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조합은 6명의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서류심사를 진행했고, 1차 면접심사에 참여할 이사장 후보로 5명을 추렸다. 그런데 5명의 후보 중 두 후보가 중도에 포기하면서 3명의 후보만 1차 면접심사에 올랐고, 2차 면접심사에는 이은재 전 의원과 천길주 전 삼부토건 사장만 참여했다.
이 전 의원은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와 18·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국회에서는 국회 정보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천 전 사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현대건설에 입사해 국내영업본부장(상무)을 역임했고, 삼표그룹과 삼부토건 사장을 지냈다.
조합의 운영위원회(총 20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는 두 차례의 면접심사를 진행한 뒤 이 전 의원과 천 전 사장을 대상으로 투표에 들어갔고, 18명의 운영위원들이 투표에 참여해 이 전 의원이 12표, 천 전 사장이 6표를 얻었다. 이에 따라 이 전 의원이 차기 이사장 후보로 내정했다. 조합도 지난 12일 "최초로 공모제를 도입해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사장에 이은재 후보자를 추천했다"라고 공고했다.
이 전 의원이 조합의 이사장에 내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와 국회의원을 지낸 그에게 조합에 가장 필요한 '건설'과 '금융' 경력이 전무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들'이 '이은재 이사장이 대통령실 뜻'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이 전 의원을 이사장에 앉힌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합의 한 운영위원도 <오마이뉴스>에 "이사장에는 금융 전문가가 오는 게 제일 좋다"라며 "이 전 의원이 정치력에서는 조합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금융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사장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특히 특정 인물들이 자기 인맥을 박으려고 했다면 잘못된 일"이라고 발했다.
조합은 낙하산 논란을 없애고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공모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건설'과 '금융' 경험이 전무한 여당 출신 정치인이 이사장에 내정된 뒤 낙하산 인사 논란까지 일면서 공모제의 도입 취지가 크게 퇴색됐다. 공교롭게도 '최초의 공모제'를 홍보하는 조합 보도자료의 제목은 <자산 6조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 공모제' 도입… 전문경영인에 키 맡긴다>였다.
국회의원 시절 예산 1200만원 빼돌려 '사기혐의'로 재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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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건설공제조합이 지난 9월 2일 낸 "이사장-상임감사 초빙공고". 이사장 자격요건으로 최고경영자로서의 리더십과 비전제시 능력, 조합 업무분야와 관련한 지식과 경험, 조직관리 및 경영 능력, 청렴성과 도덕성 등 건전한 윤리의식, 국내외 유관기관과의 대외업무 추진 능력이 제시됐다. |
ⓒ 전문건설공제조합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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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은재 전 의원이 사기혐의로 재판 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권에서도 그의 이사장 취임에 부정적인 기류가 생겨나고 있다. 조합이 이사장을 공모할 때 내세운 '청렴성, 도덕성'이라는 자격요건과도 배치된다.
이 전 의원은 20대 국회의원 시절에 자신의 보좌관 지인에게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처럼 허위서류를 작성해 국회사무처에 용역비를 신청했다. 이에 국회사무처는 그 지인에게 용역비를 지급했는데 그 지인은 용역비를 다시 이 전 의원의 보좌관 계좌로 돌려줬다. 이렇게 빼돌린 예산이 1200만 원에 이르렀다.
이에 '세금도둑잡아라'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3개 시민단체는 지난 2018년 10월 이 전 의원을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고발한 지 3년이나 지난 2021년 12월 이 전 의원을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러자 이 전 의원은 벌금형에조차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현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검찰이 약식기소한 것을 이 전 의원이 정식재판을 청구해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고, 오는 11월 17일 제가 증인으로 나간다"라며 "재판이 이제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단계다"라고 재판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 나름대로 혐의를 인정했으니까 벌금 500만 원으로 약식기소한 것"이라며 "일부 의원들은 불기소하거나 경찰로 이송했을 정도로 검찰의 처벌 의지가 약했는데 (약식기소라도 한 것을 보면) 검찰로서도 이 전 의원만은 기소를 안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가짜서류를 내서 국회사무처로부터 돈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는 사기혐의가 된다"라며 "국가를 상대로 사기 친 것으로 재판받고 있는데 그런 사람을 자산 5조5000억 원을 운영하는 금융기관의 장에 앉힌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비판했다.
하 대표는 "사기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이 전 의원은 청렴성이나 도덕성의 기준으로 보면 완전 바닥이다"라며 "(사기혐의의) 증거가 너무 명백한데도 이 전 의원은 반성도 안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언급한 조합의 운영위원은 "이 전 의원의 사기혐의 재판 사실은 전혀 몰랐다"라며 "만약 사전에 알았다면 선택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건에 계류된 사람이 (이사장 공모에) 나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면서 "이 전 의원을 추천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업계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이 전 의원은 전문성도 제로이고, 경영능력도 검증된 바 없다"라며 "게다가 사기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서 도덕성이나 청렴성에서도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그렇게 결격사유가 있는 후보를 추천위원회에서 올린 것 자체가 잘못됐다"라며 "이것이 가장 문제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11월 1일까지 지켜보자"
여권 내부에서도 이 전 의원의 이사장 선임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행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18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이 전 의원의 이사장 내정과 관련해)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오고 있고,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좀더 지켜봐도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몇몇 비대위원들끼리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11월 1일까지 지켜보자고 말한 것이다"라며 "아직 통과된 것이 아니기에 저희한테 좀 시간을 달라는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날 진행자가 "(이 전 의원의 이사장 선임에) 부정적 분위기라는 말이냐?"라고 묻자 김행 비대위원은 "예, 그렇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분이 (6.1 지방선거 때) 강남구청장 공천 신청했지만 저희가 떨어뜨렸다. 며칠 시간이 남았으니까 좀더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한편 조합은 오는 11월 1일 열리는 조합 총회에서 이사장 선임 여부가 부결되면 재공모에 들어갈 계획이다. 조합 측은 "추천위원회 심사결과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되거나 운영위원회가 후보자의 재추천을 요구하는 경우, 총회에서 선임절차가 부결될 경우에는 후보자 모집을 다시 실시할 수 있다"라고 밝혔었다. 조합의 한 인사는 "조합 총회에서 이사장 선임이 부결된 경우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지난 1988년 3월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설립돼 중소·중견건설기업들을 대상으로 보증과 자금융자, 공제, 어음할인, 신용평가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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