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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닥은 진즉 내 영혼의 땅이 되어버렸다

라닥은 진즉 내 영혼의 땅이 되어버렸다

 
청전 스님 2013. 08. 23
조회수 273추천수 0
 

 

<청전 스님의 라닥 순례기 3>

 

 

<<카르샤 곰빠에서 바라본 장관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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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닥 곰빠는 어느 절을 가든 쥐죽은 듯 고요하다. 한참 후에서야 사람 사는 절 인양 하나둘씩 얼굴을 내민다.

 

카르샤 곰빠. 이곳 쟌스카 계곡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여러 크고 작은 암자를 거느린다. 물 건너 저쪽엔 비구니 사원과 비구니 암자도 몇 군데 따로

떨어져있다. 대중 스님이 백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80줄 노스님만 근 40여명이나 계셨는데 지금은 반으로 줄었다. 모인 스님들께 약품이며 선물꺼리와 돋보기안경 등등 부산한 처방인데 각자 파트별로 일을 해야만 한다.

 

사미승들은 자기들 과자나 새로 보는 문구류와 먹꺼리에 온통 신이 나 있고, 받아간 아이가 어느새 마을에 내려가 자랑했는지 줄이어 끝없이 나타난다. 여름방학이라고 각자 자기 집에 가있다고 선생스님이 말한다. 그쪽 출가는 우리 한국식 출가 개념이 판이하게 다르다. 즉 집에서 멀리가 아닌 출가로써 마을에서 바로 마을 절로 들어가니 새로울 게 하나도 없는 출가인 것이다. 그리고 일평생 그 절에 머문다. 또 집집마다에 한명은 스님이 되니 사실 승속 구별이 없다는 게 사실이며, 나는 출가스님이란 좀 우쭐대는 그런 상(相)에 빠질 일이 없다. 가끔 자기들만 입는 유별나게 화려한 포장지(?)를 폼 나게 두르고 외국에 가서 무슨 린포체니 하면서 예식을 일삼는 그들은 자기를 속이며 법을 유린하는 위선자이기가 쉽다. 가끔 여기에 연락이 오기도 하는데, 심지어 여인 만나 환속한 린포체들도 다시 승복 챙겨 입고는 나돌 수 있는 게 한국 땅 인가보다. 눈 감고 아웅 하는 이면엔 돈벌이가 된다는 것, 막말로 돈이 된다면 법(法:진리)도 멀리 하는 막가는 세상이다. 이곳 달라이 라마도 늘 법회장 마다에서 현대판 린포체들의 타락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즉 법을 빙자하여 일신의 안일과 돈벌이로 호화로운 삶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사미승들에겐 그저 먹거리가 최고. 한국산 초콜렛과 필기구에 온 정신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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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묵으며 근처의 비구니 사원과 암자를 다 돌았다. 이 절 법당엔 눈여겨 볼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 불상 뒤에 모셔져 있기에 일반 참배자들은 좀처럼 친견이 쉽지 않은 곳으로, 한 스님이 탑 안에 고요히 정갈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어깨와 머리모습만 볼 수가 있다. 800년 전에 입적한 노스님이 탑 안에 지금도 그대로 앉아 계신다. 이름은 “도데 린첸” 어르신 스님. 이 탑의 등신불을 볼 때마다에 생각이 깊어진다. 이런 멋진 열반이 티벳불교 수행의 특성이겠지만 만일 한국 어느 수행자가 흩어지지 않는 이런 선정의 모습 정좌의 자세로 몸을 버린다면? 어떤 누구 큰스님 입적엔 허다히 검은 의식이 치러지기도 하니까 하는 말이다.

 

이튿날은 저쪽 능선 자락에 자리한 통데 곰빠로 이동이다. 이 절은 카르샤 곰빠 보다 백 미터가 더 높은 해발 3750m이다. 다시 시장에 들러 그제 샀던 물품을 똑같이 샀다. 항상 곰빠는 무슨 요새인양 능선 위에, 또는 급한 경사면에 흡사 제비집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 자리는 우선 물이 나고 양명하다. 사람이 들어앉아 살아갈 수 있는 천혜의 자리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절간인데 오늘 아랫마을에 초상이 나서 다 그 집에 내려갔다며 법당지기 따시 왕뒤 노스님뿐이다. 양지에 앉아 버터 불 놋쇠 그릇을 백여 개나 꺼내 놓고 반짝 반짝 윤을 낸다. 일곱 살에 출가하여 지금 78세 나이까지 이 한절에 계신다. 주름살 깊은 얼굴 모습이며 때 묻은 옷가지가 이를 말해주는 듯, 특히나 손수 꿰매 만들어 신고계신 야크 가죽 신발은 과연 명품이다.

