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야 그냥 한다 해도…다음 세대는요? 지금 시스템으로 밀고 간다면 누가 요양보호사 하려고 하겠어요? 제가 돌봄 받아야 할 때 절 돌봐줄 사람이 있을까요?”
아픈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박선화(민주노총 전국요양서비스노조 광주지부장) 씨가 절망스럽게 말했다. 요양보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쉬운 해고, 저임금, 초단시간 또는 초장시간 노동, 산재, 각종 폭력까지 아동·노인·장애인 등 공공분야 돌봄 현장에 한국사회 모든 노동 문제가 집약돼 있었다.
코로나 시대 돌봄노동자는 필수노동자로 인정받았다. 돌봄이 멈추면 가정이 멈추고 사회가 멈춘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봄이 중요하다는 인식, 딱 거기까지다. 그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까지 관심이 가닿지 않았다.
돌봄노동자를 쥐어짜는 구조를 만든 건 정부다. 공공분야 돌봄서비스는 대부분 공적재원으로 민간을 통해 제공된다. 돈 내는 사람 따로, 굴리는 사람 따로다. 관리·감독이 허술하면 눈먼 돈이 되는 건 순간이다. 인건비로 정해진 돈이 노동자에게까지 온전히 가지 않는다. 인건비 착복은 이익 창출이 1순위인 민간이 이윤을 남기는 대표적 방법이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도 가성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돌봄노동자가 불행하면 좋은 돌봄은 불가능하다.” 요양보호사, 아이돌보미, 어린이집 보육교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민중의소리〉와 만난 9명의 돌봄 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용자 한 마디면 하루아침에 해고
“내일부터 오지 말어” 방문 재가 요양보호사 이미영(전국요양서비스노조 인천지부장) 씨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수개월 돌봐드린 어르신 집 화장실이 2개인데, 어르신용 화장실이 아닌 가족용까지 청소하라는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사람 여럿 잘랐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어르신이었다.
재가 요양보호사 외에도 장애인활동지원사, 아이돌보미 등 방문재가 돌봄 노동자 모두가 언제 일이 끊길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다. 극심한 고용불안이다.
돌봄서비스 이용자 집에서 혼자 일한다는 빌미로 가족들의 식사, 청소, 빨래까지 요구받는다. 돌봄노동자는 가사노동자와 다르다. 돌봄 대상자가 아닌 가족 관련 가사는 업무 범위 바깥의 일이다. 처음엔 거절도 해봤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은 해주셨는데…’ 한 마디면 속수무책이다.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겠다는 무언의 압박이다.
이용자 한 마디에 생계가 달렸으니 무리한 요구도 참을 수밖에 없다. “아침에 갔더니 (이용자가 현관) 비밀번호를 바꿨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기분을 맞추어 줬어요. 당장 카드값을 어떻게 하겠어요.” 장애인활동지원사 김후남(공공연대노조 인천본부 장애인활동지원사 지부장) 씨는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열 번이 되고 일상화되는 거죠.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일을 잘한다는 건 장애인뿐 아니라 그 가족의 모든 분야까지 다 돌본다는 뜻이에요.”
이용자의 단순 변심 외에도 입원·사망 등 사정 변경도 돌발 변수다. 코로나 시기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방문재가 돌봄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속출했다.
방문형 돌봄노동자들의 극심한 고용불안 원인은 ‘호출노동’
돌봄노동자의 고용주는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라 서비스제공기관이다. 즉, 이용자가 서비스를 취소하는 것이 곧바로 ‘해고’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처럼 ‘쉬운 해고’는 어떻게, 왜 벌어질까?
고용 형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돌봄 노동자 대다수가 계약직 시급제다. 1년 단위 재계약이 가장 흔하다. 그런데, 돌봄노동자들의 고용형태는 일반적인 계약직과 다르다. 고용주에게 고용돼 있지만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고용주가 필요할 때만 불러서 일을 시킬 수 있다.
