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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에 살해당한 라디오, 유튜브로 부활해 시사를 살해하다

[정희준의 어퍼컷] 라디오방송의 정치과잉과 정치혐오

 

 

 

 

 

1979년 영국의 뉴웨이브밴드 버글스(Buggles)의 히트곡 '비디오 킬 더 라디오스타'가 있다. TV에 이어 비디오테이프레코더까지 등장해 인기를 얻자 라디오의 시대가 가버린 서글픔을 노래한 곡이다. 곧 죽을 것 같았던 라디오가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다가 최근 화려하게 다시 태어났다. 유튜브가 라디오를 살린 것이다. 그 기세가 지상파 방송을 위협한다. '조회수'가 수십만, 아니 수백만을 넘어가기도 한다.

 

예전 라디오 아침 시사 프로그램은 주로 전화인터뷰로 구성됐다. '보는 사람' 없는 '듣는 방송'이기에 진행자 옷차림도 세상 편한 복장이었다. 그런데 라디오가 유튜브와 결합하면서 소리와 함께 화면이 함께 송출되기 시작했다. '라디오 텔레비전'이 된 것이다.

 

새로운 방송 장르의 탄생이다. 멀티플랫폼의 등장이자 원소스멀티유스의 모델 케이스다. 기존 실시간 라디오 송출과 힘께 유튜브 생중계를 동시에 내보내고, 이 정규 방송이 끝나자마자 유튜브만을 위한 (뒷담화 수준의) 방송을 추가로 또 내보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들이 만, 십만, 때로 백만 조회수를 넘어서는데 동시에 주요 장면들을 수많은 쇼츠로 조각 조각 쪼개서 살포한다. 

 

다채로움을 넘어 화려해졌다. 요일별 고정 꼭지를 집어넣는 시사 매거진 형태가 되면서 과거에 비해 고정 출연자가 훨씬 많아졌다. 보는 사람 수가 엄청난 만큼 매체 파워도 생겼다. 인터뷰이들이 양복에 넥타이 매고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한다. 당연히 조명이 들어가고 분장도 한다. '라디오 셀레브리티'까지 생겼다. 유튜브의 위력이다.

 

용산과 여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라디오 시사의 정치과잉 

 

그런데 변화의 크기만큼 문제도 심각하다. 우선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과도한 정치 편향이다. 정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비중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를 보자. 지난 19일과 20일 구독자 105만 명의 KBS 1라디오 아침 시사프로그램 <최경영의 최강시사>는 대부분이 정치였다. 두 시간 가까운 내용 중 실내 마스크 해제, 부동산,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 선언, 대구시 대형마트 문제 등의 문제를 다루긴 했으나 출연자 14명 중 12명이 정치 주제로 인터뷰를 했고 전현직 의원 숫자만 6명이었다. 오후 프로그램인 <최영일의 시사본부>도 같은 기간 월드컵과 간단한 국제뉴스를 다루긴 했지만 12명의 출연자 중 9명이 정치 관련이었다. 

 

구독자 78만 명의 MBC 역시 다르지 않다. 아침 프로그램인 <김종배의 시선집중> 역시 오프닝 뉴스 리포트부터 정치 이슈로 도배를 했고 출연자들도 거의 대부분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고위 정무직이었다. 구독자수 158만으로 라디오 시청률 1위인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같은 기간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나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 정치인과 YTN 노조지부장이 출연하는 등 정치 위주의 구성이었다 (뉴스공장은 상대적으로 과학, 국제, 문화 등 다양한 내용을 내보내고 있긴 하다). 구독자 90만의 CBS <김현정의 뉴스쇼>도 이틀 간 정치 아닌 주제는 하루에 하나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최근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내용 구성은 정치 과잉을 넘어 정치 중독 수준이다. 

 

당시의 여러 사회적 사건을 다뤄야 할 라디오 시사의 지나친 정치화는 결국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다른 쟁점들을 지워버린다. 특히 우리의 (텔레비전 포함) 방송 언론은 국제정세, 해외뉴스에 매우 인색하다. 지금 한국 경제를 결정짓는 요인들은 미국 금리인상,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대외 정책, 유럽의 다자 외교 등 거의 모두 외부로부터 오는 것임에도 라디오방송들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민주당 이야기만 떠들고 있다. 뉴스의 주제가 서울은커녕 용산과 여의도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삼프로TV>의 내용은 차별성을 보인다. 삼프로TV는 해외 경제 등 다양한 경제 주제 뿐 아니라 외국의 정치체제와 중동의 역사까지 심도 있게 다루고 있어 일종의 지식플랫폼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해외뉴스에 무심하고 지방을 지워버리는 편성 

 

또다른 심각한 문제는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문제는 아예 지워버렸다는 점이다. 라디오 방송의 출연자들은 이제 서울 인근 거주자가 아니면 애당초 접근이 불가능하다. 과거엔 전화 인터뷰 위주였기에 조선팔도의 이야기를 그래도 일정 수준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정 바쁜 장관 정도가 아니면) 스튜디오 출연이 전제이기에 서울 밖 출연자는 아예 씨가 말랐다. 

 

정치뉴스나 서울뉴스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그러한 뉴스들만 존재히는 것처럼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문제다. 잘못된 편집권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정치보다는 외교안보, 경제, 국제정세, 과학기술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에겐 금융과 문화와 여가와 건강과 여행이 중요하다.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정치결정론자'들의 눈에는 이러한 것들이 안 보이는 것인가. 특히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집착적으로 용산과 여의도 뉴스만 전달하는 바람에 우리 눈에 한국사회는 온통 싸움판으로 비치게 되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혐오 심화에 기여한다는 점은 빨리 시정해야 할 문제다.

 

진행자, 출연자 모두 '가장 중요한 것은 민생'이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지만 정작 자신들의 대본에 민생은 없다. 참고로, 21일 아침 미국의 유에스에이 투데이,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의 헤드라인은 북미에 불어닥친 눈태풍,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방문 여부, 백악관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이다. 

 

왜? 편하니까 

 

결국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듣는 것은 '반복되는 정치뉴스' 뿐이고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은 좁은 세계관이다. 지금 방송가에서 인기 있는 정치인이나 정치평론가는 20명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권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해 줄 출연자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한창이다. 한 사람이 10개 넘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한다. 

 

이들은 TV와 라디오와 유튜브를 오가며 쉴 새 없이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를 저 방송에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출연자들에게 다른 방송에서 하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요지경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저 많은 방송들이 다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더 치열해져서일까? 아니면 편해져서일까. 지금의 이러한 방식은 고정 청취자와 시청자 확보가 더 쉽긴 하다. 열정적 청취자들이기에 댓글도 많이 달린다. 찬반 공방 토론이 가능하니 어딘가 열띤 모습이다. 무엇보다 입담 좋은 프로급들만 상대하니 진행자도 편하고 작가도 편하다. 

 

좁은 뉴스, 편협한 세계관이 선사하는 정치혐오 

 

반복되는 뉴스는 결국 좁은 뉴스, 편협한 세계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정치 지상주의적 편성은 정치과잉을 낳고 정치혐오를 키운다. 우리 스스로 무지의 세계에 고립된다. 최근 유행하는 유튜브 라디오의 미덕이다. 아니, 악덕인가?

 

혹시 정치가 한국사회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거대한 착각이다. 세상은 기술이 훨씬 더 크게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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