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도정 홍보 방송프로그램 살펴보니
SBS ‘모범택시’ TV조선 ‘어쩌다 가족’ 홍보
주·조연, 경기지역화폐로 식료품 결제 장면
방송홍보 실무자는 사표 후 이재명 캠프로
“도정 업무 수행한 것… 대선연결은 무리”
장면1. 지난해 5월29일 SBS 금·토 드라마 ‘모범택시’ 마지막회 한 장면. 주인공 이제훈(김도기 역)이 한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계산대에 선다. 휴대전화에서 ‘경기지역화폐’ 앱을 열고 ‘고양페이’를 확인한 뒤 지갑에서 ‘고양페이’가 적힌 카드를 내민다. “이걸로 결제해주세요.”
장면2. 지난해 4월18일 TV조선 예능 드라마 ‘어쩌다 가족’ 한 장면.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7100원입니다.” 카페 직원 대사와 동시에 화면은 계산대 옆 ‘경기지역화폐 와이페이 가맹점’이라고 적힌 문구를 클로즈업한다. 그러자 신원호(원호 역)는 “이걸로 해주세요”라며 용인 와이페이 카드를 꺼내 결제한다.
극 흐름에서 다소 벗어난 두 장면은 경기도가 경기지역화폐를 방송 프로그램으로 홍보한 사례다. 경기도는 “코로나19 경제 침체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시행되는 경기지역화폐와 연계한 드라마를 통한 핵심 도정 전달”이 목적이라고 했다. 미디어오늘이 확보한 경기도 문건을 보면, 두 사례 모두 소요 예산은 밝히지 않았다.
SBS·TV조선 드라마에 ‘경기지역화폐’
SBS ‘모범택시’ 마지막회 시청률이 15.3%(닐슨코리아 기준)였다는 점에서 경기도가 거둔 홍보 효과는 적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TV조선 ‘어쩌다 가족’ 시청률은 0~1%대로 부진했다.
미디어오늘이 정보공개포털에 공개된 경기도 도정 방송 프로그램 홍보 문건(2019~2021년 경기도 홍보콘텐츠담당관 생산 문건)을 일부 수집·확인한 결과 경기도는 지상파·유튜브 방송 제작지원을 통해 △코로나19 방역·대응 △재난기본소득 △경기지역화폐 △청년기본소득 △기본소득 박람회 등을 홍보했다.
주로 경기도가 전국에 송출되는 지상파 방송사 교양·다큐·드라마 제작에 협찬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 경기도지사로 활동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치적으로 삼고 있는 정책들이다. 이 후보는 지난 24일 오후 MBC 방송 연설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전 국민 지역화폐를 통한 매출 지원 같은 경제 부스터샷을 통해 서민 경제를 확실히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지역화폐는 이재명이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보공개포털에서 확보한 70여건의 경기도 도정 방송 프로그램 홍보 계획 및 결과 보고 문건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프로그램은 SBS ‘생방송 투데이’였다.
70여건(비공개 문건 포함)을 통해 실제 확인한 홍보 방송은 23건 남짓. 이 가운데 SBS ‘생방송 투데이’는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9번 제작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모든 문건이 공개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최소 수치로 풀이된다. 이 방송 프로그램에선 경기도 드라이브 스루, G버스 방역 홍보,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기본소득 박람회 등이 소개됐다. 경기도가 이 방송에 한 편당 투입한 예산은 1815만 원(2020년 기준)이다.
생활 프로그램 편당 1815만원
예능 5500만원~7700만원
경기도는 지난해 3월과 6월 MBC ‘생방송 오늘아침’을 통해서도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경기지역화폐 등을 홍보했다. KBS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나 ‘생생정보’도 도정 홍보 창구다. 통상 지상파 3사 생활 정보 프로그램은 지차체의 제작지원을 필요로 한다.
제작지원이나 협찬고지를 통한 지자체 방송 홍보 시장의 시세는 어떨까. 2019년 7월 경기도 문건(‘2019 주요도정 하반기 방송프로그램 홍보계획’)을 보면, KBS 2TV ‘생방송 아침이 좋다’는 편당 1815만 원이었다. MBC ‘오늘 아침·오늘 저녁’의 경우 편당 1430만 원, KBS 특집프로그램 ‘평화음악회’는 편당 1억 원, SBS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은 편당 7700만 원, ‘동상이몽2’는 편당 7700만 원,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5500만 원이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경기도 홍보기획관은 2019년 하반기(7~12월) 이들 방송을 포함해 총 3억8435만 원을 도정 방송프로그램 홍보에 투입하겠다고 계획했다.
유튜브도 도정 홍보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20년 4월24일자 KBS 유튜브 ‘구라철’에 소요된 비용은 4840만 원이었다. 이 방송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홍보했다. 진행자 김구라씨는 “경기도민은 1362만 명이다. 모두에게 재난기본소득 10만원씩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이게 과연 잘 쓰이고 있는지, 아니면 정치인들의 표를 위한 포퓰리즘인지, 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경기지역화폐가 잘 사용되고 있는지 따져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경기도는 이 방송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KBS의 간판 인플루언서 채널(최고 조회수 111만)”이라며 “도민과 소상공인에게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취지 및 사용 방법에 대해 상세히 전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방송에는 정하영 김포시장 찬조 출연했다.
