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끝나지 않은 질문, 그래서 화물기사는 사업자인가 노동자인가?

[화물연대 파업 자세히 보기 ⑦] 사업자 간 계약 맺었어도, 전속·종속 관계면 노동자

 

운행을 멈춘 화물차 자료사진 ⓒ뉴시스
지난 2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 수십명이 화물연대본부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사업자로보고, 이들이 공정거래를 위협하는 담합 행위를 했는지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인 일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몰상식한 일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식당 위생을 점검하겠다고 소방 공무원이 출동한 꼴이다.

화물연대 조합원은 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다. 멀리 국제노동기구와의 협약까지 갈 일도 아니다. 한국 법원은 화물자동차 운전자가 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판결을 꾸준히 내려왔다.  

 

 

 

대법원이 ‘사업자 같은 화물운송 노동자’라고 판결한 이유


2018년 대법원의 ‘나라손 화물기사’ 판결이 대표적이다. 운송사 나라손은 깨끗한나라 물류를 담당했다. 차모 씨는 2.5톤 화물차를 구입해, 나라손으로부터 깨끗한나라 화물을 배차 받아 운송했다. 

출근 중 교통사고로 십자인대파열 등 부상을 당한 차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가 거절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차 씨를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나라손 노동자로 인정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차 씨 손을 들었다. 차 씨는 운송사업자로 등록해 표면상 사업자이나, 실질적으로는 나라손 소속 노동자로 보는 게 합당하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노동자 해당 여부는 계약 형태, 즉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를 따지기보다, 종속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반영했다.

법원 판결에서 화물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추세가 확산하고 있다. 지입차주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각급 법원의 20여개 사건에서 인용되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2018년 10월 선고한 이른바 ‘나라손 화물기사’ 사건이다. 재판부는 지입계약을 맺은 화물기사도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입제는 화물차를 소유한 기사가 운송회사와 계약을 체결해 운송 업무를 위탁받아 일하는 형태다. 서류상으로는 사업자 간 계약이지만, 화물기사는 전적으로 회사의 지휘·감독에 따라 작업한다.

재판부는 차 씨가 나라손 지시에 따라 업무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라손이 지정하는 물품 외에는 운송할 수 없었다. 차 씨의 배송 횟수와 휴가 일수도 나라손이 결정했다. 나라손이 유류비, 도로통행비, 주차비 등 차량 운영비를 부담했다는 점도 차 씨 노동자성을 뒷받침했다. 차 씨는 운송 물량과 관계없이 고정급을 받았다.

재판부는 “원고(차 씨)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소외 회사(나라손)에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가 영업용 화물차의 소유자로서 사업자등록을 했다거나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정 등은 위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2014년 1심 판결 이후 근로복지공단 측은 항소와 상고로 법정 다툼을 이어갔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나라손 화물기사’ 사건은 2021년 4월 대법원의 ‘삼표 화물기사’ 사건 판결에서도 인용됐다. 구조는 비슷하다. 화물기사 ㄱ 씨는 삼표로부터 트랙터와 트레일러를 임대보증금 200만원에 빌려, 삼표피앤씨 제천공장 제품을 삼표가 지정한 공사 현장으로 운송하기로 하는 운송계약을 맺었다. 화물차를 회사가 소유한다는 정도가 다르다. 화물기사의 노동자성 판단 여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재판부는 ㄱ 씨가 삼표 통제하에 작업해야 했다는 점을 근거로 전속적·종속적 관계가 성립된다고 판단해, ㄱ 씨를 노동자로 인정했다.

노동자성 여부 입장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강행된 졸속행정

유엔 국제노동기구(ILO)도 화물기사를 명확하게 노동자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노동자로서 화물기사 파업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ILO 제87호(결사의 자유),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은 화물기사를 협약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비준하면서,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됐다.

ILO는 지난 10여년간 수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화물차 차주 겸 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권익 증진, 방어를 위해 결사의 자유를 전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해왔다.

정부는 ILO 협약을 무시하면서 원칙 없는 졸속행정이 자행했다. 화물연대 파업 국면에서 화물기사 노동자성에 대한 정부 입장은 오락가락했다. 화물기사 정체성은 정부의 노동 탄압 유불리에 따라, 노동자에서 사업자로 바뀌었다. 국토교통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때는 노동자로 규정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추진할 때는 사업자로 규정했다.

