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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천의 일과 법] 중대재해처벌법의 역설적 의의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 착공되었지만 무려 14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아직 완공되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 스페인에 갔을 때 만난 투어가이드가 ‘한국의 유명한 대기업 건설회사 임원들에게 성당 가이드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분들이 우리 회사에 맡겨주면 몇 달 안에 깔끔하게 완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라고 해서 설명을 듣던 일행이 다 같이 웃은 적이 있다. 물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가우디의 갑작스러운 사망, 스페인 내전 발발, 경이로울 정도의 꼼꼼한 작업과정, 여전히 건축 중이라는 요소 자체를 관광 세일즈에 이용하는 측면 등 매우 복합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건설회사가 맡으면 몇 달 안에 완공할 수 있다는 말은 빨리빨리 정신으로 중무장한 한국적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그야말로 웃픈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1년 7월 9일 금요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디자인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빨리빨리 정신이 초래한 폐해의 예로 올해 1월 건설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한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조사결과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여러 위법행위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본질적인 사고 원인은 무리한 공기 단축에 있다는 지적이 가해지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콘크리트를 충분히 굳히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이 일해야 한다는 압박은 한국의 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140년이 지나도 완공되지 못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한국 건설회사 임원이 ‘몇 달 안에 완공할 수 있다’고 했다는
웃픈 농담과 산재의 현실


산재 사망과 관련하여 최근 몇 달간 법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는 단연코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1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는 1개월 이상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만원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법인이나 기관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10만원 이상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부상자나 질병자가 발생한 경우에는 1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밖에 사업주와 법인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되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하고 있다. 현재 이 법은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고, 2024년 1월 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제공 : 국토교통부

이 법의 제정이유에도 명시되어 있는 현대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압사사고,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사고와 같은 산재 사망으로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지 않고 무사히 퇴근하기를 바라야 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법이 시행된 지 이제 두 달 남짓 지났는데 법 시행이후 한 달 동안에도 42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나마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10명이 줄어든 수치라고 한다.

산재사망사고 뿐 아니라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과 과로사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0년 산재 통계에 따르면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882명이고,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1,180명에 이른다. 최근 언론에도 보도된 검찰의 중대재해처벌법 벌칙 해설서에서는 ‘과중한 업무나 급격한 업무 환경 변화로 인해 뇌심혈관계 질환 등이 발생해 종사자가 사망에 이르렀을 때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 내용과 방식에 내재한 유해 위험 요인이 원인이었다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상 과로사가 직업성 질병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업무의 유해 위험 요인으로 인해 산업재해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근로자의 작업이나 업무 방식에 있어 뇌심혈관계 질환의 원인 등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입증되는 등 요인이 있다면 중대재해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과로사가 장시간노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노동자의 사망이 과로로 인한 산재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당해 노동자의 실근로시간은 중요한 판단요소 중 하나가 된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처벌이 우려되고 그로 인해 기업이 위축되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고, 최근 대통령 당선자와의 만남에서도 이러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3월 2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현장 우려와 지침·해석·매뉴얼·하위법령 개정을 논의한 바로 다음날인 3월 25일에 하루에 4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또한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자시절부터 주간 근로시간이 원칙적으로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현행 근로기준법을 비판하면서 근로시간 유연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법 개정을 추진할 뜻을 피력했다. 그렇지만 지난 3월 24일에는 대기업 자회사에서 6일 동안 72시간 일하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근로시간 단축 없는 유연화는 그저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일뿐이다.

유명 로펌, 노무법인, 기업마다 중대재해처벌법 컨설팅, 강의
산재에 대해 이렇게까지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었나
어쩌면 이것이 법의 의의가 아닐까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차 중대재해 예방 산업안전 포럼에서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2.03.16. ⓒ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전후하여 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변화는 유명 로펌과 기업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전담조직을 신설했다는 소식과 하루가 멀다 하고 로펌, 노무법인, 기업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각종 컨설팅, 강의 등을 실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노동법을 전공하기 시작한 이후로 산재 문제에 대해 온 나라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집중하며 산재에 대비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바로 이점에서 이 법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전에 비해 산재사망이 일어난 사업장의 책임자에게 강력한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이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안심하며 일할 수 있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5월 10일 출범하게 되는 새 정부 역시 노동자들이 동료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 일터가 아닌 안도하며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시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맺고자 한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 현장 옆에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 없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우디의 다른 건축물 곳곳에도 인간과 자연에 대한 존중, 노동자 복지를 위해 신경 쓴 흔적과 노력들이 발견된다. 가우디 건축의 위대함 속에는 인간 존중 정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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