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자료사진. 2022.09.14 ⓒ민중의소리
이번 정기국회 쟁점으로 떠오른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두고 재계와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논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법이며, 불법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는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에 '불법파업 조장법', '민주노총 보호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치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인 양 몰아간다. 정말 그럴까.
97개의 노동·종교·시민사회단체 등이 발족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운동본부)'는 2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재계와 정부여당이 노란봉투법 총력 저지 태세를 보이자 사실을 왜곡하거나 노동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나씩 바로잡은 것이다.
운동본부는 노란봉투법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법이 아니라 사실상 합법적인 파업이 불가능한 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며,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당사자들이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살리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노란봉투법이 불법파업 조장한다'는 주장의 함정,
그렇다면 대체 어떤 파업이 합법 파업일까
보통 불법 파업이라고 할 때 쉽게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폭력을 쓰고, 시설물을 파괴하는 행위가 동반된 파업 투쟁의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이라서, 현행법상 한계로 근로자임을 인정받아야 하는 이들의 파업이라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등 법에서 보호하는 목적의 파업이 아니라서 불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측은 이를 적극 활용해 '불법 파업'을 주장하며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이러한 압박을 견디지 못해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노조는 쉽게 파괴됐다.
이는 현행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이하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 '쟁의행위'가 매우 협소하게 해석되는 한계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동안 간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려웠고,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원청 업체는 직접적인 근로 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며 사용자 책임에서 빗겨나 있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를 폭넓게 인정하는 판례들이 나오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2018)와 방송 연기자도 근로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2018)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노동자의 '진짜 사장'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이라는 대법원 판례(2010)도 나왔으며, 이 판례를 바탕으로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의 사용자로서 교섭 의무가 있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단도 나왔다.
운동본부는 이런 상황을 언급하며, 노란봉투법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고 변화된 판례 취지에 맞게끔 법을 개정하자는 요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운동본부는 불법 파업인데도 면죄부를 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현행법이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이걸 헌법에 맞게 정상화하자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윤 연구원은 "이미 대법원 판례는 노동3권을 누릴 근로자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있지만, 이런 보호를 받으려면 대법원에 가서 10년 넘는 소송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사용자는 (재판이 진행되는) 그 시간에 노동자를 탄압한다. 잘못된 법 해석에 기댄 사용자의 노조 탄압 행위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연구원은 노란봉투법이 '민주노총 살리기법'이라는 여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노조에서 파악한 손배 청구 소송으로 고통받는 사업장을 보면, 대부분이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사업장"이라며 "정치권에서는 민주노총이 대공장 정규직 이익만 대변하는 기득권 조합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헌법에도 보장된 노동기본권마저 누리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손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용우 변호사도 "노란봉투법은 민주노총 보호법이 아니라 현실에서 노동3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운동본부가 제안한 노조법 2, 3조 개정 방향은?
운동본부의 제안은 노조법 2조에서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을 현실에 맞게끔 확대하자는 것이다. 아직 초안 수준이지만 대략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현재 노조법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그 밖에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의 필요성이 있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산업별 연합단체 또는 전국규모의 산업별 단위노동조합이 규약에 따라 조합원으로 승인해 가입해 활동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사용자를 정의하는 규정 역시 현행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에 더해 ▲근로자의 노동조건 또는 수행업무, 노동조합 활동 등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이나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 ▲노동조합에 대해 노동관계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자 ▲명칭에 관계없이 원사업주가 자신의 업무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사업주에게 맡기고, 자신의 사업장 또는 사업체계 내에서 해당 업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경우의 원사업주라는 정의도 포함해야 한다는 게 운동본부의 생각이다.
이 외에도 노조법에서 협소하게 보장하는 쟁의행위의 목적도 '근로조건 및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주장 불일치'라는 조문을 추가해 확대 보장하자고 제안했다.
초기 노란봉투법 제정 운동에서 제기한 노조법 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규정도 개정 요구 대상이다. 평화적인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제한하도록 하자는 대원칙하에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손배 청구 권리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사측의 손해 입증 책임을 엄격하게 하거나 손해배상 감면 청구제도를 신설하자는 내용이다.
노동3권보다 재산권이 먼저?
'노란봉투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의 허점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25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해당 개정안이 위헌 논란(재산권 침해), 민법상 손해배상 원칙 적용의 형평성(노조에 대해서 예외 인정) 등에 대한 법리적 우려가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보다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2일 대정부 질문에 출석, "헌법상의 평등권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위헌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헌법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한다"고 명시하지만,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제한한다. 재산권 보장이 절대적인 원칙이 아니란 의미다. 이미 노조법 3조는 사용자가 노조법에 의한 쟁의행위로 손해를 입더라도 노조 또는 노동자 개인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이 점을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정부는 재산권이 신성불가침하다는 전제하에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동3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헌법에는 (재산권과 달리) 노동3권에 대한 제한이 없다"며 "하지만 정부는 재산권과 노동3권 사이에서 재산권을 우선한다고 전제하고, 민법과 노동법의 관계에서 민법이 우선한다고 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윤 변호사는 "민법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가 손해배상을 책임진다고 명시하지만, 그에 반대되는 내용으로 현행 노조법은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기본적으로 쟁의행위 자체가 사용자에 손실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고, 노동3권의 취지를 살려 쟁의행위에는 손배 자체가 안 된다고 법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윤 변호사는 사측이 사실상 노조 탄압을 위해 손배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손배 청구 대부분은 손해를 보전받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노조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며 "엄밀하게 따지면 노조 탈퇴 압박은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고, 오히려 사용자가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측의 불법적인 행위에 소송이 이용되는 것인데, '소권은 남용될 수 없다'는 민법과 민사소송법에 따라, 법원이 직권으로 (손배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운동본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란봉투법 처리를 위한 총력 투쟁에 나선다. 오는 29일에는 직접 경총을 찾아 노란봉투법에 대한 공개 토론을 제안할 예정이다. 내달 초에는 운동본부 차원에서 법안을 성안해 발표한 뒤, 국정감사가 끝나는 11월 이후 대국회 투쟁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회 상황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단독으로도 법안 처리가 가능한 의석수(150석 이상)를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을 이번 정기국회 7대 입법과제 중 하나로 꼽았고, 운동본부에 속한 정의당은 당론으로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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