5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쯔양’도 지난해 3월 경기도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영상을 제작했다. 쯔양은 광명 새마을 시장을 찾아 경기지역화폐로 시장 음식을 구매하고 시식했다. 콘텐츠 설명란에는 “해당 영상은 경기도로부터 제작비를 지원 받은 공익 광고성 영상”이라고 명시돼 있다.
경기도는 초청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도 제작 지원했다. 지난해 4월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김찬휘 위원이 강연자로 나서서 기본소득 필요성을 홍보했다. 같은 날 방영된 MBC ‘다큐프라임’도 경기도가 제작 지원에 나선 사례다. 이날 다큐프라임은 ‘기본소득’을 주제로 다뤘고 경기도는 프로그램을 통해 ‘기본소득 박람회’ 등을 홍보했다.
예능 프로그램도 경기도 홍보 수단으로 활용됐다. 지난해 5월 방송한 MBC 예능 프로그램 ‘아무튼 출근’에선 청년면접 수당이 소개됐다. 방송인 광희씨는 “취업이나 이직할 때 제일 중요한 것 하나가 면접”이라며 “옷 사고 교통비 내느라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고 입을 열었다. SBS 출신 프리랜서 아나운서 박선영씨는 “아이러니한 게 돈을 벌자고 (면접하는 건데) 오히려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지원하는 게 청년면접 수당이다. 이런 건 많은 분들이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구라씨는 “아하, 이런 건 찾아 먹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진행자 대화 과정에 ‘경기도’가 언급되진 않았다. 경기도 청년면접 수당은 청년 구직자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해주는 데 목적이 있는 사업으로 이 후보는 지난 1월 공공부문 면접수당 의무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선주자의 도정 홍보에 평가 엇갈려
드라마·예능에서 정부·지자체의 ‘정책 홍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평가는 엇갈린다. 박근혜 정부도 지난 2016년 3300만 원을 들여 MBC 드라마 ‘운빨로맨스’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적극 홍보했다. 당시 정부는 “드라마·예능 등 인기 TV프로그램 간접광고(PPL)를 통해 창조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 체감도 제고”라고 홍보 목적을 밝혔으나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지상파 출신의 한 PD는 “서울이나 경기도의 제작 지원은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지자체 협찬이라기보다 정부 광고에 가까운 수준으로 집행 규모가 크다”며 “경기도 홍보가 이례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홍보 대상이 기본소득이나 지역화폐와 같이 매우 구체적인 정책이다 보니 눈에 더 띄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후보의 경기도지사 시절 정책 홍보비는 최근까지도 질타를 받아왔다. 대선을 위한 ‘혈세 낭비’ 아니냐는 것. 지난해 8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낙연캠프 박래용 대변인은 “경기도청이 기본소득 홍보에 쏟아부은 돈이 현재까지 광고횟수 808회, 총 33억 9400만 원”이라며 “대선 후보로 나선 지사의 일개 공약을 홍보하는데 경기도가 그동안 쏟아 부은 돈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지사가 경기도 예산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지난해 11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경기도청 광고비 집행액은 2016년 115억1600만 원, 2017년 148억8900만 원에서 이 후보가 지사 임기를 시작한 2018년에는 171억6500만 원, 2019년에는 181억9700만 원으로 상승했다. 2020년에는 172억92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10억 원 감소했다. 경기도와 경기도 산하 25개 출자·출연기관은 2020년 광고비로 총 413억 원을 지출했는데, 이는 이 후보 지사 취임 전인 2017년 260억 원보다 1.6배 증가한 수치다.
도정 홍보 경기도 실무자 ‘이재명 캠프’로
경기도 홍보캠페인팀장으로 도정 방송 홍보 실무를 맡았던 A씨는 25일 “방송 홍보는 철저하게 언론진흥재단을 거쳐 진행됐다. 도정 정책에 국한한 홍보였다. 규정을 준수했으며 협찬고지를 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홍보한 정책은 도민 알 권리 충족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들”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주어진 예산에서 최대한 홍보하는 게 홍보 파트 책무”라며 “현행 법령과 규정 안에서 다양한 방송 장르를 통해 홍보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기제 계약직이었던 A씨는 지난해 10월 경기도에 사표를 내고 현재 이 후보 선거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A씨는 도정 홍보 주요 창구로 ‘지상파 방송’을 활용한 데 대해 “홍보의 기본 방향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 정책을 알리는 것”이라며 “드라마·예능 등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매체를 통해 도정을 홍보한 것은 우리의 분명한 성과”라고 밝혔다.
A씨는 TV조선 드라마 홍보에 대해서는 “과거 경기지역화폐를 홍보했던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였고, 그런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이던 2017년 자신의 막말·욕설과 형 강제입원 의혹을 보도한 TV조선을 겨냥해 “민주공화국을 마비시키는 독극물 조작 언론을 반드시 폐간시킬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경기도는 A씨 도정 활동과 이후 이재명 캠프 참여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A씨는 자기 직무 수행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모든 광고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뤄져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A씨는 그만둔 뒤 캠프로 간 것”이라며 “도청 시절에는 팀장 직무를 법령과 예산에 근거해 수행했다. 이를 대선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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