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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일터 바꾸려 헌신했는데…” 폭우로 인한 참극에 오열한 동료들

폭우 피해로 반지하에서 숨진 일가족 빈소엔 울음소리만 가득…노조 “재난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더 가혹”

  • 발행 2022-08-10 19: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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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폭우 침수 피해로 사망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3명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022.8.10 ⓒ뉴스1 
 
모두에게 울타리가 되어줬던 사람. 도움이 필요한 이를 외면하지 않고, 그 손을 함께 잡아준 사람. 자신보다 남을 더 걱정했던 사람. 자신의 일을 사랑했기에 이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앞장서 목소리를 냈던 사람….

기록적인 폭우 피해로 세상을 떠난 고 홍 모 씨를 동료들은 이렇게 기억했다. 생전 백화점 면세점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홍 씨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부루벨코리아지부 총무부장을 맡는 등 노조 활동가로서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동료들은 한목소리로 증언했다.

열악한 일터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힘을 모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홍 씨의 바람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 됐다.

세 사람 나란히 놓인 영정사진,
조문객들은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10일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홍 씨와 홍 씨의 언니, 홍 씨 딸의 빈소가 차려졌다. 이들은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서 고립돼 있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장례가 시작된 이날은 언제 폭우가 쏟아졌냐는 듯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조문객들은 나란히 놓인 세 사람의 영정사진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통곡했다. 한번 시작된 울음소리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상주로는 고인이 활동했던 노조 지부장인 김성원 지부장이 이름을 올렸다. 해외에 있는 남동생은 아직 귀국하지 못한 데다가 노모는 사고 전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다. 

빈소 밖에는 여러 노조와 각종 단체에서 보낸 근조 화환들이 줄지어 있었다. 노조 조끼를 입은 조문객도 많았다. 홍 씨가 노조 활동에 얼마나 열의를 다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던 장면이다. 
 
상주는 고인이 활동했던 부루벨코리아지부 김성원 지부장이 맡았다. 김성원 지부장은 근조화환에 고인이 딸과 행복한 곳에서 웃으며 보내라는 바람을 적었다. ⓒ민중의소리

김 지부장은 근조 화환에 이렇게 적었다. "○○(홍 씨 이름)야, △△(홍 씨의 딸 이름)이랑 행복한 곳에서 웃으며 지내고 있어."

홍 씨 동료들에 따르면, 홍 씨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부에서 함께 활동한 김수현 사무국장은 "항상 본인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에게도 똑같았다. 본인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다"며 "항상 가족에게 헌신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본인은 더 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위원장은 "사고가 난 상황을 기사로 보면서 너무나 참담했다. 누구라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 아니었겠나"라며 "그 모습을 보면서, 고인한테 대체 누가 누굴 위해서 헌신하고 살아왔던 건지 묻고 싶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고, 그가 마음으로 다했던 역할들을 저희가 잘 이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항상 손잡아주던 친구였다"
동료 노동자 권익 보호 위해 고민하고 활동했던 고인


동료들에게 홍 씨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동료들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던 사람이었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동료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솟구치는 눈물에 손이 덜덜 떨리고,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힘겹게 홍 씨의 생전 활동을 전했다.

김 지부장은 "처음에 노조가 만들어질 때 가입하라는 권유가 있었을 때 (홍 씨는) '이건 당연히 해야죠'라고 얘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기 일을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라서, 자기가 사랑한 직업, 이 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잘 살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모든 유통산업이 대부분 아주 적은 임금으로 시작하는데, 그것을 바꿔내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신입 직원의 임금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이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이유로 떠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최자현 삼경무역 지부장은 홍 씨 덕분에 노조를 만들게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는 곳에서) 구조조정과 권고사직이 있어 홍 씨에게 상담했는데,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줬다"며 "그래서 저는 '노조가 이렇게 어려울 때 함께 손잡아주는 거구나'라고 느꼈다. 홍 씨도 항상 그랬다. 싫다는 말이나 거절하지 않았다. 제가 뭘 부탁하면 손잡아주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남은 동료들 "고인이 바랐던 세상 위해 노력할 것"
 
폭우가 쏟아지면서 지난 서울 신림동 한 주택 반지하에 살고 있던 40대 여성 A씨와 B씨, B씨의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현장 신림동 반지하 주택 모습. 2022.08.09 ⓒ민중의소리

지부는 홍 씨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이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부는 "우리 동지가 생활했던 반지하는 주거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주거 형태"라며 "반지하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우리 동지도 저임금에 시달리는 서비스노동자로서 어려운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부는 "몇 년에 걸친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한 면세점 노동자들의 소득 저하는 더욱 반지하가 아닌 다른 주거 형태를 선택하기 어렵게 했을 것"이라며 "지금도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도 반지하에서도 생활하고 계신 분들이 많다. 그분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나은 주거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부는 "재난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고 있다"며 "지금도 어렵게 생활을 꾸려나가고 계신 분들에게, 아니 그 누구에게도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긴급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지부는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우리 동지가 바랐고 만들고자 했던 꿈이었다"며 "고인의 동료 조합원들은 고인이 생전에 바랐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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