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저물어갑니다. 지난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얼어붙기 시작한 한반도 정세는 4년이 지나도록 해빙되기는커녕 더욱더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올해엔 오히려 ‘한미(일) 대 북’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양측 사이에 군사적 갈등이 더 깊어졌습니다. 통일뉴스는 안타깝고 아쉬운 한해를 돌아보면서, [2022년 송년특집]을 ①한반도 주변 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 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3월 24일 북한이 시험발사한 '화성포-17'형. [사진출처-노동신문]
3월 24일 북한이 시험발사한 '화성포-17'형. [사진출처-노동신문]

지난 3월 24일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을 시험발사했다. 3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은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국가의 모든 힘을 최우선적으로 집중해 나갈 것”이고, “미 제국주의와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는 “(2018년 4월) 북한이 약속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파기하는 것”이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한반도와 지역,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3년 11개월 넘게 한반도 정세의 안전판이었던 ‘모라토리엄’이 파기되자, 후폭풍은 엄청났다. 5월 10일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은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잇달아 진행했고, 북한도 전례 없이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연말이 2주도 남지 않은 18일, 북한은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기시다 일본 내각의 개정 「국가안보전략」 등 안보문서 채택에 대한 응수로 보인다.

혹자는 ‘화염과 분노’가 횡행하던 2017년보다 지금 한반도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평창 데탕트’ 같은 변곡점을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다. 미·중 전략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지구촌 전체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왜 ‘모라토리엄’을 파기했을까? 

올해 3월 24일 북한이 파기한 것은 ‘모라토리엄’만이 아니다. 30년 넘게 붙잡고 있던 대미 접근법을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냉전체제가 무너지던 1990년대 초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되, 소련·중국은 남과 수교하고 미국·일본이 북과 수교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끈질긴 관계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적대적 봉쇄정책을 계속했습니다. 공산권 붕괴로 생존 위기에 처한 북한은 미국의 안보위협에 대한 억제용으로, 그리고 또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룩하기 위한 협상용으로 핵개발이라는 모험을 감행하게 됩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2009년 10월 9일 [통일뉴스] 창간 9주년 강연)  

전직 고위당국자도 비슷한 평가를 한 적 있다. “노태우 정부가 ‘북방외교’를 추진할 때 외교 참모들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는 대신 뒷문으로 들어가는데 열심이다 보니 결국 북한의 핵무장을 초래했다.”
 
지난 30년 간 북한이 미국과 직접 담판 하든(북미 제네바 합의, 북미 공동코뮈니케), 서울(판문점선언) 또는 베이징(6자회담 9.19공동성명)을 거치든 최종 목적지는 미국과의 수교였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미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관계 구축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상호 신뢰 형성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인식하며”라고 명시했다. 지난 시기 북한의 대미 접근법을 집대성한 것이다. ‘하노이 노딜’(2019년 2월) 이후에도 북한이 대미 협상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에게도 분수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중 간 전략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따라 새로운 진영구도가 형성될 조짐”(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보이는 상황에서, 낡은 접근법을 고수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30년 만에 북한을 둘러싼 울타리가 다시 생겼고, 핵까지 손에 넣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5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낸 ‘전승절’ 축전에서 “전략적이며 전통적인 북·러 친선”을 강조했고, 10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보낸 축전에서는 ‘북중 친선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9월 최고인민회의서 시정연설하는 김정은 위원장. [사진출처-노동신문]
9월 최고인민회의서 시정연설하는 김정은 위원장. [사진출처-노동신문]

9월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핵무력법’을 채택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못박았다.    

반면, 한국에게는 지난 30년 간 번영의 근거였던 공간이 축소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중관계 역시 조정에 직면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에 회의적이다   

5월 21일 서울에서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하는 한미 정상. [사진제공-대통령실]
5월 21일 서울에서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하는 한미 정상. [사진제공-대통령실]

5월 21일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공동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겠느냐 하는 부분은, 북한에서 진정성 있게 나오느냐에 달렸다”고 답했다. 그 다음날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헬로.”라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에 아주 회의적”이라는 고위당국자의 평가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문재인정부 때 화두였던 ‘대화 재개를 위한 유인책 제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이 싫어하는 문구들이 빼곡하게 담겼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했으며, “필요 시 미군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한다는 미국의 공약”을 확인했다.    

