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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도 가능”...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넓히는 윤석열 정부

권순원 교수 등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논의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2022.12.12. ⓒ뉴시스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안을 논의해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장시간 노동’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연구회는 12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지난 7월부터 검토해온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혁 최종 권고안’을 공개했다. 연구회는 지난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한 이후 구성된 전문가 논의기구다.

연구회는 우선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분기‧반기‧연’ 단위로도 관리할 수 있도록 해 노사의 선택 재량을 넓힐 것을 권고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시간을 1주일에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기본 주 40시간에 12시간의 연장근로시간을 더해 최대 주 52시간까지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었다.

만약 연구회의 권고대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가 길어진다면 주 52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과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용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성명에서 주 92시간까지 장시간 노동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장노동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할 경우 월(4.345주) 52시간(=1주 12시간*4.345주)의 연장노동을 1주에 집중되도록 하여 결국 주 92시간(=40시간+52시간)의 노동이 가능해진다는 추산이다.

이 위원장은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가 확대될 경우 특정 주에 지금보다 훨씬 과도한 장시간 노동이 집중되고, 불규칙한 노동이 반복되어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는 등의 근로자 건강권 보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회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월’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관리하는 경우 ‘11시간 연속 휴식’ 등을 모두 고려해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빈번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보장제’에 대해서도 “장시간·집중 노동과 불규칙 노동의 반복을 실효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가 전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이 보장되더라도 매일 13시간의 근로가 이어지게 된다면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는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통해 “보편적 적용이 아니기도 하고 24시간 내 11시간 휴식제가 아니라서 장시간 노동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연구회가 내놓은 또 다른 대책인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을 비례적으로 감축하라는 방안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회는 관리 단위를 ‘월’로 정할 경우 연장근로시간은 52시간, ‘분기’로 정할 경우 월 단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로 정할 경우엔 80%인 250시간, ‘연’으로 정할 경우엔 70% 수준인 440시간으로 제한하라고 권고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조차 결성하기 힘들고 사용자의 재량에 의해서 노동시간이 강제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중소영세사업장·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선택’, ‘자율’이란 말 자체가 허황”이라며 “연장근로총량제도 겉으로는 분기·연 단위로 가면 총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구색을 맞췄지만, 실제 시행 가능성이 가장 많은 월 단위 기준은 총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개편에 발맞춰 유연근로제도 중 하나인 ‘선택근로제’의 정산기간과 적용대상을 전 업종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현재는 연구개발 분야에만 한정하고, 한 달 이내의 정산기간을 평균해 주당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3개월 단위의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작년 초 연구개발 업무에 한정되어 신중하게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노동자의 선택권이라는 수사(rhetoric, 레토릭)까지 동원해 전 업종으로 확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사업장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시행은 사용자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선택권은 ‘강요된 선택’일 가능성이 높고,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할 경우 장시간·집중 노동의 폐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연구회는 사업장의 다양한 직군만 유연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부분 근로자대표’를 선출하는 방식도 제안했는데, 이를 두고는 ‘노조 패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부분 근로자대표’ 도입은 그나마 있는 노조와 근로자대표의 합의권 마저 강탈하고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의 휴식 기회를 늘리기 위해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는 대안도 내놨다. 이 경우 가산수당 기준보다 높은 수준으로 적립하는 방안을 통해 휴가 사용 유인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연구회는 강조했다.

이 밖에 연구회는 원·하청 기업 간 과도한 임금 격차를 줄이고 임금체계에 직무와 숙련도를 반영하기 위한 ‘임금체계 개혁과제’도 권고했다. 연공(여러 해 근무한 공로) 등을 토대로 정해지는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현재의 상황에서 연공급 폐지는 임금의 하향평준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직무·성과 평가의 한계로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의 임금체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연공급이 아니라 기업별 임금체계”라며 “동일 직무에 대한 기업별 임금격차는 연공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원·하청 구조의 노동시장 양극화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구회 활동은 최종 권고안 발표를 끝으로 종료된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필요한 입법 조치 등에 나서게 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노동시장을 위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며 “권고문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임금과 근로시간 제도는 이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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