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북한공작원 김현희에 의해 공중폭파됐다고 발표된 ‘KAL858기 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13일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 달라며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했다.
2007년 1기 진실화해위가 진상규명에 착수했지만 유족들이 철회한 뒤 14년 만에 재신청한 것. 지난해 1월 대구MBC는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 KAL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촬영해 보도했지만, 코로나19와 미얀마 정국의 불안정으로 아직 본격적인 현지조사는 추진되지 못한 상태다.
‘대한항공 KAL858기 탑승객 유가족’들은 13일 오후 2시 신청서 접수에 앞서 진실화해위가 위치한 서울 충무로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의 사회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김호순 ‘대한항공 KAL858기 희생자 유족회’ 회장은 “앞으로 동체 확인과 유해 발굴을 위해 수색을 해야 하는 시급하고 중차대한 과제가 남아 있는 이 때, 유족회는 오늘 과거사위원회에 KAL858기 사건을 접수하여 그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며 “새로 출범한 과거사위원회가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임옥순 ‘KAL858기 사건 가족회’ 회장 등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던 115명의 탑승객들은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며 “34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지만 유가족들의 참담한 고통은 오늘까지 쌀 한 톨의 무게만큼도 덜어지지 않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들은 △이 사건에 안기부가 개입하였거나 사전에 인지하였는지, △KAL858기는 정말 폭탄에 의해 폭파되었는가, △1987년 대통령선거에 적극 활용하였다는 ‘무지개공작’의 실체, △유가족들이 정권에 의해 반북한 활동에 이용되고 공안기관의 감시와 미행 등 정신적‧물리적 인권침해를 당했는가, △김현희는 진짜 북한공작원인가 등에 답해 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통해 미얀마 해역으로 정부 조사팀을 파견하여 KAL858기 추정동체 사실 확인 조사를 진행하여 실체적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13일 통일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며 “가급적 최대한 (현지 조사가) 조기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간다는 기본 방침 그대로다”고 재확인했다.
유족들은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하여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들을 풀어주고 잘못된 것들은 바로잡아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이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덕진 상임활동가는 “제출하는 증거자료들은 모두 우리 민간이 수집한 것들”이라며 “진실을 바라왔던 저희를 과거 정부는 감시까지 하며 인권침해를 했고, 그러면서도 사건 의혹에 대해서는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 KAL885기 사건은 진실규명이 꼭 필요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진실화해위 민원실을 방문해 신청서를 접수했고, 유족 대표들은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박은경 가족회 부회장은 면담 결과에 대해 “김덕진 상임활동가가 1기 진실화해위 당시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 설명했고, 김현희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 보면 좋겠다는 점과 잔해 추정 물체 수색에 진실화해위도 합류해 줄 것 등을 요청했다”며 “정 위원장은 진상규명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KAL858기는 아부다비와 방콕 사이에서 실종됐고, 2006년 국정원과거사위는 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을 밝혀내는데 그쳤고, 2007년 1기 진실화해위도 조사를 개시했지만 한계를 확인하고 유족들이 신청을 취소한 바 있다.
대한항공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찾아 다시 걸음을 내딛습니다.
- KAL858기 탑승객 유가족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신청에 부쳐 -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마지막이 가까웠던 34년 전인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KAL858기는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태국 방콕을 거쳐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이 비행기는 미얀마(당시 버마) 해역에서 사라져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던 115명의 탑승객들은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잔해는 물론 유해나 유품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추락했다던 KAL858기는 ‘북한공작원 김현희’에 의한 폭탄 테러로 공중에서 산산조각 난 폭파사건으로 결론났고 대통령선거 하루 전 압송된 김현희는 뉴스에 생중계되며, 6월 항쟁으로 처음 실시된 대통령 직선제에서 민주주의 세력에게 패할 위기에 처했던 노태우 후보의 대한민국 13대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 발전협의회> 조사를 통해 밝혀지고 외교부 비밀문서공개로 확인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에는 “북괴의 테러공작임을 폭로하고 확산시켜 국민들의 대북경각심과 안보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가능한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이라고 이 공작의 목표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구체적 실행계획에는 ‘대통령선거일인 12월 16일 이전에 수사중간결과를 반드시 발표한다’고 되어 있고 실제로 투표 직전인 12월 15일 김현희를 압송했던 것입니다.
당시 안기부의 수사결과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100명이 넘는 국민이 목숨을 잃은 테러‘공작’을 정권을 이어가기 위한 정치‘공작’으로 활용한 참담한 정부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묻고 사과는 누구에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34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지만 유가족들의 참담한 고통은 오늘까지 쌀 한 톨의 무게만큼도 덜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다는 실낱같은 믿음에 이사도 안가고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은 채 살아가는 유가족들도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채 입학하지 않았던 자녀들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되었고 중동에서 ‘산업역군’으로 수년을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가장들을 잃은 아내들은 눈물과 한으로 자녀들과 그 긴 세월을 살아냈고 이제는 손주들을 돌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실종자 가족들의 일상을 수시로 감시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말 한마디 할 수 없게 협박했으며 반북한 집회에 동원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국가의 보살핌과 위로를 받아야 했던 유가족들을 오히려 짓밟고 억압하여 인권을 침해한 참담한 과거 역시 반드시 드러나야 합니다.
KAL858기 유가족들은 34년간 변함없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사건에 안기부가 개입하였거나 사전에 인지하였는지 여부, KAL858기는 정말 폭탄에 의해 폭파되었는가 여부, 1987년 대통령선거에 적극 활용하였다는 ‘무지개공작’의 실체여부, 유가족들이 정권에 의해 반북한 활동에 이용되고 공안기관의 감시와 미행 등 정신적‧물리적 인권침해를 당했는가 여부, 김현희는 진짜 북한공작원인가 여부 등 유가족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의혹 없이 답 해주길 바래왔습니다.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통해 미얀마 해역으로 정부 조사팀을 파견하여 KAL858기 추정동체 확인 과정을 진행하여 실체적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또,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하여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들을 풀어주고 잘못된 것들은 바로잡아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이라 희망하고 있습니다.
1987년 이후, 진실을 바라던 많은 유가족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이상은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신속하게 조사개시를 결정하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KAL858기 사건을 조사하여 위에 언급한 핵심 의혹들을 비롯한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기를 다시한번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대한항공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찾아 다시 걸음을 내딛습니다.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와 언론, 그리고 국민들께서 끝까지 지켜보고 힘 모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2021년 10월 1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하며
대한항공 KAL858기 탑승객 유가족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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