예를들어 어떤 요양보호사가 있다고 했을 때, 고용주는 하루 3시간만 일을 시켰다가 다음 달에는 하루 6시간 일을 시킨다. 하루 3시간을 일한 달과 하루 6시간 일한 달의 임금차이는 두 배다. 요양보호사가 하루에 한 명의 어르신을 돌보는 시간이 보통 3시간이다. 즉, 고용주가 한 요양보호사에게 한 명의 이용자를 연결하느냐, 두 명의 이용자를 연결하느냐에 따라 요양보호사의 임금이 달라진다.
이런 형태의 노동을 호출 노동이라고 부른다. 고용주가 필요할 때만 노동자를 부르는 (호출. call) 식이다. 최소한의 노동 시간도 정하지 않은 ‘제로 시간’ 계약도 있다.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불안정 노동의 끝판왕이다.
서비스기관으로선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이용자가 더 중요하다. 이용자가 있어야 정부 지원금이 들어온다. 이용자 한 명 한 명이 곧 돈이다. 갈등이 생기면 중재하기보다 이용자 붙잡기 바쁘다. 노동자는 교체하면 그만이다. 노동자로선 일이 끊기면 수입이 없어져 사실상 해고인 셈이다.
근로 계약이 종료되지 않는 이상 인건비는 발생한다. 고용주는 고용주 사정으로 노동자에게 일거리를 제공하지 못한 경우 평균임금의 70%인 휴업수당을 줘야 한다. 휴직 기간이라도 건강보험료는 내야 한다. 이 돈이 아까워 사직서를 강요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김후남 씨는 말했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라도 30일 전부터 예고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해고예고수당을 줘야 한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고용주의 각종 꼼수는 더 있다. 요양보호사 업계에선 지난해부터 신종 근로계약서가 등장했다고 이미영 씨는 말했다. “계약 기간에 ‘수급자 입소·입원·사망 등 기타 사정으로 인해 계약 기간이 자동 해지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달리고 있어요. 기타 사정에 이용자 변심이 포함되는 거죠. 이런 단서가 달린다고 해도 부당해고입니다.”
결국,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제 발로 나간다. 센터와 갈등이 생기기라도 하면 금새 지역에 소문이 난다. 돌봄기관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잘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퇴사기 때문에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월급에서 꼬박꼬박 4대 보험료가 빠져나가는데, 정작 필요할 땐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아이돌보미 배민주(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 분과 부분과장) 씨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노동자는 여러 기관에 발을 걸칠 수밖에 없다. 요양보호사는 잦은 이직으로 장기근속수당이 있어도 하늘의 별 따기다. 같은 이름의 센터에서 일해야 근속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또 사업장이 여러 개로 늘어나면서 총 노동 시간이 월 60시간을 넘겨도 합산되지 않아 4대 보험의 보호조차 못 받는다.
고용주가 이런 상황을 다시 악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근속수당과 퇴직금 등을 주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3개월, 6개월씩 단기계약하거나 서비스를 연결해주지 않아 1년 안에 퇴사하도록 한다.
‘부당해고를 하면 안 된다’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상식이 있다. ‘일한 만큼 줘라.’ 다시 말해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과 법정 수당을 지급하라는 취지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이 돌봄 노동 현장이다. 이미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이들이다. 벼룩의 간을 떼먹으려는 행태를 직군별로 살펴본다.
재가 요양보호사
요양보호사의 시급은 대략 1만1천 원이다. 대략이라고 한 이유는 센터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장기요양위원회에서 임금을 정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센터에 수가(임금+운영비)를 내려보내지만, 정확한 액수 대신 수가 중 인건비 비율(올해 기준 방문요양 86.6%, 노인요양시설 60.5%)만 지키도록 정했다.
정부의 지원금이 복지부에서 요양보호사 통장까지 가는 과정에서 돈이 줄줄 새고 있다. 지난 7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사에 따르면, 방문 센터의 80%가 정부가 정한 인건비보다 적게 지급하고 있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1천268원을 덜 받은 셈이었다. 2018년 복지부 점검 때(961원)보다 금액이 더 커진 상황이다.
