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고 본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때도 준비한 글을 읽으신다. 물론 준비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엄청 고친다고 들었다. 그건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세 분 대통령은 모두 반드시 본인의 언어로 다듬고 본인의 생각을 담아서 최종적인 글(말)로 완성한다." 강원국 작가.
"말을 잘한다고 대화를 잘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 말을 못해도 대화는 잘할 수 있고, 말 잘하는 사람이 오히려 대화에 서툴 수도 있다. 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화 역량이다. 대화를 잘하려면 경청, 공감, 질문, 이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오프라 윈프리나 유재석 모두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잘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등 글쓰기 3부작을 펴냈던 강원국 작가가 이번에는 '말하기' 책을 들고 돌아왔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년 여 동안 KBS 1라디오에서 강 작가가 진행을 맡았던 <강원국의 말 같은 말>의 방송 내용을 다듬고, 수십 꼭지의 새로 쓴 글을 보태 만들어졌다.
'실어증에 가까울 정도'로 말하기를 두려워했다는 강원국 작가. 그의 '말문이 트인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노 대통령의 말(연설문)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참모들의 말하기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야겠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면서부터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 아래서 일하면서 강 작가는 두 대통령으로부터 글쓰기와 말하기를 배운 셈이다.
"김대중은 글 같은 말, 노무현은 말 같은 말""김대중 대통령은 '글 같은 말'이다. 말씀하신 걸 풀어보면 그냥 글이 된다. 충분히 곱씹고 머리 속에서 퇴고까지 마친 뒤에 꺼낸 말씀이다. 연설할 때도 애드리브가 없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말 같은 말'이다. 현장에서 직접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김 대통령은 '연설은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셨고, 노 대통령은 청중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건, 전문가의 권위뿐만 아니라 말의 바탕에 따뜻한 '사람의 온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 작가는 말한다. 30대에 제1 야당의 수장이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말은 '쉽고 전략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준석의 말보다는 이준석으로 표출된 젊은 세대의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야권의 유력 대권 후보인 윤석열 전 총장은 앞으로 '말의 광장'에서 검증 받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작가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눈높이 말하기'라고 강조한다. 그가 꼽은 '눈높이 말하기의 7가지 기본 원칙'은, 눈을 맞추고 말해야 한다, 성향을 맞춰야 한다, 속도를 맞춰야 한다, 관심사를 맞춘다, 스타일을 맞춘다, 수위를 맞춰서 말해야 한다,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조언은 '말 안에 진실된 마음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국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12일 오후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1시간30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강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펴낸 강원국 작가가 말하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말의 특징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 기업 CEO나 고위 공직자의 경우 글 쓸 일보다 말 할 일이 많다. 그런 분들이 종종 말하기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제가 예전에 했던 대통령 연설문 작업도 결국은 '말'이었으니까. 출판시장도 글쓰기보다 말하기 책의 비중이 더 높다.
또 하나는, 글쓰기의 출발점이 말하기라는 것이다. 강의를 해보니 더욱 절감한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말하기가 먼저다. 그런 상황에서 말하기를 얘기하지 않고 글쓰기만 얘기하는 건 뭔가를 건너뛴다는 느낌이었다. 말하기의 내용은 나중에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돌이켜보니까, 제 자신도 말을 먼저 하고,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책으로 펴냈던 거였다."
- 말하기와 글쓰기, 어느 게 더 힘든가.
"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연설도 있고, 토론도 있고, 발표도 있고, 대화도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기고문과 SNS의 글은 차이가 크다. 종류에 따라 말이 편하기도 하고 글이 편하기도 하다. 예전에는 글이 더 편했는데, 요즘에는 말이 더 편한 것 같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늘지만, 느는 속도는 말하기가 훨씬 빠르다. 말은 상대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뇌가 학습하고 다른 말을 반영한다. 말은 하는만큼 비례해서 느는데 반해, 글은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주로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어느 순간이 되면 정체기를 맞는 시점도 온다. '작가의 벽에 부딪혔다'는 순간이다."
"글쓰기보다 말하기 실력이 더 빨리 는다"
- 강원국의 말과 글의 특징은 무엇인가.
"글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께 배웠다. (주로 연설문을 쓰다보니) 단문이고, 수식이나 수사를 많이 구사하지 않는, 담백하고 간결한, 메시지 전달에 신경을 쓴 글이다. 그래서 저는 논쟁을 벌이거나 누구에게 감동을 주는 글쓰기에 취약하다. 다만, 스토리텔링과 서사(敍事) 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고 본다. 직접 겪은 일화나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얘기하는 것도 잘 한다."
-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예전에는 실어증에 가까운 상태였다. 조별 토론은 물론이고, 짧게 자기소개 하는 것조차 내 차례가 돌아오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사적으로, 한두 사람과 대화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발표하고 토론하는 공적인 말하기를 어려워했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말수가 적으니 오히려 진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비서 생활을 할 때는 그런 점이 덕목처럼 여겨져서 덕을 봤다.