 

우리 야크님이 자리에 곱게 앉혀놓고는 손톱을 깍아 드리는 게 보기 좋다. 여기서 야크님이란 일행 중의 한 사람으로 으레 불리는 이름이 야크가 되었다. 무슨 업력일까, 카일라스 성산을 세 번이나 갔으며 티벳 여행만 해도 열아홉 차례나 해낸 그야말로 티벳 땅엔 이골이 난 티벳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티벳 말도 얼추 알아듣고 짧은 말을 구사하니 가끔 웃음보를 터트리기도 한다. 서울에서는 중국 대사관 앞에서 일인 시위를 매주 혼자 나간다. 티벳 독립을 위한 헌신이리라. 스스로 이멜 아이디도 티벳 야크로 쓰니 우리는 늘 상 야크님이라고 부른다. 이번 길에 돋보기안경 맞춰주는 일을 전문으로 맡았다. 스스로 자기 죽을 곳도 티벳 어느 지역으로 미리 정해두고 사는 우리 야크님, 늘 자기 안사람이 보살이라며 자기를 이렇게 휴가 주는 최고의 싸단장(?)이 어디에 있느냐며 기회만 나면 전화 보고다. 전화 끝엔 꼭 알아듣지 못하는 러시아 말로 뭐라 뭐라 하는데 기가 막힌다. 그 나라도 세 차례나 저인망 여행이라니 누구 기 죽이는 거지.

 

<<통데 곰빠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본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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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무렵에서야 마을 간 스님들이 다 올라오신다. 반가운 시님들, 일 년에 한 번 찾아가는 필자에겐 이분들이 불보살의 화현으로 다가온다. 가끔은 내가 인도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라닥을 잊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 내 인도 26년에 라닥은 진즉 내 영혼의 땅이 되어버렸다. 한 달여 라닥 일주를 마치고 다람쌀라에 돌아가면 늘 파김치가 된다. 그러면서 이젠 더는 못 갈 곳이야 해놓고선 몇 달이 지나면 솔솔 그쪽 곰빠와 스님들이 살아 움직인다. 다시 온갖 약품을 챙기며 내년 여름을 기다리는 것이다. 언젠가 이런 시를 지어 놓기도 했다.

 

 

라닥을 넘나들기 몇 해이던가

아프고 헐벗은 많은 불보살

내 그들을 외면 할 수가 없어

남은 세월 평생을 그들과 벗하리.

 

 

함께 온 대원 모두 힘이 나는지 각자 사진 담기에 열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풍광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역사적으로 이 척박한 라닥 땅은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되기 전에는 티벳에 속한 작은 왕국이었다. 독립하면서 국경이 인도로 그어진 것이다. 그 때 주민들의 말이란 “아니! 왜 우리가 인도야 티벳이지.” 했다고. 땅덩어리 모습이란 게 티벳 지형은 아니다. 그렇다고 인도 판 땅 모양도 아니다. 그냥 라닥일 뿐이다. 너무나 특이한 모습에 산 좋아하는 트렉커들의 정원인 것이다.

 

<<우리 일행이 쟝글라의 폐허 왕궁을 갔다. 헌데 지금 이 다섯 사람은 꼭 전과자나 은행털이 전문범 같지 않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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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또 이동, 쟝글라 고을로 내려간다. 이젠 여기서부터 링세 곰빠에 이르고 벗어날 때까지 걸어야 된다는 일이 길잡이인 나에게 중압감이 따른다. 무슨 평지를 신나게 걸을 산길이라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사오천 고개 세 개를 당장 내일부터 넘어야 링세 곰빠에 이르고 거기서 또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우리 찌프를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차가 내일부터 온 길을 되돌아 카길에 맡겨둔 짐을 실고 어느 지점까지 와야만 된다. 고을 마지막이라 할 여기엔 조그마한 비구니 절이 있다. 절 마당에 송아지 한 마리가 세월 좋게 겁 없이 뛰어논다. 대중 스님들이 매일 우유를 먹도록 언젠가 사 준 영양사 엄마소가 두 달 전에 새끼를 난 것이다. 그런데 숫 송아지라서 젖 때고는 마을에 줄 거라며 암 송아지 못난 것을 아쉬워한다. 간단한 진료를 마치고 옛 왕궁 터 쟝글라 성을 왕복 했다. 주인 없는 왕궁이라 보기에 그럴싸하지 가보니 신통한 게 없다.

 

<<소박한 쟝글라 비구니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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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닥 마을 주변이나 절 주변엔 이런 마니석 돌담이 참 예쁘다. 옴 마니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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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한방에 모여 비좁게 자다가 드디어 라닥 지역의 독한 빈대 떼에 공격을 당했다. 그것도 이상하게 우리 야크님께만 달라붙어 피를 빨아댄 듯 온 몸에 붉은 점이다. 다른 사람은 별로 물린 곳이 없었는데. 아마 이놈들도 수입품 똥똥한 살집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나 보다. 좀 가물은 체형인 나와 빠리 스님은 다행히도 두어 군데만 물렸다.

 

<<절 마당의 쏭아지, 너 임마야 왜 숨놈으로 나왓냐 시끼야! 암놈이문 땡잡은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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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를 낳은 엄마소. 이 비구니 사원의 우유 공급원 영양사 임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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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닥 순례3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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