센터의 임금 가로채기 꼼수는 전형적이었다. 주 15시간, 월 60시간의 벽이 대표적이다.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수당, 연차휴가, 퇴직금, 연차휴가 규정에서 제외된다. 즉,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고 퇴직금도 쌓이지 않는다. 월 60시간 미만인 단시간 노동자는 4대 보험 가입대상이 아니다. 센터는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목적으로 주 14.5시간 또는 월 59.5시간 노동을 하도록 한다.
초단시간 노동, 단시간 노동은 어떻게 벌어질까. 현장에서 3시간이 한 세트인데, 19일간 3시간씩 일하고 마지막 날 2.5시간 일하도록 해 59.5시간을 채우는 식이다. 이용자에게도 불이익이라고 박선화 씨는 지적했다. “하루에 3시간씩 서비스받을 수 있는 어르신인데도 2.5시간씩 주는 센터들도 많아요.”
이런 행태는 횡령과 마찬가지다. 요양보호사에게 지급되지 않은 돈은 센터 몫이다. 복지부에서 정한 임금에 각종 수당과 4대 보험료 등이 포함돼있다. 센터가 월 60시간보다 적게 일 시킨다고 해서 건강보험공단이 4대 보험료를 회수하지 않는다.
새는 돈은 또 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만 65세 이상 신규 채용자에게 실업급여분에 대한 고용보험료를 해당 노동자에게 직접 주도록 하고 있으나 이를 받아본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이미영 씨는 말했다.
요양보호사가 아닌 민간 사업자 통장으로 들어간 돈은 공공 재원이다. 요양 재원은 국고지원금과 건강보험료 등으로 마련된다.
“세금이 개인들 이익 창출에 쓰이는 게 맞나요? 너무 아까워 죽겠어요. 저는 제가 낸 보험료가 고스란히 우리 부모님과 부모님을 돌봐주는 요양보호사에게 갔으면 좋겠어요.” 전지현 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활동지원 역시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복지부가 낮은 수가를 책정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은 수가에서 75%를 인건비로, 나머지 25%를 운영비로 쓰도록 했는데, 인건비만 해도 수가 전제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2021년 기준 지원 수가는 1만4천20원이다. 최저임금 8천720원에 각종 수당과 퇴직금, 4대 보험료 등까지 합하면 1만3천342원으로 수가 대비 인건비 비율은 95%라고 이주남 공공연대노조 조지국장은 꼬집었다.
“제대로 인건비를 주면 운영비가 안 남잖아요. 인건비 대비 운영비가 적어서 센터가 활동지원사에게 줘야 할 법정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어요. 이 구조로는 최저임금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최근 문제가 된 부분은 연장근로수당이다. 주 52시간제 적용 사업장에 돌봄 영역이 포함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주 52시간제는 주 40시간에 추가 근무로 1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제도다. 주 40시간이 넘어가면 연장 수당이 발생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 점을 빠뜨린 채 수가를 결정해 연장 수당은 센터의 추가 비용으로 남았다.
센터는 근로시간을 제한했다. 주 40시간이 넘는 지원 계획서는 반려됐다. 장애인활동지원사뿐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부정적이라고 이주남 국장은 지적했다. “추가로 다른 지원사의 지원을 받거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요.”
공휴일 유급휴일 수당도 문제가 됐다. 공휴일에 일하는 경우 시급의 250%를 줘야 하는데, 이 중 100%를 센터가 지급하는 탓에 지원 계획서에 공휴일이 들어가면 공휴일이 아닌 날로 전산 처리했다. 피해는 노동자와 장애인 모두에게 돌아왔다. “공휴일에도 (장애인이) 밥 먹어야 하잖아요. 센터는 수당 안 주려고 책상에 앉아서 서류 짜 맞추기에만 열 올리고 있어요.” 김후남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업무시간이 끝나도 일은 계속된다.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 최대 받을 수 있는 지원 시간은 한 달 기준 471시간(1등급)이다. 지자체에서 추가 지원을 받아도 하루 24시간이 안 된다.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이 제도의 사각지대를 온몸으로 막고 있다.
