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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도, 경주 최부자도 포기 못하는 영남대의 이상한 징계

'최외출 총장 비판'보다 더 놀라운 징계사유... 3년 전 설립자 후손 강연 문제삼아

22.07.13 05:08최종 업데이트 22.07.13 08:45

 

 ▲ 경북 경산시 영남대 교정 ⓒ 영남대


영남대학교가 이승렬·김문주 교수를 대상으로 3년 전 일을 문제삼아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 두 사람은 2019~2020년 각각 교수회 의장과 사무국장을 지내며 학내 민주화를 촉구한 바 있다.

사건 경과는 이렇다. 최외출 교수가 총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2021년 2월 18일, 총장 직속기구인 영남대 법무감사처는 이승렬 교수에게 감사 진행 사실을 알리며 소명서 제출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등 징계를 시도했다. 사유는 네 가지였다.

 ① 2019년 5월 영남대의 전신인 구 대구대의 설립자 집안,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부를 운영해온 경주 최씨 집안의 유족 최염 선생 초청 강연 건 
② 2019년 8월 학내의 특정 인사(최외출 총장, 당시 교수)를 검찰에 고발한 건
③ 동성로에서 개최된 검찰개혁 3차 촛불집회에서 검찰이 수사 중인 특정 인사 고발 건을 언급하며 "박근혜의 하수인"이라 칭한 사실 
④ 총장 선출 규정 개정 부결의 부당함을 경북대 국감장에서 호소한 건 


교내외에서는 '표적 감사', '부당 징계 시도' 논란이 일었다. 이 교수 등 교수회가 비판해오던 최외출 교수가 총장으로 취임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가 문제삼은 항목 중에도 '특정인사 비판·고발'이 포함돼 있다. 최 총장은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측근이자 학교법인인 영남학원에서 막강항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립자 후손 초청 강의는 왜 문제인가

그런데 더 놀라운 사유가 있다. 영남대 전신인 대구대학 설립자의 손자 최염 선생을 교수회가 초청해 그 집안의 독립운동의 역사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정신을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경주 최씨 집안이다. 신라 말 이름난 문장가인 최치원의 후손으로 300여 년간 조선 최고의 부자로 명성을 누렸다. '마지막 최부자'로 알려진 최준의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지원과 백범 김구와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14년 독립운동가인 안희제가 백산상회를 세워 독립운동자금 조달계획을 세웠고, 최준은 발기인으로 자본금을 지원했다.

안희제는 1942년 일제의 고문에 순국했고, 광복 뒤 백범 김구가 최준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에 소중히 사용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때 최준은 안희제의 고향인 경남 의령 방향으로 절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가산을 정리해 구 대구대학을 설립했다. 영남대의 전신을 만든 집안 인사를 초청한 게 문제라니. 놀랍지 않은가. 
 

▲ '영남대 전임 교수회임원 부당징계 중단 대책위원회'가 7일 오전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의 전임 교수회 집행부 2명 징계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 백경록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전국 대학단체와 대구 시민사회단체들의 항의 공문이 영남대 총장실에 빗발쳤다. 징계 논의는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는 듯했지만, 대선과 지선이 끝난 직후인 2022년 6월 21일, 이 교수에게 징계사유서 공문이 전달됐다. 징계절차가 진행된 지 1년 5개월여 만이다. 이번엔 김문주 교수도 교수회 회계 등을 이유로 징계대상에 새롭게 포함됐다.

이에 한국사립대학교수연합회 등 26개 단체들은 '영남대 전임 교수회임원 부당징계 중단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연대에 나섰다. 대책위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대학의 지배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한 전임 교수회 임원에 대한 사적인 보복 징계이며, 자치기구로서의 교수회의 공적 활동과 회계운영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 전임 교수회 의장의 공적행위와 발언을 사유로 한 모든 징계 조치 철회 ▲ 교수 자치를 침해하는 행위 중단 ▲ 영남대의 사유화 중단 ▲ 투명한 학원운영을 요구했다.  

특히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경주 최부자와 영남권 유림들의 헌신에 기반해 대한민국 대학의 역사에 길이 빛나는 민립대학으로부터 출발한 영남대가 한 사람에 의해 사유화의 길을 밟아가는 것은 한국 사립대학의 현주소를 웅변해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징계 대상자인 이승렬 교수 역시 "지금 영남대가 개교 75주년 행사를 하면서, 최염 선생 강연을 주최한 것을 징계사유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75주년 기념의 모순
 

▲ 5월 13일 개교 75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식사 중인 최외출 영남대 총장 ⓒ 영남대

 
왜 영남대는 학교의 전신 설립자 후손 초청 강의를 문제 삼았을까.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개교 75주년 약사의 시작을 '1945년 10월 2일 대구대학 전신 경북종합대학 기성회 조직, 회장 최준 선생 취임'이라고 명기했다.

한편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제 1조는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해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영남학원은 박정희 정권이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병합해 세웠다. 

지난 5월 13일 개교 75주년 기념식에서 정홍원 전 국무총리 역시 축사를 발표하며 "지난 75년간의 영남대학교 역사가 바로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설립자이신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민족중흥의 동량 양성이라는 교육 비전처럼, 영남대학교 인재들이 바로 대한민국 발전의 주역이 됐다"고 말했다.

설립자의 사전적 의미는 "기관이나 조직체 따위를 새로 만들어 세운 사람"이다. 과연 영남대의 '진짜' 설립자는 누구일까. 75주년이라는 역사도, '박정희'의 역사도 포기하기 싫은 현 상황이 우스꽝스러운 모순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영남대는 차라리 창립 75주년을 기념하지 않는 게 덜 부끄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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