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온상이던 'n번방'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 '불'이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언젠가 강간하겠다'는 가해자들의 위협에 얼굴과 이름을 감추고 활동해온 그가 "이제는 선두에 나서서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세상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냈다. 이재명 후보 선대위에서 여성위원회 디지털성범죄근절 특위위원장을 맡은 박지현 씨다.
권력형 성범죄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한 민주당에 합류한 성범죄 추적자의 행보에 의외라는 평가가 잇달았다. 28일 <프레시안>과 만난 박 위원장은 민주당을 "성범죄 문제에 대처를 잘못한 당, 반성이 필요한 당"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을 보호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 민주당의 부족한 부분과 반성할 부분에 대해 소신을 가지고 변화시키기 위해 왔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20·30대 여성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 이어 이번 대선까지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여성들의 외면에 박 위원장은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인권에 대해 얘기하던 박원순 전 시장과 안희정 씨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에 2030 여성들이 배신감 느꼈을 테고, 저도 그당시에 너무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피해호소인' 논란부터 민주당 인사들이 가한 수많은 2차 가해까지. 박 위원장은 그런 민주당에 더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면서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를 만드는 작업, 피해자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대선 전까지 민주당이 마쳐야 하는, 주요하게 해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야만 권력형 성범죄의 그늘에서 벗어나 핵심 지지층이었던 2030 여성들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위원장은 이재명 후보가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주장이 담긴 온라인 커뮤니티 '홍카단' 글을 공유해 논란이 됐던 점에 대해선 "'이대남'의 표심을 잡고싶은, 조급한 마음에 했던 섣부른 행동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후보라면 각 집단의 표심이 너무 중요하다. 공감대 형성을 해서 표를 얻어내고 싶은 건 당연한데 방법이 잘못됐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청년세대를 소위 '이대남'과 '이대녀'로 나누어 바라보는 시각이 '젠더갈등'을 더욱 부추긴다고 분석하며 "'백래시'가 2030 남성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부의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이재명 후보가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머뭇거리고 있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오해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면 안된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내에는 통과되어야 하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 인터뷰 전문.
프레시안 : '추적단 불꽃'의 '불'로서 어떤 활동을 해왔으며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는?
박지현 : '추적단 불꽃'은 텔레그램 'n번방'을 최초로 취재하고 보도한 기자단이자 활동가 집단이다. 나는 '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온 27살의 활동가다. 텔레그램 'n번방' 안에서 모니터링을 하다보면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욕설을 해댄다. '너네 여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라', '언젠가 보면 강간해야지', '강간치고 싶다'라는 말까지 많이 올라왔다. 그래서 안전하게 활동을 이어가려면 신상을 밝히지 말고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또 n번방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증언도 하면 가해자들이 보복을 할 수 있을거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프레시안 : 이번에 이름과 신원을 공개했는데.
박지현 : 적어도 피해자가 혼자 끙끙 앓다가 묻히는 일은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됐든, 권력형 성범죄가 됐든 뿌리를 완전하게 뽑고 싶다. 잠깐의 망치질로 막아놓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끊어내는 것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고, 신상을 밝히게 된 이유다.
프레시안 : 2020년 9월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뿌리 뽑히지 않았다면서 입법을 촉구했던 것도 활동만으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인가?
박지현 : 피해자는 좌절하고 우리는 그 상황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가 n번방 최초 신고자, 보도자이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지 우리 말을 언론이 계속 대서특필해주는 건 아니지 않나. 우리 글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뭘 더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책을 만드는 텀블벅 프로젝트를 하면서 2021년 초 권인숙 의원을 만났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치라는 게 밖에서는 좋지 않은 모습이 주로 보이지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굉장히 많다고 느꼈다. 정치를 잘 활용하면 많은 여성들과 시민들이 바라는 성범죄 근절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결심하게 됐다.
프레시안 : 신지예 씨도 국민의힘에서 정치 활동을 계획했지만 일시적으로 소모되고 말았다.
박지현 : 주변에서 나에게 가장 많이 우려한 것이다. 당에서 (내 존재가) 이용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2030 여성들이 배제됐다고 느끼고 있다. 그 소외감에는 신지예 씨 논란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는 민주당을 보호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 민주당이 부족하고 반성할 점에 대해 소신을 가지고 변화시키기 위해 왔다. 민주당이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 : 밖에서 본 민주당은 어떤 정당이었으며, 이재명 후보를 택한 이유는?
박지현 : 지난 과오들(권력형 성범죄)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안 좋아졌다. 가해자들과 민주당 사람들이 너무 잘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분들이 있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모인 분들이 있다. 성범죄 문제에는 대처를 잘못한 당, 반성이 필요한 당이지만 더 바른 세상을 위해서는 희망과 기대가 있는 당이다.