“저희는 24시간 대기조에요. 무슨 일 생겼다고 연락 오면 새벽이라도 쫓아가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잖아요. 그런데 정부는 이런 일을 저임금에 맡기고 있어요.” 김후남 씨가 말했다. “이런 직업이 어딨어요. 노예처럼 부려먹는 거지. 한 마디로 전쟁터에요 전쟁터.”
아이돌보미
민간 위탁 운영이지만 그나마 공공기관 소속인 아이돌보미는 앞선 직종들만큼 부당노동행위가 심하지 않다. 대신 최소한의 노동 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고용불안이 가중된다. 일 좀 시켜달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아이돌보미 3명 중 1명은 월 60시간 미만 근무하는 단시간 노동자였다.
이용자가 출퇴근 시간에 몰린다는 업무적 특성도 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노동자에게 위험 부담을 모두 떠넘겼다. 여가부가 제시한 표준 근로계약서는 서비스 제공시간에 대해 주 40시간 내 사전 상호 협의하라고만 명시했다. 그러면서 주 15시간 미만 근무 시 주휴일, 연차유급휴가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정부부처에서 최저임금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꼴이다. 게다가 공휴일에 수당도 못 받는다.
“주 15시간 근무를 채우기 위해 연차를 써야 하는 일도 있죠.” 배민주 씨가 씁쓸하게 말했다.
이용자와 연계 자체가 안 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민주 씨는 수급 불균형으로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한쪽엔 아이돌보미와 연결되지 못한 이용자가 밀려있고, 한쪽엔 연결 안 된 선생님들이 밀려있어요. 문제는 예산 부족이죠.”
정부가 지원하는 시간은 올해 기준 840시간까지다. 정부 지원 비율에 따라 유형이 ‘가’형부터 ‘라’형으로 나뉘는데, 정부 지원 시간이 끝나면 전액 이용자가 부담하는 ‘라’형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근 때 2시간, 퇴근 때 3시간을 이용한다면, 8~9월쯤이면 정부 지원금이 없어져요. 라형을 이용하려면 부담이 갑자기 커지죠. 그럼 아이들끼리 있는 상황이 발생해요. 방치는 아동학대인데, 정부가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배민주 씨는 아이돌봄 사업에 대한 이용자 만족도가 98%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가 이 사업에 제대로 매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소한 1200시간은 보장해야 방치 상황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최저 노동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건 최저 소득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심각한 고용불안이다. “100만 원 받았다가 70만 원 받았다가 50만 원 받았다가…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아요. 코로나 터지면서 10년 이상 일했던 선생님들이 많이 그만두신 게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배민주 씨는 씁쓸해했다.
임금 보전이 안 돼 그만두지만 개인 사정으로 퇴사하는 것처럼 둔갑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배민주 씨는 말했다. “사측 귀책사유로 그만뒀는데, 매월 급여에서 빠져나간 고용보험비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거죠,”
돌봄 노동자의 선의만으론 안 된다
“저는 이 일이 좋아요. 발달장애인과 속마음으로 소통하는 게 쉽지 않은데 제가 노력해서 소통했을 때 굉장히 행복해요. 오래 함께 있으면 대변을 치우면서도 냄새가 안 나더라고요. 사명감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근데 이런 마음을 (국가가) 악용하면 안 되잖아요.” 김후남 씨가 말했다. 돌봄 노동자들의 선의만으로 지금 시스템은 유지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초단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떤 직종이든 서비스제공기관에서 주간 15시간 이상의 상시근로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주휴수당을 받고, 4대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며 연차휴가를 쓸 수 있다.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법을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노동현장의 환경 개선은 ‘교섭’을 통해 해결된다. 돌봄노동자들도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런데 ‘교섭’할 대상이 불분명하다. 도대체 자신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해 줄 ‘고용주’는 누구인가.