불과 보름 전만해도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사안을 놓고 ‘노동문제’라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업무개시명령 국무회의 심의가 있던 지난달 28일, “노사 법치주의를 확실히 세워야 한다”며 “노동문제는 노측의 불법행위든 사측 불법행위든 법과 원칙을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ILO 협약대로 화물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면 화물연대 파업은 단체행동권에 기반한 정당한 행위가 된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은 ‘정당한 사유 없이’ 운송을 거부할 때 발동할 수 있다.

ILO는 지난 2일, 국토교통부가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데 대해 긴급개입에 돌입했다. 노동계의 개입 요청 나흘 만으로, 유례없이 신속한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ILO는 한국 정부에 보낸 공문을 통해 “운송 서비스 및 유사한 부문의 업무 복귀 명령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간주하며, 평화적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해 형사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12.13 ⓒ뉴시스

‘화물기사 파업권 보장하라’ 명확히 권고한 ILO

정부는 ILO 긴급개입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축소하기에 이르렀다. 노동부는 12일 설명자료를 내고 “ILO 사무국은 ‘개입(intervention)’이 ILO 공식 감독기구의 절차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노동부는 카렌 커티스 ILO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의 성명을 인용했다. 커티스 부국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제운수노동자연맹,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의 개입 요청에 따라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며 “이는 비공식 절차로 ‘결사의자유위원회’나 ‘협약적용·해석에 관한 전문가위원회’ 등 ILO 감독기구 절차를 대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는 ‘비공식’ 운운하며 축소 해석했지만, ILO는 공문에 화물기사 파업권 보장의 당위성을 명백하게 강조했다. 공문에는 “파업권은 노동자와 그들의 조직이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증진하고 지킬 수 있는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명시됐다.

노동부 설명자료를 두고 “동문서답”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에서 “누구도 긴급개입이 감독기구 절차를 대신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며 “다만, 긴급개입은 감독 절차와 같이 ILO가 권리구제를 위한 방안으로 안내하고 있는 권위 있는 절차”라고 바로잡았다. 그러면서 “ILO 담당자가 노동분쟁 해결 가이드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정부의 노동기본권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강경하면서도 외교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커티스 부국장이 이번달 중 방안 일정에서 한국 정부와 비공식 면담을 갖고 ILO 감독기구가 제시하는 노동분쟁 해결 가이드를 소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ILO 협약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졸속행정이다. 화물연대는 “공정위가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업자단체로 규정하면서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를 하겠다고 하는 건, ILO 협약을 위반하는 행위이자, ILO 감독기구의 십수년 동안의 권고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화물연대에 대한 공정위 조사는 지난 2일 시작됐다. 경찰 경비병력(버스 3대)을 동원한 공정위 조사관 17명이 화물연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건물을 들이닥쳤다. 공정거래법 등 공정위 소관 법률의 적용 대상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다. 이번에는 화물기사와 화물연대를 노동자와 노종조합이 아닌, 사업자와 사업자단체로 규정한 것이다.

공정위는 화물연대 파업 철회 이후에도 공정거래법상 사업자와 사업자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담합) 위반 여부 조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앞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일 언론 브리핑에서 “향후 파업이 종료될 시에도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는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일 화물연대 파업을 조사하겠다며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건물에 진입하려고 하자 공공운수노조 간부들이 이를 막아서고 있다.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 페이스북

‘화물기사=사업자’ 주장 이면의 정부 속내

화물연대 파업 철회에도 윤 대통령은 ‘법적 책임’을 언급하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두 차례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후에야 파업이 끝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파업 기간 발생한 불법행위에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함께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며 “정부는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서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복구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화물연대 사안을 실질적으로는 노동문제로 인식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사업자로 규정하면서 왜곡된 행정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황규수 변호사는 “정부는 노동조합을 탄압해 사회적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화물연대 사안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공정위 조사를 보면 화물기사를 사업자로 간주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법원이 화물기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판례 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상황과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황 변호사는 “공정위가 개입해 ‘화물기사는 사업자니까 공동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면, 화물기사가 결집해 교섭할 수 없다”며 “공정위를 앞세워 노조법상 노동자로서 교섭을 막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법에 공정거래법을 들이대면, 노조법의 규범력이 훼손된다”며 “이런 식으로 법 운용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에서 한국의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경쟁법을 노동관계법에 적용하는 사례는 없다”며 “정부 행태는 구시대적”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