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물가 관련 현장 방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수 오차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송구하단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하반기 경제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이 정부 목표나 예상과는 좀 달리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진 결과로 초과세수가 발생했다”며 “당 측에서 정부의 고의성을 언급한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한 반대 입장도 거듭 내비쳤다. 홍 부총리는 “재정 당국으로서 늘 그래왔듯이 모든 정책·예산의 최종 지향점은 국가와 국민”이라며 “재정 운용에 있어 재정 원칙과 기준을 견지하려는 점은 기본적인 소명”이라고 했다.
전날 오후 기재부는 보도참고 자료를 내고, 지난 7월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당시보다 약 19조원 규모의 초과세수가 전망된다고 밝혔다.
초과세수란 예산 편성 당시 예측한 세수 규모와 실제 세수 규모 간 격차를 의미한다. 2차 추경 때는 올해 세수를 본예산(282조 7천억원)보다 31조 5천억원 늘어난 314조 3천억원으로 추계했는데, 4개월이 지난 현재 올해 세수 예상치가 333조 3천억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그간 기재부는 2차 추경 대비 초과세수를 10조원대 초반 수준으로 예측했다. 세수 예측 오류가 발표된 날 오전까지도 최영전 기재부 조세분석과장은 초과세수에 대해 “홍 부총리가 국회 질의답변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말씀한 10조원대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10조원이 조금 넘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초과세수 예측 오류는 기재부가 아닌 여당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YTN 라디오에 출연해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올해 초과세수액이 7월 정부가 예상했던 31조원보다 훨씬 많은 50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윤 원내대표는 기재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한해 50조원을 넘은 세수를 세입 예산에 잡지 못한 건 재정 당국의 심각한 직무유기를 넘어선 책무유기”라며 “기재부 말만 믿었다가 내년도 경제 정책 결정에 큰 오판을 할 뻔했다”고 짚었다. 또한 “예상보다 많은 세수가 있다면 정부·여당의 철학과 책무를 따라야지 관료들의 주판알과 탁상행정에 따를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경제 정책과 초과세수 활용처가 언급된 배경에는 6차 재난지원금이 있다. 여당이 당초 예측된 초과세수 10조원을 활용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추진하는 가운데, 기재부가 재정건전성과 법적 제한을 운운하며 반대하던 터였다.
윤 원내대표가 기재부의 세수 예측 오류에 고의성을 의심하면서 국정조사를 거론하고 기재부가 부인하는 형국도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갈등을 바탕으로 한다.
기재부가 세수 예측 오류를 발표하면서 초과세수 사용처를 명시한 대목은 초과세수를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기재부는 “추가적인 초과세수는 최대한 올해 안에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손실보상에서 제외된 업종에 대한 맞춤형 지원 대책 등에 활용하고, 나머지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내년 세계잉여금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세수 납부 유예로 ‘방역지원금’ 재원 마련 방안 제시
민주당은 이번 달 들어 전국민 재난지원금 추진을 공식화했다. 지난 4일 우원식 의원이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초과세수를 활용한 재난지원금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언급한 데 이어, 8일 박완주 정책위의장이 전국민 1인당 20만∼25만원이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민주당 내에서 조율된 1인당 재난지원금 지급액은 20만원이다.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재원 총 10조 3천억원의 증액안을 예결위로 넘겼다. 국비는 8조 1천억원이며, 나머지 2조 2천억원은 지자제가 분담한다.
재원 마련 방안도 점차 구체화됐다. 윤 원내대표는 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 일상 회복과 개인 방역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민 위드코로나 방역지원금 지급을 추진하겠다”며 “내년 1월 회계연도가 시작되면 최대한 빨리 국민에 지급해, 개인 방역에 힘쓰는 국민의 방역물품 구매와 일상 회복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재난지원금’을 ‘방역지원금’으로 추진해, 기존 방역사업 예산을 늘린다는 전략이다. 기존 세목 증액은 정부 동의로 가능하지만, 세목 신설은 야당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재난지원금 관련 사업이 없어, 새로이 세목을 세워야 한다.
민주당은 지급 시기를 앞당기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초과세수분 납부를 유예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올해 걷을 초과세수를 내년 1분기에 납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납부를 유예해 내년에 내도록 하면 이 금액을 바로 연초에 재난지원금으로 지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회계처리에서 초과세수로 잡히면 내년 4월 결산 이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초과세수는 여러 가지 정산 절차와 분할과정을 거쳐야 한다.
초과세수 중 40%는 지방교부세와 교부금 정산에 배정하고, 30%는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자와 채무 상환에 써야 한다. 나머지 30%는 다음 연도 세입으로 들어간다. 초과세수일 때와 납부유예를 통해 내년 세입으로 잡힐 때 지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 규모와 시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재정건전성·법 위반 내세워 ‘또’ 반대 나선 기재부
앞선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 때도 난색을 보이며 여당과 부딪혀 온 기재부는 이번에도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홍 부총리는 ‘보편 대 선별’ 논란을 다시 소환했다. 그는 5일 국회 예산결산특위 종합정책질의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자 “여러 여건을 본다면 전국민한테 드리는 방식보다는 맞춤형으로 필요한 계층과 대상에 대해 집중해서 드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재정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도 반복됐다. 홍 부총리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이라며 “위기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코로나 위기가 어느 정도 통제되면 재정도 안정화 기조로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기재부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반대 논리를 구축해갔다. 재원 마련을 위한 납부 유예의 법적 문제를 제기했다. 홍 부총리는 10일로 이어진 예결특위 질의 과정에서 납부 유예에 대해 “국세징수법 유예 요건에 안 맞는 것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납부 유예해 주면 법에 저촉되므로 그런 측면에선 어렵다”고 말했다.
국세징수법과 국세기본법상 납세 유예 조건은 납세자가 재난·도난으로 재산에 심한 손실을 본 경우, 사업에 현저한 손실이 발생하거나 부도·도산 우려가 있는 경우 등으로 제한된다. 기재부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납세 유예가 법상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본다.
민주당 설명은 다르다. 윤 원내대표는 납부 유예가 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가짜뉴스’로 규정하면서 “납세 유예는 필요에 따라 매년 있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정책위의장도 “국세청은 국세기본법과 시행령에 의해 매년 납부 유예 조치, 납부 기한 연장을 하고 있다”며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법인세, 부가세, 유류세, 주세 등에 대해서도 징수를 유예해 올해 7월 추경 재원으로 활용한 전례가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당정 갈등에서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16일 MBC 라디오에 나와 재난지원금 논쟁과 관련해 “청와대가 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공은 국회로 넘어가 있으며 여야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홍 부총리 설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에서 여야 간 얘기를 나누는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제 국회가 논의해야 할 때”라며 “단도직입적으로 여기에 동의하는지 저기에 동의하는지 답변할 사안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한편, 국회 예결위는 전날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열어 예산안 심사에 착수했다. 국민의힘이 재난지원금 예산안에 반대하는 가운데, 국회는 여야가 합의한 처리 기한인 오는 29일 전체회의에서 예산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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