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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동3권은 시민권” 인권운동가가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하는 이유

박래군 ‘손잡고’ 상임대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단식농성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의 공동대표인 박래군 손잡고 상임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단식 농성 중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2.20 ⓒ민중의소리

 
올해 12월에도 어김없이 국회 앞에는 수많은 천막농성장이 펼쳐졌다.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손잡고’ 상임대표도 그곳에 자리를 잡고 지난 19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면서다.

박 대표는 8년 전 ‘손잡고’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보복성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맞서 끊임없이 싸워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노동자들과 함께 단식농성까지 돌입하게 된 것은 “이번엔 반드시 돼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노란봉투법 제정, 이번이 절호의 기회인 이유

박 대표는 단식농성 2일차인 20일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만나 ‘단식농성이 처음이 아니지 않느냐’는 물음에 웃으면서 “여러 번 했다. 이번엔 4년 만이다”라고 답했다. 박 대표는 2018년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에 올라가 단식농성을 벌이던 파인텤의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를 구하기 위해 함께 단식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파인텤 노동자들은 고용승계, 고용보장, 단체협상을 요구하며 벌인 장기간 고공농성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부터 12월까지 매년 국회 앞에는 늘 단식농성자들이 모인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법안 통과와 예산 반영을 호소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올해는 특히 노동자들이 많다. 현재 민주노총 박희은 부위원장, 금속노조 윤장혁 위원장,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유성욱 본부장,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 등 총 6명의 노동조합 간부가 이날로 21일째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사측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 폭탄’을 맞은 당사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처리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시민사회를 대표해 박 대표까지 단식농성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박 대표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단이 직접 국회를 압박하러 차가운 길바닥에 나앉았다.

박 대표는 지금 시기가 노조법 2·3조를 개정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는 판단에서다.

‘노란봉투’의 근원은 2009년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사태다. 해고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농성이 이어지자 사측은 이를 법정으로 끌고 갔다. 그 결과 파업을 한 노동자들에게 총 47억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확정됐다. 그러자 이를 대신 갚아주자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에 나서는 이른바 ‘노란봉투 캠페인’이 펼쳐졌다. 47억원을 4만7천원씩 10만명이 모아보자는 세 아이 엄마의 제안이 시발점이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파장은 컸다. 유명 가수인 이효리 씨의 4만7천원 동참으로 관심과 모금이 폭발했고, 노동자들의 문제로만 여겼던 손해배상·가압류 문제가 사회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박 대표는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 4만7천명이 참여했어요. 노동 사안에 그만큼 참여한 건 굉장한 일이에요. 그렇게 14억7천만원이 모였어요. 그때 해고와 손해배상으로 고통을 받는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모금으로 긴급생활비와 의료비를 지급할 수 있었어요. 그게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만들어진 계기입니다.”

이후 ‘손잡고’는 노란봉투 캠페인을 발판 삼아 법·제도 개선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것이 바로 ‘노란봉투법’이다.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기준을 확대되는 방향으로 노조법 3조를 개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 문턱은 높기만 했다. 19대 국회 당시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는데 법안 심사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가 폐기되는 일이 반복됐다. 박 대표는 “사람이 죽을 때만 잠깐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0.3평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는 끝장 투쟁 중인 유최안 부지회장의 모습. ⓒ금속노조 제공

그러다가 다시 노란봉투법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올해 여름이었다. 지난 7월 파업을 하고 선박 안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에게 대우조선해양이 470억원이라는 상상초월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이에 지난 9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비롯한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 93곳과 진보정당 4곳(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이 모여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구성했다. 이들은 올해 안에 노란봉투법을 제정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기로 결의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손해배상 소송 제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기존 노란봉투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에 대해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게 하는 내용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즉, 노조법 3조뿐만 아니라 노조법 2조도 함께 개정하기 위한 활동에 나선 것이다. 박 대표는 “현실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엔 주로 노조법 3조를 가지고 얘기했는데, 8년 사이에 노동현장이 엄청나게 변했어요. 사내하청,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고용형태가 다양해졌어요. 노조법이 적용되지 못하고 제외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진 거예요. 노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인정이 안 되고, 노동자들이 파업도 못하게 된 거죠. 그러다보니 노조법 2조가 함께 개정되지 않으면 노조법 3조가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이 없겠다고 판단했죠. 노조법도 바뀐 현실에 맞춰 바뀌어야 해요.”

노조법 2조에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정의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정의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되면서 하청노동자와 원청의 노사관계처럼 직접적인 근로관계를 맺지 않은 노사는 실질적인 고용관계이더라도 교섭을 할 수 없다. 특수고용노동자와 간접고용노동자 역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사용자와 근로자의 정의를 현실에 맞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조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지금 노조법 2·3조가 개정돼야 한다. 이번에 꼭 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너무 많은 피해자들이 생길 것 같다”며 “더군다나 윤석열 정부가 노동을 적대시하고 노동탄압도 강하게 하는 상황이라서 이대로 가다간 손해배상과 가압류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대표는 “사실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노조 대상 손해배상 인정 판결을 내렸던 1994년부터 30년 가까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였다. 그 사이에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랐다.

