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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쓴 영웅 서사, '허준이 프레임'의 함정

[전대원의 교육이야기] 필즈상 수상자를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

22.07.12 05:19l최종 업데이트 22.07.12 05:19l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오른쪽)이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국제수학연맹(IMU)이 수여하는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오른쪽)이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국제수학연맹(IMU)이 수여하는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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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소식이 알려졌다. 요 근래에 보면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들이 많아졌다. 한국의 음악과 영화가 세계 시장을 휩쓸 거나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 어릴 때 강대국이나 쏘아 올리는 건 줄 알았던 우주 발사체를 순수 국내 기술로 쏘아 올리더니, 드디어 수학이라는 순수 학문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업적을 인정받은 사람이 나온 것이다. 이제 한국인에게 노벨 과학상만 남았다는 우스개가 돌기도 했다.

허준이 교수가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이번 수상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그는 이미 이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던 수학자이다. 필즈상 수상 이전에 인터뷰 기사도 나왔었다. 그런데 인터뷰 기사 제목이 묘했다.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내지 마세요"

 
이전에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이 왜 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석학에게 굳이 '수포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싶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함부로 쓴 영웅 서사

신문이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학력고사 시절 수석 합격자에 대한 보도나 수능 만점자 보도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하고 잠 푹 자고 공부해서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 여기에 가정 사정이 불우했다던가, 부모님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이 아니면 금상첨화.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그렇게 해서 공부 영웅의 서사가 완성된다.

이미 여러 누리꾼들이 팩트 체크에 들어가서 더 이상 언급하기도 민망하다. 수포자의 근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했다는 것에 기반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에게 수포자를 운운하는 거야말로 수학 실력의 발전 가능성을 막는 표현이다. 그 나이는 수학을 포기하고 말고 할 것을 말할 나이도 아니다. 만약 세간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식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고 해야 한다.

초등학교 어린 나이부터 수학의 재능이 남보다 빠르고 느리고를 따지는 바람에 수학 교육의 첫 단추부터 잘못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꾸짖는듯하면서 오히려 은근히 조장하는 표현이 '수포자'였다. 그러고 뒤에 덧붙인 인용은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인 게 아이러니하다. 과연 성급히 결론을 내린 것은 저런 제목을 붙인 편집기자인가, 애꿎은 독자인가?

수상을 한 당사자도 답답했던지 다른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포자 아니었다…굉장히 재미있어 열심히 잘 했다"면서 자신이 수포자이고 고교 시절 수학 공부를 못했다는 세간의 오해를 해명하는 발언을 하였다. 아마 본인도 뜻하지 않은 유명세가 가져온 오해들에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한술 더 뜬 동아일보
 
에 실린 기사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왼쪽)와 7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 "시인 꿈꾼 고교 자퇴생 '수학계 노벨상' 품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image-rendering: -webkit-optimize-contrast;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동아일보>
▲  지난 1월 1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왼쪽)와 7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 "시인 꿈꾼 고교 자퇴생 "수학계 노벨상" 품었다"
ⓒ 조선일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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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수포자'에서 한술 더 떠서 '공부를 놨던 고교 자퇴생'이란 표현을 썼다. 이 표현을 보면서 나가도 막나가는구나 싶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놓고서 과연 서울대학교를 갈 수 있었을까? 물론 천재면 가능하지 싶다가도, 오히려 천재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일었다.

여러 비판을 받은 탓인지 글을 쓰면서 검색해봤더니 '공부를 놨던'이란 수식어를 '시인을 꿈꾼'으로 바꾸었다. 허준이 교수가 고등학교 시절 시인을 꿈꾼 것은 본인의 말로 확인되었으니 무리가 없다. 그러나 '고교 자퇴생'이란 표현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인터뷰 기사를 뒤져도 어느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는지 나오지 않았다. 시인을 꿈꿨고, 야간자율학습이 건강에 좋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흔히 나오는 고교 시절 은사를 찾아가 학창 시절 어땠는지 물어보는 기사도 나올 만하지만, 그런 기사 역시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고등학교 중퇴 이후 과외 선생의 인터뷰 기사가 떴다. 과외 선생을 했던 분은 현재 모 대학의 교수로 계신 분인데, 과외를 할 당시에는 서울대 박사과정생이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허준이 교수의 모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학비리로 유명하여 여러 차례 내홍을 겪었던 강남의 S고등학교였다. 이 정도로 팩트 체크를 하고 나면 허준이 교수가 범상치 않은 과정을 거쳐 서울대에 입학하였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의 함의는 매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관련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함부로 영웅 서사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영웅 서사의 선호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학창 시절 수학을 못했다는 도시 전설이 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물론 천재급 학자들 틈에 있으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천재성에 비하여 못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수학 실력이 보통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정도의 실력으로는 아무리 옆에서 도와줘도 노벨상을 탈 수는 없다.