5월 25일 북한은 ICBM 1발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바이든-윤석열 정상회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셈이다. 그 전날에는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8대가 한반도와 일본 사이를 지나갔다. 도쿄 ‘쿼드’ 정상회담에 대응한 무력시위로 풀이됐다.

카말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방한(9.29) 전후 ‘북한 대 한미(일) 간 무력시위’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진행됐다. 

한·미는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동해에서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이 포함된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9월 28일과 29일 이틀 연속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9월 30일 한미일 연합 대잠수함훈련. [연합뉴스TV 영상 갈무리]
9월 30일 한미일 연합 대잠수함훈련. [연합뉴스TV 영상 갈무리]

9월 30일 한미일이 독도에서 150km 떨어진 공해상에서 ‘로널드 레이건’까지 동원한 연합대잠수함훈련을 실시했다. 다음날 북한은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며, 10월 4일에는 일본 열도를 넘어가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틀 뒤 한미일은 동해상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포함된 연합 탄도미사일 방어훈련을 실시했다. 

10월 5일(현지시각) 한미일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추가 제재 결의를 추진했으나, 중·러의 반대에 막혔다. 

겅솽 유엔 주재 중국 부대표는 “조선(북한)의 최근 발사활동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 활동과 최근 이 지역에서 (한미일의) 군사훈련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험은 우리에게 제재가 만능이 아님을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일방적으로 제재를 부각하고 정치 해결은 게을리 하면서 대북 압박을 일삼는 것은 도움이 안 될뿐 아니라 바른 길이 아니”라고 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동해 연합 대잠수함훈련’을 겨냥해 “이러한 훈련들이 우리나라(주-러시아) 근방 극동 지역에서 진행됐다”면서 “우리는 일본이 주도한 이러한 활동들을 우리나라의 안보에 대한 직접 위협”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 11월 12일 한미일 정상은 ‘프놈펜 공동성명’을 통해 “날아 들어오는 미사일로 야기될 위협에 대한 각국의 탐지·평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12월 16일 기시다 일본 내각은 적 미사일 기지 등을 겨냥한 ‘반격능력 보유’를 담은 개정 「국가안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을 통과시켰고, 미국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반면, 중국은 “강렬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시했다.

교착 상태는 언제까지?

냉전시대에나 볼 법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재연된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는 상당기간 교착될 가능성이 커졌다. “남북 분단구조 고착화를 우려하는 상황”이라는 지난 13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지역 질서 변동을 이끄는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야 한반도의 앞날도 점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새 질서의 윤곽이 잡힐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11월 14일 발리에서 만난 미중 정상. [사진출처-중국 외교부]
11월 14일 발리에서 만난 미중 정상. [사진출처-중국 외교부]

지난 11월 14일 발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시간 넘게 만나 지역·국제 문제들을 논의했다. 중국이 원했던 방식은 아닐지라도 사실상 ‘신형 대국관계’가 구축된 셈이다. 후속 논의를 위해 내년 초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내년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계기에 바이든 대통령은 동북아를 방문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11월 중순 미·러 정보기관장들이 튀르키예에서  비밀회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러시아 억류 미국인 문제’로 만나서 ‘핵무기 사용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중국과 사우디의 밀월에 이란이 반발하면서 ‘이란 핵 협상’이 진전될 기미도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지난 10월 19일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의 “새로운 핵 시대”(The New Nuclear Era)라는 글이 주목된다. 비확산체제 유지가 미국에게 이익이라는 전제 아래 △미-러 핵군축 협상 재개, △이란 핵개발 저지, △북한과의 외교 모색을 조언했다.

리처드 하스 CFR 회장. [CFR 유튜브 갈무리]
리처드 하스 CFR 회장. [CFR 유튜브 갈무리]

하스 회장의 글이 그냥 사견이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의 컨센서스를 반영한 것이라면, 러시아, 이란 다음은 북한일 것이다. 그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는 유지돼야 하지만 그 사이에 한미일이 북한에 핵·미사일 제한과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일종의 핵군축 제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희망적 관측에 불과하지만, 내년 봄 한반도 주변 정세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정작 문제는 ‘미국 일변도’ 외교를 고수하는 윤석열정부다. 

전직 고위당국자는 “미·중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면 한국은 미국 편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뒤는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데,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