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망사고 발생한 SPC 계열 제빵공장의 ‘2인1조’가 허울뿐인 이유

SPL 공장서 고강도 소스 배합 작업 중 사고…“각기 다른 작업하는 2명은 2인1조 아냐”

 
지난 15일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평택의 SPL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흰 천으로 싸여 있는 게 사고가 발생한 기계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제빵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 노동자가 대형 믹서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SPC그룹 계열사에서 발생한 사고다. 옆에 1명만 있었더라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2인1조는 지켜지지 않았다.

17일 경찰과 평택고용노동지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전 6시경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SPL 제빵공장에서 여성 노동자 A(23) 씨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SPL은 생동생지와 빵, 샌드위치 등 완제품을 생산해 파리바게뜨에 납품하는 회사로, SPC그룹 계열사다.

A 씨는 빵에 들어갈 소스를 배합하는 작업 중 사고를 당했다. 소스 배합기는 일종의 대형 믹서기다. 오각형의 솥 형태인 소스 배합기는 1미터 정도로, 허리 높이다. 날카로운 날이 달린 스크루가 돌아가면서 땅콩과 버터 등 재료를 섞는다. A 씨는 소스 배합기 안으로 상반신이 끼여 고꾸라진 채 발견됐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다. 앞치마가 소스 배합기 안으로 빨려들어 갔거나, 재료를 위에서 채워 넣다가 사고가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SPL 평택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파리바게뜨공동행동(공동행동)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노조)는 “이번 사고는 SPL 사측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위반일 가능성이 크다”며 “사고를 예방할 교육도, 사고를 예방할 조치도 없이 위험한 공정에 홀로 피해자를 작업하게 한 것이 사고를 유발했다”고 짚었다.
 
17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SPL평택공장 앞에서 파리바게뜨공동행동과 민주노총 산하 화섬식품노조 등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여성 노동자가 끼임사고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2022.10.17. ⓒ뉴시스

2인1조 미준수가 사고 핵심 원인

2인1조가 지켜지지 않은 게 사고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회사는 2인1조로 작업이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스 배합 작업에는 최소 2명이 필요하다. 1명은 소스 배합기에 재료를 넣어야 하고, 다른 1명은 재료를 옮겨 오거나 배합된 소스를 담을 통을 가져와야 한다. 1명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구조다. 2명이 계속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1명이 계속 자리를 비워야 해 2인1조라고 보기 어렵다고 노조는 설명한다.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강규형 지회장은 “보도에는 1명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나오는데, 이건 2인1조가 아니라 각각 다른 작업을 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1명이 재료를 가지러 가면 일이 생겨도 대응을 못 한다”며 “회사가 2인1조라고 주장하는 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소스 배합기 옆에는 비상 정지 장치가 달려 있었다. 2인1조가 지켜졌다면, 다른 1명이 비상 정지 버튼을 눌러 충분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소스 배합은 회사도 인정한 고강도 작업이다. 회사가 해당 작업에 추가 수당을 부여할 정도다. 배합된 소스를 통에 담아 12단으로 쌓고, 다음 공정으로 넘긴다. 한 통의 무게는 15kg다. 육체노동은 12시간 동안 이어진다. 야간조이던 A 씨는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했다.

강규형 지회장은 “밤새 깡통을 옮겨야 한다”며 “남자에게도 힘든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새벽이 되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시키면서도 2인1조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는 이번 사고 이튿날 소스 배합기 가동을 재개했다.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은 사망 사건 현장 바로 옆에서 같은 작업을 해야 했다.

고용노동부는 당초 사고 발생 작업과 동종·유사 재해가 우려되는 혼합 작업에 대해 작업 중지를 내렸다. 대상 기계는 7대였다. 이때 대상에서 안전장치가 설치된 기계 2대는 제외됐다. 회사는 이를 이유로 해당 기계 2대를 바로 가동했다. 현재는 노동부가 나머지 2대에 대해서도 작업 중치를 내린 상태다.

노동부가 작업 중지 판단 기준으로 삼은 안전장치는 이른바 ‘인터록’으로 불리는 자동방호장치다. 혼합기가 돌아가면 뚜껑이 안 열리고, 뚜껑이 열리면 혼합기를 정지하는 장치다. 다만, A 씨가 맡은 소스 배합은 수시로 재료를 채워야지, 한 번에 재료를 쏟아 넣고 섞을 수 없는 작업이라 인터록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재발 방지 대책은 2인1조라는 것이다.
 
SPC 본사 ⓒ출처 : SPC 홈페이지


반복된 징후, 비상식적 대응

최근에도 회사의 안전불감증을 드러내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7일 같은 공장에서 라인 작업을 하던 한 비정규직 노동자 손이 벨트에 빨려 들어갔다. 다행히 뼈에 이상이 가지는 않았으나, 사고 당시 손이 퉁퉁 붓고 출혈도 있었다.

회사 대응은 허술하다 못해 상식을 벗어났다. 회사 관리자는 다친 노동자를 포함해 해당 라인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 윽박질렀다. ‘누가 벨트에 손 넣으라고 지시했느냐’고 소리치며 추궁했다고 한다. 다친 노동자는 30분 동안 손을 붙들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 한바탕 호통 듣고 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공장 내 보건실이었다. 다친 노동자가 기간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회사는 책임이 없다며 방치했다. 치료는 얼음찜질이 다였다. 보건실에서 한참 시간이 지나도 병원에 가라는 말이 없자 다친 노동자가 직접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이때도 사측은 굳이 병원에 가야 하냐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공동행동과 노조는 “손 끼임 사고 이후 회사에서는 전체 공정에 대한 어떤 추가의 안전교육, 사고예방조치도 없었다”며 “결국 일주일 후 같은 공장 다른 공정에서 한 노동자가 산재 사망사고를 당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평상시에도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는 실제 교육을 진행하지 않고도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받았다는 서명을 하도록 지시했다고 노조는 전했다.

현재 노동부는 이번 사망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지난 1월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상시 노동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 등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번 사망 사고는 반복된 경고 속에 회사가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대재해법 적용 소지가 크다고 노조는 강조한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로 ‘재해 발생 시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이행에 관한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해당 규정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산재 방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규정 위반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이번 사망 사고와 관련해 “정확한 사고 경위와 함께 구조적 문제는 없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중대재해법 완화를 시도하며 노동 현장 안전을 후퇴시키려는 게 바로 윤석열 정부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노동부에 전달한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방안에는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업 의사결정권을 쥔 사업주 대신 CSO를 처벌한다는 것이다.

공동행동과 노조는 “어렵게 만들어진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악을 통해 무력화하려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며 중대재해법 완화 시도 중단을 촉구했다. 또한, SPL 측에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노동부에는 중대재해법에 따른 경영책임자 엄정 수사·처벌을 요구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중대재해가 발생 뒤에도 사후감독, 특별감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장 노동자들은 또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정부는 중대재해가 다발하거나 다수가 사망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대하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신속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