허준이 프레임

학력고사 수석 시대의 보도가 오늘로 이어진 것이 만점자 보도이다.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을 충실히 했더니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는 기사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공부한다고 해서 누구나 수석이 되는 건 아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수석이나 만점자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관행을 자제하자는 신사협정이 나온다면 만점자 관련한 보도가 안 나오겠지만, 어느 순간 불문율이 깨지면 영웅 서사라는 조미료가 가미된 보도들이 나온다. 전국체전 금메달도 아니고 이런 경마식 보도는 교육에는 절대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교 중퇴라는 사실과 수포자라는 단어에서 한국의 교육 현실을 호도하고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정작 당사자는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국내파라고 강조하고, 한국 교육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하지 않았음에도, '허준이'라는 필즈상 수상자를 영웅서사와 한국 교육의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사람이 많다.

서두는 필즈상으로 시작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필즈상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한국 교육에 대한 시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드러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기사가 나온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필즈상 수상이라는 상에 집착하고, 수포자라는 담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의 시선은 그 자체로 한국 교육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언젠가 동네 수학 학원에 어느 전교 1등이 다닌다고 했더니 그 학원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학원에서 전교 1등이 배출되면(?) 학원 현수막도 달고 학원 앞에 관련 내용도 붙이면서 홍보를 한다. 그러면 많은 학부모들이 그 학원에 몰려간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이중적 시선
 
큰사진보기지난 6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7월 모의고사를 보고 있다. 자료사진.
▲  지난 6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7월 모의고사를 보고 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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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전교 1등과 꼴등의 교육은 달라야 한다. 허준이 교수를 키우는 교육과 수포자를 위한 교육도 다르다. 다른 걸 다르게 보지 않고 똑같이 보는 것에 비극이 있다.

수포자의 문제를 볼 때는 필즈상 수상자나 수능 만점자, 혹은 전교 1등을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봐야 한다. 기초 학력 미달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된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건만, 학교에서 수포자나 영포자가 줄어든다는 통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수포자를 직시하지 않고 낭만적 호도의 사례로만 활용할 뿐 제대로 된 기초학력 미달 교육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거 진보 교육감이 보수 교육감으로 바뀌면서 기초 학력 미달 문제를 거론하며 시험을 늘리고, 전국 단위 평가를 강화하겠다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시험을 많이 보면 기초 학력이 해결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를 들이미는 걸 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진짜 문제점이 무엇인지 여실히 나타난다. 시험을 많이 필요로 하는 학생이 과연 수포자일지, 전국 단위 등수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 입시생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야자를 강제하는 한국의 꽉 막힌 교육 현실을 필즈상에 빗대 비난하는 건 또 무슨 이율배반인지 모르겠다.

누차 강조하는 바이지만 교육에는 트레이드오프가 있다. 모든 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이란 없으며, 교육은 인생과 같아서 하나의 단면에서도 매우 다양한 함의가 나타난다. 고교 자퇴라는 코드에서 한국 교육 획일화의 문제를 읽어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사학 비리 학교에 대한 의심을 보낼 수 있고, 다른 측면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알아보지 못한 인재가 있었다는 평가가 가능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서울대 박사과정생의 과외가 존재하기도 했다

이런 복잡성을 이중적 시선으로 체화하며 전혀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부조리도 있다.

필즈상 이후 벌어진 한국 교육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SNS에 쓴 개인 감상을 옮겨 놓는다. 교육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중적 시선. 이 시선 자체에 우리 교육의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들은 교육에 있어서 이중적 인식 구조가 있는 듯.<br />한 편에서는 초등 때부터 선행하고 특목고 안 가면 인생 끝난 것처럼 자녀를 몰아붙이다가도, 또 한편에서는 획일적 입시 중심의 교육을 비판하고 구구단도 늦게 외우고 학교 시험에 적응 못한 창의적 인재에 대한 신화화된 도시 전설에 환호를 한다.<br />만약 학원도 안 보내고 필즈상 수상자 하듯이 시집 읽고 그러다가 애가 좋은 대학도 못가고 그래도, 교육 잘 시켰다고 해줄까?<br />교육에 대한 가치 기준과 내적 욕망 사이에 극도의 모순 상태가 합일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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