그러다 벽에 부딪힌 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나서부터다. 노 대통령은 말수가 적은 참모를 좋아하지 않는다. 토론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참모를 좋아한다. 그때부터 '나도 말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쓴 것은 결국 그 분들의 '말'을 쓴 것이고, 그 분들로부터 말을 배운 것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해'라고 제게 첨삭지도를 해주신 셈이다."
▲ "흔히 사람들은 답변하는 사람(인터뷰이)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질문하는 사람(인터뷰어)이다. 답변이라는 건 결국 질문을 듣고나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를 이끄는 것도 "질문"에 우선권이 있다." 강원국 작가.
"말하기와 글쓰기의 소재가 소진됐을 때다. 다 말해버려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쟤, 밑천 떨어졌구나', 사람들이 잘 안다. 다른 경우는, 내가 느끼는 내 수준보다 더 나은 걸 보여주려고 할 때 그렇다. 말이건 글이건 간에 내 생각의 깊이나 수준보다 더 나은 것처럼 보여주려고 하면 어려워진다. 포장을 하려고 하니까.
'이게 나의 한계구나'라고 느낄 때 슬럼프가 찾아온다. 그럴 때는 그냥 쉬거나 공부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쉬면서 재충전하거나 공부를 해서 새로운 걸 채워야 한다. 제가 '말하기'라는 주제로 눈을 돌린 것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말 공부를 통해서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사람은 다 퍼내서 고갈된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 오른다."
- 글이나 말이 그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렇다. 저는 스피치 작가에서 강사·저자가 되고, 나중에는 저의 말과 글로 발전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겠지만) 그 과정에서 수입도 생기고 나름 지명도도 얻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제대로 하게 되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나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힘이 생긴다. 계속 하다보면 실력도 늘어난다. 말과 글이 나아진다는 것은 내가 성장한다는 거다. 내 말과 글의 수준이 높아지면 내 수준이 높아진다.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고."
"강자의 말하기는 두괄식, 약자는 미괄식"
- 말에도 태도와 스타일이 있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강자와 약자의 말은 어떻게 다른가.
"윗사람의 말은 구구절절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아랫사람들은 전제를 달거나 설명을 한다. 그런 점에서 강자의 말은 결론부터 꺼내는 '두괄식', 약자의 말은 과정을 설명한 뒤에 결론을 얘기하는 '미괄식'에 가깝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런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두괄식은 결론부터 얘기하니까 미괄식에 비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더 있다."
- 책에서 "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화의 역량"이라고 했는데. 상대방의 말을 잘 이끌어내려면?
"질문을 잘 해야 한다. 대화나 토론을 할 때 질문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의 역량도 결국 스스로 '질문하는 힘'에 달려있다. 대본에 쓰여져 있는대로 하는 질문을 넘어서는 질문을 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 그리고 제대로 된 질문을 하려면, 먼저 사안에 대해 이해를 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주도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저도 라디오 진행을 해봤는데 부족함을 절감했다.
흔히 사람들은 답변하는 사람(인터뷰이)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질문하는 사람(인터뷰어)이다. 답변이라는 건 결국 질문을 듣고나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를 이끄는 것도 '질문'에 우선권이 있다. 오래 전 제가 모셨던 대기업 회장님께서 '높은 사람은 3심이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욕심, 변심, 의심. 여기서 '변심'은 변화에 뒤쳐지지 않는 것, 의심은 반문하는 힘을 뜻한다."
▲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전문가의 권위가 유능함이라면, 사람의 온도는 따뜻함이다. 정 청장의 말은 그러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코로나의 고통에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저 사람, 진심이다"라는 게 그냥 전달된다." 강원국 작가.
-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말하기는 심리다"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을 김대중 대통령께서 좋아하셨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경제가 좋아질 거다'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가지면 실제로 좋아진다는 뜻으로 쓰셨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의 '합리적 기대가설'의 요지를 '경제는 심리'로 이해하고 제가 대통령 연설문에 넣었는데, 김 대통령께서 그걸 채택하셨다.
김 대통령께서 그 말씀을 계속 하시니까, 어느 날 경제수석이 연설담당관실에 오더니 '그 말을 누가 (대통령께) 입력해드렸냐'고 묻더라. '합리적 기대가설'과 '경제는 심리다'는 그렇게 연결되는 게 아니라면서. 그래서 저는 혼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웃음). '말이 씨가 된다'고 하고, 말의 어원이 마음에서 왔다고 하듯이 그야말로 '말은 심리'라고 할 수 있다."
-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어떤 특징이 있나.
"김대중 대통령은 '글 같은 말'이다. 말씀하신 걸 풀어보면 그냥 글이 된다. 충분히 곱씹어서 머리 속에서 취사선택해 퇴고를 한 다음에 꺼낸 말씀이다. 연설할 때도 애드리브가 없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말 같은 말'이다. 글로 옮기려면 다소의 교정이 필요하다. 물론 말 자체의 강점을 갖고 있어 현장에서 직접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걸 잘 안다. 글 쓰는 참모를 불러 본인의 생각을 구술할 때도 '내가 받아적으라고 할 때 받아 적으세요'라고 하신다. 말씀을 하면서 정리를 하고, 정리가 어느 정도 되면 본격적으로 (받아쓰기용) 구술을 한다. 그때부터는 '글 같은 말'이 된다.
