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노조법 2조와 3조(노란봉투법) 개정과 관련 법안을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0.18 ⓒ민중의소리
시민사회단체가 18일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한하기 위해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만들어 발표했다. 지금까지 국회에 발의된 노란봉투법, 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는 노조법상 근로자의 정의를 대폭 확대한 점과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사용자의 책임도 묻는다는 점이다.
전국 1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운동본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운동본부 차원에서 성안한 노조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운동본부는 이 개정안이 대법원 판례와 국제 사회 기준을 반영했다고 설명하며 "어느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복잡해진 노사 관계 반영 못한 노조법2조,
'진짜 사장' 책임지도록 근로자·사용자 정의 개정
"노조 조직하거나 가입한 자는 근로자로 추정"
운동본부는 노조법 2조(정의)에서 규정하는 '근로자', '사용자', '노동 쟁의'의 정의를 현재 노사관계에 맞게 정리했다.
그동안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는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등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간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 등은 오랜 법적 분쟁을 거쳐 노조법상 근로자임을 인정받아야 했고, 그 사이 사측은 노조 활동을 불법행위로 내몰면서 막대한 금액의 손배소를 청구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사내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470억원의 소송을 제기한 이유 중 하나도 '원청은 하청지회에 대한 단체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최근 판례는 새로운 노동 형태가 늘어난 현실을 반영해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2018)와 방송 연기자도 근로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2018)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노동자의 '진짜 사장'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이라는 대법원 판례(2010)도 나왔으며, 이 판례를 바탕으로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의 사용자로서 교섭 의무가 있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단도 나왔다.
이렇게 변화된 판례를 법에 담아내자는 게 운동본부 생각이다. 운동본부 정책법률팀 권두섭 변호사는 "새로운 입법이라기보다 지금의 대법원 판례와 자영업자도 단체교섭할 권리를 보장하는 ILO핵심협약을 비준한, 변화된 상황에 맞게 반영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동본부는 우선 노조법상 근로자 정의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는 현 조항에 "이 경우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자는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문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일부 노조법 개정안도 노조법상 근로자의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법이 개정되더라도 지금처럼 법원의 해석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운동본부는 일단 노조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이들을 일단 노조법상 근로자로 '추정'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자고 주장했다. 만일 사용자가 이에 반발한다면, 왜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닌지를 입증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의 반론권도 보장된다.
노조법 2조 상 사용자의 정의도 확대했다. 현재 노조법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라고만 규정돼 있는데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에 대해 노동관계의 상대방으로서 지위에 있는 사업주"라는 정의를 추가했다.
또한 ▲근로자의 노동조건, 수행업무 또는 노동조합 활동 등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 ▲명칭에 관계없이 원사업주가 자신의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사업주에게 맡기고 자신의 사업장에서 해당 업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경우의 원사업자에 해당하는 경우도 각각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했다. 이렇게 개정하면 사내 하도급의 원청 사업주 역시 사용자로서의 지위가 인정된다.
정리해고에 반발한 파업도 불법이 될 정도로 협소한 '노동 쟁의' 조항에 대한 규정도 수정했다. 노조법상 노동쟁의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 임금·근로 시간·복지·해고·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운동본부안은 "노동자의 조건과 근로자의 지위,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사항, 그 밖에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분명히 했다.
유명무실했던 노조법 3조는 '손배 폭탄 방지'하는 방향으로 개정 추진
손해배상 면책 조항인 노조법 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는 '노조 탄압용 손배소'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대폭 개정했다.
현재 노조법 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노조법에 의하지 않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는 노조법상 면책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노조법상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만큼 해당 조문을 수정해 손배소 제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게 운동본부의 입장이다.
운동본부는 '노조법에 의한' 면책 조항이 아닌, '헌법에 의한' 면책 조항으로 개정하자고 제시했다. 즉, "'헌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에 (노조법) 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의 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노조의 쟁의행위 원인이 되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조항을 신설한 점도 눈에 띈다. '노조의 쟁의행위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발생한 경우에는 그로 인한 손배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는 조항이다. 운동본부는 "최근 쟁의행위는 사용자의 단체교섭 거부, 대체인력 투입, 합의 파기 등의 불법한 행위에 기인하거나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그 책임을 사용자가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조항 역시 최근 법원 판결을 반영한 것이다. CJ대한통운은 택배노동자가 파업하자 대체 인력을 투입했고, 이에 저항한 택배노동자를 상대로 16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직접 배송을 방해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계 수단을 빼앗기는 데 대한 항의의 일환이고 그 자체로 자신들이 배송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사측에 패소 판결했다.
'사측의 소권 남용 제한'을 법 조항으로 분명히 한 점도 주목된다. 운동본부 개정안은 "사용자는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근로자를 괴롭히기 위한 소를 제기하거나 가압류를 신청하는 등으로 소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법원이 이 조항을 근거로 사측의 악의적인 손배소 및 가압류 신청을 각하할 수 있도록 했다.
권두섭 변호사는 "법원 관계자들과 토론하다 보면, (사측이) 노조를 탈퇴할 시 손배소를 취하하는 경우 등 명백하게 소권을 남용한 것 같다는 경우가 있다. (이를 방지할) 명확한 규정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법원이 각하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없어서) 어렵다는 의견을 반영했다"고 부연했다.
이 외에도 ▲노조가 아닌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배소 청구 제한 ▲노조 존립을 위한 손배액 제한 ▲신원보증인에 대한 청구 제한 ▲손배액 감면 청구 등은 기존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과 대동소이한 내용이 담겼다.
운동본부는 이번에 만든 개정안을 의원 발의 형태로 추진할 예정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이자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용우 위원장은 "이 법안에 담긴 핵심적인 내용으로 (노조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의원 발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라며 "조만간 대표발의할 국회의원들과 상의해 신속하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석운 운동본부 공동대표는 "국회 내 여야 정당의 대표들과 면담 요청을 했다"며 "이를 통해 적극 소통하고 조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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