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친미가 국익’이라는 등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경제적 측면만 보면 친중이 더 국익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 결론이다. 하지만 국제관계를 단순히 경제적 실익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당연히 정치·군사적인 측면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시절 이와 관련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수사가 마치 한국 외교가의 공인된 원리처럼 자리 잡았다. 하지만 ‘가치동맹’을 강요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런 외교 수사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최종건 외교부 차관이 ‘경제는 중국’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된 매를 맞았다.

최 차관이 한미전략포럼에서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라면서 “한중 간 무역 규모가 한미·한일 간 무역량을 합친 것보다 크고, 우린 거기서 돈을 벌고 있어 (한중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본심을 드러내 버린 것.

이에 미 국무부는 “중국의 야심과 권위주의에 (한국 정부가) 함께 맞서야 한다”라고 강박했다.

이제 미국의 승인 없이는 중국과도 자유로운 경제 교류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국익에는 반하지만, 어쩔 수 없이 친미를 선택해 온 이유가 단지 안보를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에 의존한 것은 대북 안보 차원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중국과의 경제 교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대중국 포위에 한미연합사를 동원, 한중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안보국익과 경제국익이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버렸다.

‘친미 Vs 친중’ 어느 쪽이 국익일까?

경제적 측면에서 국익의 규모를 따지면 당연히 친중을 선택해야 한다. 미국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다.

지난달 10일간 미국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귀국길에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제가 직접 보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라고 푸념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에 새로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 기지 건설에 170억달러(약 20조원)를 쏟아붓기로 했다.

 

이 회장이 ‘냉혹한 현실’이라고 한 이유는 미중 반도체 패권다툼, 원자재 공급난 등 대미 투자에 복합적인 악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뻔이 알고도 어쩔 수 없이 거금을 투자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 돈을 중국에 투자한다면 몇 배의 이윤을 남긴다는 것을 재벌 3세인 이 부회장이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으니 어찌 속이 타지 않겠는가.

이 부회장이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 대신 미국에 투자한 이유는 이렇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하는 서신을 보내, “삼성전자가 바이든 행정부에 협력하지 않으면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위상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친미’는 안보에 도움될까?

안보라는 측면에서 ‘친미’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는 한미 군사동맹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지가 기준일 수밖에 없다.

한미군사동맹과 관련한 문재인 정부의 최종 성적표인 제53차 SCM(한미안보협의회의)은 미국과 도모하는 안보는 국익에 반한다고 웅변하고 있다.

지난 2일 발표한 SCM 공동성명에서 유엔을 참칭한 주한 유엔사의 역할이 강조되고, 대만 문제까지 언급됨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군사압박에 한국군의 편입을 공식화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격고 있는 중국과의 경제 교류에 난관을 더했다.

또한 중국을 겨냥한 성주 사드 기지의 안정적 운용과 완전한 배치를 언급하고, 미 본토 수호를 위한 새로운 ‘작전계획’ 수립을 예고함으로써 한반도가 동북아를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을 키웠다.

특히 이날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재차 강조함으로써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한국이 동조하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친미와 친중, 어느 쪽이 국익인가?’라는 질문은 아마 우리사회의 중요한 담론이 될 것같다.

문득 ‘친일’보다 ‘친북’을 더 싫어하는 사람의 뇌구조가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