김 대통령은 '연설은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셨다. (말도) 결국은 글로 남는다는 것. 그러니까 '글 같은 말'에 방점을 두셨다. 노 대통령은 청중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현장에서 연설할 때 청중과의 교감이 잘 이뤄졌다. 두 분 대통령의 '글 같은 말'과 '말 같은 말'은 차이가 있지만, 두 분 모두 그 내용을 연설 전에 이미 다 본인의 것으로 만드셨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말과 글에 애착 강해"
-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스타일에 가깝다고 본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때도 준비한 글을 읽으신다. 물론 준비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엄청 고친다고 들었다. 그건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세 분 대통령은 모두 참모가 써준 것을 그대로 읽지 않는다. 반드시 본인의 언어로 다듬고 본인의 생각을 담아서 최종적인 글(말)로 완성한다."
-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께 야단을 많이 맞았나.
"김대중 대통령 때 저는 일개 행정관이었기 때문에 직접 혼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때는 비서관이었기에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사보타주 하는 거냐, 하기 싫으면 그만 두라'는 질책을 들은 적도 있다. 물론, 일을 제대로 못 했을 때 그랬다.
취임 이듬해, 매우 중요한 3·1절 연설문을 작성할 때였다.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에게 단호하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셨다. 그런 대통령의 뜻을 전달해준 분께서 조금 누그러뜨려 말씀을 했고, 연설비서관실에서는 더 누그러뜨리다보니 하나마나한 말이 돼 질책을 받았다. 제가 행정관 때 일이다. 노 대통령은 말과 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연설비서관실 방을 비서동에서 대통령 집무실 옆으로 옮기게 했을 정도다."
▲ "이준석 대표의 말은 직설적이고 전략적이다. 피아(彼我)를 구분하면서, 아군을 끌어모으는 전략이 있다. 비유나 예시에도 능하다. 선문답을 안 하고, 쉽게 알아듣도록 말한다. 한편으로는 핵심으로 바로 치고들어가는 힘이 있다. 그런 말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들을 때는 시원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남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강원국 작가.
-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임기말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할 때도 "정치는 말이 90%입니다"라고 말씀할 정도로 '말'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정치인은 말을 통해서 자기 생각이건 정책을 국민들에게 전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인은 말을 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연설문을 스스로 쓸 수 없는, 참모가 써준대로만 읽는 정치인은 국회의원이나 리더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국민을 대리해 국민의 생각을 말로 전하는 정치인이 자신의 말을 남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에 관한, 강원국 작가의 예전 기고문이 인상적이었는데.
"정은경 청장의 말에는 좋은 의미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있다. 정 청장의 말을 사람들이 신뢰하는 바탕에는 '사실(fact)'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권위 있는 사람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네가 뭐 그리 똑똑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정 청장의 말에 호의적인 건, 그의 말에서는 듣는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과 애정, 사랑, 이와 같은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전문가의 권위가 유능함이라면, 사람의 온도는 따뜻함이다. 정 청장의 말은 그러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코로나의 고통에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저 사람, 진심이다'라는 게 그냥 전달된다. 그런 면에서 정 청장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정은경 청장의 말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 30대 정치인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됐다. 이준석 대표의 말을 어떻게 평가하나.
"말의 힘으로 큰 조직의 대표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이준석 대표는 말의 힘이 컸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전략적이다. 피아(彼我)를 구분하면서, 아군을 끌어모으는 전략이 있다. 비유나 예시에도 능하다. 선문답을 안 하고, 쉽게 알아듣도록 말한다. 한편으로는 핵심으로 바로 치고들어가는 힘이 있다.
그런 말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들을 때는 시원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남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세를 결집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 대표는 10년 동안 적극적으로 방송에 나가서 말 공부 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당 대표가 됐다고 할 수는 없다.
'이준석'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들의 특징이 있다. 유튜브 세대인 그들은 똑똑하다. 어찌보면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똑똑한 첫 세대다. 역전이 일어난 거다. 이전 세대의 경험이 그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전 세대도 그들을 가르칠 능력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이전 세대들이 젊고 똑똑한 자신들에게 (사회·정치적인) 기회를 잘 안 준다고 여기는 것 같다. '자기들은 젊었을 때부터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해놓고, 왜 똑똑한 우리들에게는 기회를 안 주느냐'는.
그런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 깊게 묻어져있던 다이너마이트가 '이준석'으로 터진 게 아닐까 싶다. '이준석 현상'은 거기에 불을 붙인 셈이다. 젊은 세대의 한 축은 이준석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생각한 거고. 이준석이 그 세대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더 컸다고 본다."
- 야권의 유력 대권 후보로 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말은?
"그 분의 말은 아직 뭐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 한 마디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정치로 뛰어든만큼 윤석열 전 총장도 '말의 광장'에서 검증 받아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현재로서는 그의 말을 들어본 게 없고, 이미지로만 남아있다. 윤 전 총장이 전략적으로 말을 아끼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선에 나선다면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일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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