밥벌이 이상의 공간입니다. 저는 홈리스들이 이 공간을 기반으로 꿈을 가지고 일어서기를 바랐습니다. 이제 바라는 것은 새로 부임한 오세훈 시장께서 희망사진관의 재개관을 꼭 한번 검토해주시는 것뿐입니다. 시장께서 얼마 전 발표하신 ‘서울형 거리 두기’에서 전 한가닥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희망사진관에도 자가진단 키트를 갖추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나간다면 이 봄이 지나가기 전에라도 다시 문을 열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희망사진관을 통해 서울이 다시 깨어나는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서울시민의 밝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희망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시장님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마지막으로 제가 2019년 희망사진관 개관 때 낭독했던 자작시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나의 집은 광장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네

그대의 영혼이 잠시 머물 곳이네

오늘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당신은 다시 젊어지네

이렇게 젊어진 당신을 담았네

내 사진은 당신을 춤추게 하고

당신에게 힘을 불어넣어

소중한 순간들을 움켜쥐게 하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4250747001&code=940100#csidx5967d5de42fcfbc893742a0ce26bd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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