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께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201동 건물 23~34층, 총 12개층 구간 외벽이 무너졌다. 총 39층 규모 건물의 상층부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현재까지는 콘크리트가 미처 마르기 전에 거푸집을 빼고 다음 공정을 진행하다가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참사로 5명의 현장 노동자가 실종됐고, 한 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인 셈이다. <프레시안>에서는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건설 붕괴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39층에서는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을 진행했다. 일명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다. 거푸집, 즉 가설 구조물에 콘크리트를 붓고 39층 바닥을 만드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38층 천장이 타설 작업을 하던 콘크리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렇게 시작된 붕괴는 23층까지 진행된 뒤 겨우 멈췄다. 노동자 6명도 그 붕괴에 휩쓸려 1명이 사망했다. 아직 5명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38층 이하 층에서 작업했던 콘크리트 양생(굳히는 과정)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한 점이 꼽힌다. 보통 일반적인 붕괴 사고에서는 뜯겨진 콘크리트면에 철근이 달려 있기 마련이다. 양생이 된 콘크리트가 철근을 단단히 부여잡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광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콘크리트에는 그런 철근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 콘크리트의 양생이 미처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윗층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광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만난 오성훈 씨(가명)는 광주에서 오래 살아 지역 사정에도 밝다. 수 년간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했다.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을 위한 거푸집을 만드는데 쓰이는 기성 폼을 받아다 설계된 벽에 맞게 나무로 보완하는 일도 그의 주 업무 중 하나였다. 건설노조에 가입해서, 현재도 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 씨를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에서 만났다.
"원래 눈이나 비가 오면 콘크리트 타설하면 안 된다"
프레시안 :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붕괴 참사를 두고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이 두 작업은 어떤 작업인가?
오성훈 : 현대산업개발 같은 건설 원청사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하청사를 선정해 공사를 한다. 그 하청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데가 골조업체다. 건물을 만들려면 뼈대가 있어야 한다. 골조 공정이 콘크리트로 그 뼈대를 만드는 공정이다.
아파트를 지을 때 제일 먼저 기초 타설을 해 바닥을 만든다. 그 다음에 골조 공정을 진행한다. 철근을 세우고 거푸집(콘크리트를 일정한 형태로 만들기 위한 가설 구조물)을 쌓는다. 거푸집을 쌓으면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붓는다. 이걸 '타설'이라고 한다. 콘크리트를 붇고 나면 굳혀야 한다. 그 다음에 거푸집을 해체한다. 이 굳히는 작업을 '양생'이라고 한다.
건물 짓는 게 크게 보면, 철근 세우고 거푸집 세우고 타설하고 양생해서 거푸집 해체한 뒤 내장, 인테리어 하고 또 다음 층 작업하는 거다.
프레시안 : 특히 콘크리트 양생 기간이 짧았다는 말이 많다.
오성훈 : 콘크리트가 굳고 나면 거푸집을 해체해야 한다. 굳지도 않았는데 거푸집을 해체하면 당연히 무너진다. 전문가들이 사고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겠지만 노동자들이 보기에는 단순하다. 콘크리트가 안 굳혀졌는데 거푸집을 뜯으면 당연히 무너진다.
프레시안 : 건설노조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공사현장이 다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오성훈 : 건설업계에 1군 업체, 2군 업체가 있다. 현대산업개발같은 대기업이 1군업체다. 1군 업체는 (불충분한 양생 등 부실공사가) 좀 덜하다고는 하지만, 중저가 브랜드 아파트 현장 중에는 오후 3시에 거푸집을 설치해놓고 다음날 점심 전에 뜯는데도 있었다.
프레시안 : 규정대로 하면, 양생은 어느 정도 해야 하나.
오성훈 : 21일 규정도 있고 규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름에는 4, 5일. 겨울에는 17일은 있어야 된다.
프레시안 : 그런데도 화정 아이파크 2단지 붕괴 참사 같은 일은 거의 없다.