2030 여성으로서 국민의힘이 집권한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무고죄 처벌 강화 등 남성들의 이야기만 듣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대위 여성위원회와 접촉하면서 많은 공약이 있지만 알려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됐다. 또 이재명 후보는 경기지사 때나 성남시장 때 공약 이행률이 높았으니까 공약을 실행해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이런 여러 요인이 작용해 민주당에 오게 됐다.
프레시안 :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2030 여성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지만,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선 등을 돌렸고 대선에서도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박지현 :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인권에 대해 얘기하던 박원순 전 시장과 안희정 씨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에 2030 여성들이 배신감 느꼈을 테고, 저도 너무 큰 배신감을 느꼈다. 이재명 후보도 여러 논란이 있었다. 형수 욕설 문제는 안 좋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 후보가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것도 여성 입장에서 보기에는 좋지 않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보가 유튜브채널 <닷페이스>에 나와 "여성 커뮤니티에도 글을 쓰고 싶었지만 가입이 안되어 못 썼다"고 했는데, 혹여 오해가 있다면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이재명 후보가 지난해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카단' 글을 공유해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박지현 :불안함에 저지른 실수라고 생각한다. '이대남'의 표심을 잡고싶은 조급한 마음에 했던 섣부른 행동이 아니었을까 한다. 대통령 후보라면 각 집단의 표심이 너무 중요하다. 공감대를 형성해서 표를 얻어내고 싶은 건 당연한데 방법이 잘못됐던 것이다.
프레시안 : 최근 민주당 선대위 내에서도 유튜브 채널인 <닷페이스>와 <씨리얼> 출연 계획 자체가 논란이 됐다. 결국 <씨리얼> 출연은 무산됐고 <닷페이스>는 일정을 연기해서 촬영했다.
박지현 : 사실 나에게도 결심을 재고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씨리얼> 일정이 결국 취소됐다는 사실에 황당했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몇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약자를 다양하게 다룬 매체인데, 온라인 커뮤니티에 '페미 유튜브'라는 의견이 올라오니 그걸 수용한 선대위의 결정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프레시안 : 권력형 성범죄 이후 민주당은 충분히 반성했다고 보나?
박지현 : 아니다. 더 해야한다. '피해호소인'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잘못이다. 피해자에게 너무 큰 상처다. 여성 의원들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고민도 했다. 믿어왔던 사람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가장 배려받아야 할 분은 피해자다.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 건 큰 잘못이다.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체계를 만드는 작업, 피해자에게 있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대선 전까지 민주당이 마쳐야 하는, 주요하게 해나가야할 과제다. 그래야만 2030 표심도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이재명 후보가 사죄의 절을 하며, 당의 내로남불과 '조국사태'에 사과했지만 권력혁 성폭력을 직접 언급하며 사과 한 적은 없다.
박지현 : 이재명 후보는 본인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더라도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사과를 해야한다고 본다.그 과정에서 내가 할 일이 있다면 기쁘게 돕고 싶다. 후보도 권력형 성범죄가 잘못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후보는 잘못을 알면 고치려고 하는 사람이다.
민주당도 함께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후보를 비롯해 여성 의원, 남성 의원 가릴 것 없이 <김지은입니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책을 읽고 반성문을 써야 한다. '김지은입니다'를 읽으며 책이 젖을 정도로 눈물이 뚝뚝 흘렀고 피해자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우리 사회는 2차 가해에 바쁘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는 않는다. 민주당과 사회가 피해자 이야기를 당연하게 듣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프레시안 : 이번 대선에서는 젠더와 관련한 이슈가 특히 많다. 청년세대를 소위 '이대남', '이대녀'를 나누어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지현 : 자극적인 이슈 몰이가 소위 '젠더갈등'을 더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백래시'가 2030 남성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일부의 의견이다. 또, 언론의 프레이밍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론에 나오는 '이대남' '이대녀'라는 단어들로 '젠더갈등'이 더 심화된다. 그런 부분은 언론도 지양 하면 좋겠다
프레시안 : 차별금지법 제정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박지현 : 차별금지법 제정은 필요한 입법이다. 이 후보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잘못된 정보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필요하겠지만 그렇게 오래걸리면 안 된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임기 내에 통과되어야 하는 법안이다.
프레시안 : 정치에 입문한 사람으로서의 포부는?
박지현 : '불'로서는 베일에 쌓여진 익명의 활동가였다면, 박지현으로서는 선두에 나서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재명을 뽑기 싫은데, 이재명이 안 되면 박지현은 없어질 수밖에 없으니 이재명을 뽑겠다'는 글을 보고 어깨가 무거웠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 40일 동안 불태워서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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