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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개 노동·시민사회·진보정당, ‘손배 폭탄’ 막을 노조법 개정 운동 착수

“수십·수백억원의 손배는 절망 그 자체, 노조법 2·3조 개정해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의 호소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2022.09.14 ⓒ민중의소리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이트진로 사태를 계기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문제가 대두되자, 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범사회적인 법 개정 운동이 14일 시작됐다. 손배소 제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노란봉투법'에서 나아가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에 대해 원청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게 하는 내용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 시민사회단체 93곳과 진보정당 4곳(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은 이날 국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운동본부)'의 출범을 선언하며, 올해 안에 노조법 2조와 3조를 모두 개정하기 위한 활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인 파업에 쉽게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고, 파업 이후에도 수십·수백억원에 달하는 손배소로 노동자를 탄압하게 만드는 근거가 노조법 2조와 3조에 있다고 본 것이다.  

'노동자 탄압용' 무분별한 손배소 막으려면?
운동본부 "노조법 2, 3조 모두 개정해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2022.09.14 ⓒ민중의소리

운동본부는 현재의 노사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노조법의 한계가 노동자들을 쉽게 불법 파업으로 내몰고, 막대한 금액의 손배소까지 감당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회적 관심을 모았던 대우조선해양과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한 파업 투쟁이 대표적인 예다.

노조법 2조는 사용자와 노동자 등을 정의하는 조항인데, 현행법은 사용자와 노동자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면서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이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실제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 등 쟁의행위는 쉽게 불법으로 몰렸다. 최근 복잡해진 노사 관계를 반영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례도 여러 번 나왔지만, 여전히 원청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회피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노조법은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해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 바로 노조법 3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노조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라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즉, 노조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노동자와 사용자는 손해배상 청구 제한 조항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동자를 상대로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내세운 논리 역시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들의 "단체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노동위원회 김세희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쯤 되면 노조법에 의한 적법한 쟁의행의를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며 "불법에는 대가가 따라야 하고, 사용자가 강력한 손배 책임을 물어야 불법 파업이 근절된다는 말은 틀렸다. 강력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아 불법 파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의 실질을 꿰뚫지 못하는 현행의 법체계가 불법 파업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섭은 나 몰라라 하면서 파업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배소 청구한 원청
운동본부, 연내 노조법 개정 위해 국회 국민동의청원 등 예고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손해배상 당사자 노동자들과 참석자들이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며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2022.09.14 ⓒ민중의소리


운동본부가 요구하는 법 개정 방향은 실질적인 노사 관계를 반영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노조법 2조 가운데 노동자에 대한 정의를 현재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에서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자'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의 정의도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로만 규정하지 말고,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수행 업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도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조법 3조는 개별 노동자에 대해 손배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노조에 대한 손배소 청구 금액 역시 조합원 수나 조합비, 노조 재정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청구하는 내용이 분명하게 담길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조의 위법 행위로 인해 직접적으로 발생한 손해에만 책임을 물으며, 그 외의 합법적인 쟁의행위로 발생한 영업손실 등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손배소로 고통받는 당사자들도 직접 참석해 노조법 2, 3조 개정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투쟁을 이끌었던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거통고지회) 지회장은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470억원의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에게 죽으라고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노조법 2, 3조를 개정해 노동자가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수동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2지회장은 "파업 돌입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해고와 손배소 청구가 진행되었고, 화물노동자로서는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수십억원의 손배는 절망 그 자체였다"며 "하이트진로는 운송사와 화물노동자 간의 문제기 때문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회피하면서도, 화물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에는 직접 나섰다. 손실에 대한 보전이 아니라 화물노동자의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배·가압류를 이용하고 남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노조법 2, 3조 연내 개정을 목표로 여론을 모으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물론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활용해 손배소 문제점을 알려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실태 조사와 증언대회, 관련 토론회, 국제 심포지엄 등도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운동본부는 "이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기가 어렵다. 어렵사리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작은 위법을 문제 삼아 파업 전체를 불법으로 내몰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도 허다하다"며 "운동본부는 시민과 노동자들의 힘으로 반드시 노조법 2, 3조를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회에서도 노조법 개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는 같은 날 국회를 찾아 노란봉투법 전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노란봉투법이 재산권을 침해하며 불법행위에는 그에 따른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해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아직은 논의 초기 단계"라면서도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다음 주 노동계의 의견도 청취할 예정이다.

 

“ 남소연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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