오성훈 : 아파트를 지으면 그 안에 보통 벽이 있어서 건물 하중을 일부 지탱한다. 그 벽도 거푸집을 만들어서 타설한다. 이번 화정 아이파크 2단지 공사 현장에는 벽이 없다. 안에 벽돌 같은 걸 쌓아서 공간을 나눈다. 수요자 입장에서 나중에 구조 변경이 쉽다는 장점이 있으니 그렇게 한다. 그 다음에 천장을 지탱하는 보도 없다. 이게 무량판 구조다. 이러면 콘크리트를 굳히는 양생 과정이 엄청 중요하다.
또 현대산업개발에서 사고가 일어난 곳 콘크리트를 타설하던 날 최고기온이 영상으로 안 올라갔다. 눈도 왔다. 원래 눈이나 비가 오면 타설하면 안 된다.
"불법하도급·불법고용, 저임금·저숙련 고용으로 이어져 안전 위협"
프레시안 : 사고 배후의 구조적 요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성훈 : 아파트 골조 공정 전문건설업체가 중요한 작업을 하는 거푸집 목수, 철근공, 타설공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그래야 숙련된 인력을 안정적으로 고용해 공사를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관행상 전문건설업체가 아니라 그 밑에서 하도급받은 펌프카(압력을 이용해 시멘트나 콘크리트를 고층에 올릴 수 있게 하는 차량) 업체가 타설 노동자를 고용한다. 이것 자체가 불법하도급(도급받은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수급인이 도급 업무 전부를 제3자에게 이행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러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오성훈 : 전문건설업체에서는 누가 현장에서 일하는지 확인도 못한다. 당연히 숙련도도 확인이 안 된다. 원칙적으로는 원청사가 인력 확인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안 한다. 이번에 화정 아이파크 2단지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타설을 했다. 펌프카 업체가 저임금 주고 인건비로 받은 돈 떼먹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러면 숙련도도 떨어지고 책임성도 떨어진다.
사실 이러면 외국인 노동자도 피해자다. 이 사람들 불법고용돼있다. 인건비 떼먹은 업체는 돈을 벌겠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회보험 등) 어떤 혜택도 못 받는다. 그분들도 숙련도가 떨어지거나 해서 실수하는 게 있지만, 건물 무너지라고 작업하지는 않았을 거다. 또, 자기들이 판단해서 거푸집을 뗐겠나. 당연히 위에서 거푸집 떼라고 하니 뗐을 거다.
이런 문제도 있다. 화정 아이파크 2단지 공사현장에서 사고가 나기 한 20분 전쯤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벽이 무너지는 걸 발견했다. 동영상도 남았다. 그러면 관리자에게 바로 전화해서 다른 노동자들 대피시켜야 했다. 그런데 주로 쓰는 언어가 달라 말이 안 통한다. 전화도 쉽지 않다.
프레시안 : 당일 사고 현장에 안전관리자가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오성훈 : 안전관리자들이 일반적으로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프레시안 :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임금은 한국인 숙련공 대비 얼마쯤 되나.
오성훈 : 파악이 안 된다. 작년에 타설 노동자 평균 임금이 19만 원 정도였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은 개별 노동자에게 주는 게 아니라 오야지(총팀장)한테 준다. 이 사람이 노동자를 50~60명씩 데리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얼마 받는지 알 수가 없다. 조사 자체가 안 된다.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근본 원인은 최저가 낙찰제"
프레시안 : 전문건설업체가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형태로 사람을 쓰는 이유는 뭔가?
오성훈 : 최저가 낙찰제다. 이걸 이명박 대통령이 만들었는데 원청사가 최저가를 낸 업체에 일감을 줄 수 있게 했다. 하청사가 건설 계약 따내도 원청사가 적정공사비 안 준다. 그러면 숙련공 안 쓰고 불법고용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공사예상금액의 120%가 적정공사비로 책정된다. 한국은 60%대로 계약이 이뤄진다. 이 정도로 공사비를 후려쳐서 응찰할 베짱이 어디서 나오겠나. 불법고용하고 임금 후려쳐서 하겠다는 거다. 건설산업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다.
그럼 그렇게 남겨먹은 돈이 결국 다 어디로 가겠나. 원청사가 떼돈을 번다. 지금처럼 원청사가 전문건설업체 쥐어짜고 그 밑에 하청사 쥐어짜고 노동자 쥐어짜고 하면 안전사고가 안 날 수 없다.