노동자들이 서류상 고용주인 센터를 찾아가면 모두 정부 부처가 결정하는 대로 따를 뿐 자신들에게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돌봄서비스제공기관은 각종 인건비 규정, 운영 매뉴얼에 따라 시설을 운영한다. 다만, 제도와 정부기관이 제시하는 매뉴얼의 허점을 활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그렇다면, 돌봄서비스를 총괄하는 복지부 또는 여성가족부는 어떨까. 이 기관들은 임금, 근무지침 등을 결정하고 지원금을 내려보내는 ‘진짜 고용주’다. 지금껏 이 기관들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서비스를 연계하는 운영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비스제공기관에 공을 넘겨왔다. 자신들에게는 관리·감독을 할 책임은 있을 지언정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의 ‘직접적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돌봄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인 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해결하라고 촉구한다. 노동자-정부 간 교섭, 즉 ‘노정교섭’이 돌봄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요구다. 때문에 요양보호사 노동조합 등에서는 여성가족부와 직접 대화를 요구하는 시위나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국민입법센터 신의철 변호사는 “수가를 비롯한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정책은 정부 부처 차원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개별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돌봄노동자들은 개별 사업장을 넘어 산업 단위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있다”면서 “민간위탁 상태에 있는 노동자들의 경우도, 실질적 사용자인 국가와 단체교섭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돌봄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사회적 관심을 받을 때마다 등장하는 말은 ‘관리감독 철저’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철저한 관리·감독을 넘어서 좋은 돌봄이 1순위가 되기 위해 국가가 직접 서비스제공기관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직고용까지가 이들이 그리는 돌봄 국가 책임제다. 학교비정규직 사례 처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고 고용이 너무 경직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 변호사는 “현재 비용 그대로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중간에 새는 인건비’가 없어지기 때문에 더 지금의 비용으로도 고용의 질과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무기계약직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길도 아니다.
그는 “실질적 사용자는 지금도 국가인데, 민간위탁되어 형식적 사업자만 민간인 구조”라면서 “재원은 공적으로 부담하면서 공급 체계는 민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반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서는, 투입되는 비용은 늘지만 돌봄의 질 향상과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더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고령사회로 급속히 진입하는 지금 한국의 조건에서 돌봄에 대한 전체 비용 자체도 늘어나야 마땅하다”고 부연했다.
(다음 편에서는 정규직 돌봄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을 다루겠습니다.)
코로나시대의 노동
코로나19 펜데믹은 한국사회의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아프면 쉬세요’ 캠페인이 진행됐지만 현행 법에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보장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급병가를 쓰지 못하는 노동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자리를 그만 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맞벌이 가정의 수입이 줄자, 물류센터로 투잡을 나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심야노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물류센터는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펜데믹은 또 돌봄과 돌봄노동자를 둘러싼 불평등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코로나 시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현장과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국민입법센터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는 현장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법 개정안’ ‘법 제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나아갔습니다.
총 5분야, 10개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4개 분야는 하나의 기사로 갈음하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른 ‘돌봄’에 집중해 시리즈 내의 시리즈로 6개의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①병가제도와 상병수당: 아프면 쉬어라? 아프면 쉬어라? 한국인만 아파도 출근한다
②정리해고자 재고용권: ‘정리해고자’ 성기훈은 456억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었다
③야간노동 제한: 새벽배송 경쟁시대, 야간노동 ‘헬게이트’ 열고 있다
④돌봄국가책임제와 돌봄노동
④-1 이용자도 돌봄노동자도 우울한 돌봄 현장
④-2 요양시설 3년 운영하면 건물이 뚝딱 생긴다?
④-3 돌봄노동자의 현실 1:최저임금마저도 빼앗기는 돌봄노동자
④-4 돌봄노동자의 현실 2:휴게시간 보장으로 임금을 빼앗았다
④-5 돌봄노동자의 현실 3:폭력에 노출돼 있는 위험한 현장
④-6 돌봄기본법과 돌봄노동자기본법이 필요하다
⑤노동자성과 사용자의 확대, 새로운 교섭의 시대로
※ 이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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