박 대표를 만난 날은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였던 최강서 씨가 사측의 158억원 손해배상 소송 철회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손에 쥘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걸 감당하기 너무 어려웠던 것”이라며 “그때가 대통령 선거 직후이기도 했다. (새로 집권할) 박근혜 정권에서 더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의 공동대표인 박래군 손잡고 상임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2022.12.19 ⓒ민중의소리

“노동3권은 보편적 인권”
“그 많은 시민권들 중에 노동권은 아직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노조법 2·3 개정을 위한 투쟁의 특징은 노동계를 대표하는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각계 시민사회단체가 전면적으로 결합했다는 점이다. 이날 인권운동가인 박 대표 옆에는 동조 단식을 하고 있는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남재영 목사가 있었다. 이는 노조법 2·3 개정이 ‘노조를 하는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헌법 제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며 노동3권을 명시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를 거론하면서 “노동3권은 보편적인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3권은 법률에 의해 제한된다는 유보조항조차 없다”며 “하지만 현실에선 행정부나 법원의 판단으로 노동3권을 제한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역시 고용관계가 과거에 비해 복잡해진 반면 노조법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이 손배소를 제기하면 경찰이나 검찰이 편을 들어주고 법원들도 과거 판례로 인정해주다보니, 노사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사측이 노조를 누르려고만 해요. 그렇게 하다보면 노사간 갈등이 폭발할 수밖에 없어요.”

그 과정에서 파업을 하는 노조를 혐오하고 악마화하는데 정권과 자본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이 앞장서면서, 우리 사회엔 노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만연해졌다.

“서유럽 복지국가나 선진국들도 보면 노조가 사회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사회복지국가를 견인해요. 그렇게 민주주의도 발전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노조를 불온시하고 탄압만 하고 있어요. 지금도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걸핏하면 ‘귀족노조’라고 하고, ‘불법’이라고 하면서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시민들도 자신이 노동자인데 마치 아닌 것처럼 노조를 욕하곤 해요. 노조가 활성화돼야 민주주의의 토대도 튼튼해지고 양극화와 불평등도 해소되는 건데, 우리는 지금 그게 안 되고 있는 거죠.”

최근엔 정부가 “노조 재정운용의 투명성”을 언급하며 노조의 ‘회계장부’를 점검하겠다고 엄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노조에게 자주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자치에 의해 움직이는 거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정부는 오히려 빌미를 잡아서 노조를 범죄집단화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동탄압을 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상황이니 의기양양하지 않나”라며 “그러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입장을 확실하게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노동3권은 시민권”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건 모든 시민들이 가지는 권리이지, 시민과 노동자가 분리돼있는 게 아니다. 시민들 대부분은 누군가에 의해 고용되어서 임금으로 먹고 살지 않나”라며 “우리가 그 많은 시민권들 중에 노동권은 아직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의 공동대표인 박래군 손잡고 상임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단식 농성 중 지지 방문 온 보건노조 조합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2.12.20 ⓒ민중의소리

“최소한 올해 안에 환노위에서 통과돼야”

“대체 뭘 해야 시민들이 확 관심을 가져줄까요?” 이번엔 박 대표가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단식은 가급적 하지 말자’는 주의인 박 대표는 이번에도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 단식농성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집회도 열고 파업도 하면서 오랜 기간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입법기관인 국회는 움직이지 않았다. 노조가 파업을 했다가 오히려 수백억의 ‘손해배상 폭탄’을 맞는 게 현실이었다. 권력을 쥐고 있지 않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곡기를 끊고 절실함을 호소하는 것밖에 없었다.

“국회 앞도 그렇고, 옛날 청와대 앞도 그렇고, 지금 용산 대통령실 앞도 그렇고, 거기에 가면 항상 씁쓸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요구 사항을 들고 와서 쭉 진을 치잖아요. 저도 그렇고. 다들 마땅히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온 거거든요. 그런데 국회도 정부도 들을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게 참 씁쓸합니다. 정치가 본연의 모습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걸 또 한번 절실하게 느낍니다.”

박 대표와 함께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호소가 이번엔 국회에 가닿을 수 있을까. 박 대표는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국민의힘은 노조법 2,3조 개정에 반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완전히 입장이 같아요. 도리어 30인 미만 기업 추가연장근로제 일몰을 연장하려는 등 노동법을 개악하려고 하고 있어요. 당 지도부가 나서 노란봉투법을 ‘황건적보호법’, ‘민주노총보호법’, ‘불법파업조장법’이라고 하고 있으니 여야의 법안 합의 처리는 불가능할 겁니다. 결국 야당들이 해줘야 해요. 야당이, 특히 민주당이 의지를 가지고 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최소한 올해 안에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조법 2,3조를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셈이다. 
 

덧붙임

‘손잡고’는 노란봉투법 제정 운동에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퀴즈쇼-노란봉투를 열어라!’ 행사를 연다. 시민들이 직접 출제한 노동 관련 퀴즈를 참가자들이 함께 풀며 노동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자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시민 출제위원단’을 모집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손잡고’ 홈페이지(클릭)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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