프레시안 : 결국 위험 부담은 맨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가 진다.
오성훈 : 건설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한다. 건설 원청사들은 최저가 낙찰제 바꿔서 사고 줄이려고 생각 안 한다.
이번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27일부터 중대재해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발효된다. 작년에 건설 노동자 458명이 산재로 죽었다. 건설 현장에서는 무조건 하루에 한 명 죽는다. 그러니까 포스코, 현대건설 삼성물산 이런 데들이 27일부터 열흘 동안 건설 공사를 안 한다고 했다. 중대재해법 첫 대상이 되기 싫다는 거다. 그러면 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은 일하는 날짜가 줄어든다. 이거 좀 심하지 않나.
"최저가 낙찰제 안 바꾸면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계속 된다"
프레시안 : 지금 같은 상황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성훈 : 일단 현장에서 법이 지켜져야 한다. 전문건설업체가 타설 노동자 직접고용 안 하고 하도급 주면 불법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현장에서 직접고용 안 한다. 불법고용하지 말고 합법적으로 하라는 거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지키라고 외쳤는데, 건설현장에서는 아직도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불법하도급하지 말고 근로기준법에 나온 데로 주휴수당 주고 8시간 이상 일하면 수당 더 주고. 타설 노동자가 새벽 6시 출근해 저녁 7시까지 일해도 추가근무수당 주는 데 거의 없다.
프레시안 : 또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오성훈 : 근본적으로는 최저가 낙찰제를 바꿔야 하다.
전문건설업체도 열악한 데가 많다. 원청사에서 공사대금 제때 지불받는 곳 거의 없다. 대금을 어음으로 주거나 아파트 몇 채주는 곳도 있다. 지금 시대에 현물을 주는 거다. 도산하는 전문건설업체도 많다. 여기(전문건설업체)만 쥐고 흔들 수는 없다.
최저가 낙찰제 없애서 적정공사비 주고 공사하게 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문제 계속 생긴다.
"한국이 선진국? 건설 현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프레시안 : 노조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오성훈 : 이런 거 하자고 작년에 광주·전남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타설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투쟁했다. 불법하도급, 불법고용하지 말고 법 지키라는 게 핵심 요구였다. 그랬더니 경찰이 전경까지 투입해서 업무방해라고 잡아갔다. 업무방해를 하는 건 그렇게라도 해야 말을 들으니까.
부산·울산·경남에서는 타설노동자들이 노조를 오래 했다. 타설 노동자가 조합원 1000명 가까이 된다. 최근에 이들이 총파업 투쟁을 했는데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문제 갖고 투쟁하지 않는다. 10여 년 넘게 싸워서 지역 건설업계의 룰을 바꾼 거다.
프레시안 : 현대산업개발이 광주에서만 반년 사이 두 번의 건설 현장 참사를 일으켰는데 지역별로도 건설업계 상황이 다르다는 말이다.
오성훈 : 지역 편차가 있다. 광주에서는 여전히 최저가 낙찰제가 일반적이다. 전문건설업체도 영세한 업체가 많다. 부울경은 전문건설업체들이 규모가 좀 있다.
학동 철거현장 붕괴 참사 때 주택조합에서 현대산업개발에 평당가 28만 원을 줬다. 그게 하도급, 하도급으로 계속 내려가서 마지막에 7만 원이 됐다. 그러면 마지막 업체는 어떻게 하겠나. 사장이 직접 굴삭기를 끌고 와서 일했다.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능가했네 어쩌네 하면서 한국이 선진국 됐다고 하는데 건설 현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호주 아파트가 120년 간다고 하는데 한국 아파트 몇 년 가나. 한국 건설 노동자 기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우리가 시멘트 못 만드나. 한국은 고강도 시멘트를 수출하는 나라다. 철강 강국이고 설계 능력도 있다.
그런데 왜 이번 같은 일이 생기나. 콘크리트는 양생을 오래 할수록 튼튼해지는데 그걸 안 하니까. 산업 구조 자체가 그렇게 돼 있으니까. 물론 조사하면 자재 문제나 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