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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취약계층 더 보호? 서울 마지막 달동네는 무방비였다

정부 잇따른 대책에도 등유 쓰는 차상위가구는 배제…지원 대상자여도 제도 몰라 할인 못 받는 사례 수두룩

한양도성 성곽 옆에 성북구 북정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린다. 마을 중심부를 둘러싼 성북로 23길 바깥쪽으로 뻗은 골목길부터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 8일 만난 최 씨 할머니(76)는 골목길로 50미터 남짓 들어간 곳에 산다. 기름보일러를 쓴다.

 

성북구 북정마을에 사는 최 할머니의 집. 지붕 아래로 기름보일러 연통이 삐져나와 있다. ⓒ민중의소리


북정마을 독거노인의 불안한 겨울나기

최 씨 할머니는 기름이 떨어질까 맘껏 씻지도 못한다. 교회를 가는 수요일과 일요일에만 따뜻한 물을 틀어 머리를 감는다. 그는 “가끔 친척 집 가서나 샤워하지. 목욕탕에 가기도 하고”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껴 쓴다고 썼는데 기름이 다 떨어져 간다. 올겨울은 유난히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무작정 기름을 아끼자고 이불로만 버틸 수도 없다. 몸도 못 버티고, 집도 못 버틴다. 난방을 오랫동안 틀지 않으면 바닥 밑에 깔린 배관이 얼어버린다. “배관이 얼어 터지면 다 뜯어내고 공사해야 하는데, 몇십만원씩 드니까, 안 틀 수가 없다”고 최 할머니는 말했다.

두 달 전쯤 등유 두 드럼을 샀다. 겨울을 나기 위한 최소한이다. 마음 졸이지 않고 쓰려면 세 드럼은 들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어마어마하다. 여름 장마철에는 곰팡이가피지 않도록 일주일에 한 번은 난방을 떼야 하는데, 벌써 걱정이다.

등유는 대다수 국민이 사용하는 도시가스보다 효율이 낮고, 비싸다. 기초생활급여로 한 달에 약 50만원을 받는 최 할머니에게 등윳값은 큰 부담이다. 한 드럼(200리터)에 32만원씩, 총 64만원을 줬다. 에너지바우처 12만 4,100원을 받았지만, 그래도 한 달 생활비를 온전히 들여야 했다. 그마저도 등유 가격이 내리길 기다렸다가 산 것이다. 최 할머니는 “원래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사려고 했는데, 한 드럼에 34만원이라고 하더라. 조금 기다려보라고 해서 열흘인가 늦게 넣었다”고 전했다.

추운 날씨에 더해 등윳값이 치솟으면서 부담이 커졌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등유 1리터는 1,500원 정도로 1년 전보다 400원가량 올랐다. 한 드럼으로 치면 10만원 차이다.

최 할머니는 “다 빚”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배달해주는 아저씨한테 외상으로 남기기도 하고, 정 급하면 누구한테 빌리지”라며 “생활비를 아껴서 몇 달에 걸쳐서 갚아 나가는 거지”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 기름뿐인가. 전기세도 무섭다. 집이 얼지 않도록 전기난로를 동원해야 한다. 몇 년 전에는 화장실이 얼어서 벽을 다 뜯어내야 했다. 이제는 노하우가 생겼다. 최 할머니는 “좌변기를 두꺼운 이불로 싸고, 수도관도 수건으로 둘둘 싸고, 그러면서도 세탁기에서 내려가는 배관이 얼까봐 전기난로를 켜놓는다”며 “영하 5도를 기준으로 그 아래로 내려가면 밤 9시부터 전기난로를 틀어놓고, 새벽 기도 나가는 4시 10분에 빼놓는다”고 설명했다. 동파는 막을 수 있었지만, 평소 6천원 정도 하던 전기요금이 지난달에는 5만원이나 나왔다.

가스레인지에 쓰는 LPG도 따로 사야 한다. 한 통(20kg)에 5만원 가까이한다. 에너지 급등의 충격이 피부로 다가온다.

난방비 폭탄이 전국을 뒤덮자 정부는 에너지바우처 지원 금액을 기존 대비 2배 인상했다. 최 할머니가 받는 금액은 약 25만원이 된다. 최 할머니는 “나라에서 지원을 더 해주면 다른 것보다 돈을 좀 더 보태서 석유를 먼저 넣어야지”라고 했다.
 

한양도성 성곽 너머로 보이는 성북구 북정마을. ⓒ민중의소리


잇따른 정부 대책에서 여전한 사각지대 ‘등유·차상위’

북정경로당에서 만난 김 할아버지(85)도 등유를 쓴다. 차상위계층인데, 기초생활수급자에는 지급되는 에너지바우처를 받을 수 없다. 가계가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초노령연금 24만원에 공원 청소를 하는 공공일자리로 27만원을 받는다. 한 달 수입 절반을 등윳값으로 쓰는 셈이다.

등유는 소득이 적을수록 사용 비중이 높다. 산업부의 ‘에너지총조사 보고서’를 보면, 2016년 기준 등유 사용 가구 비중은 평균 8.3%다. 월 소득 600만원 이상 가구는 1.2%에 불과하지만, 100만원 미만 가구는 18.8%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잇따라 취약계층 난방비 대책을 내놨다. 도시가스가 깔리지 않은 차상위가구는 번번이 배제됐다.

등유바우처 지원 금액을 64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렸지만, 지원 대상은 극히 제한된다. 기초생활수급자 중 한부모가족이나 소년소녀가정에 해당하는 5,400가구뿐이다. 에너지바우처와 가스요금 할인 대상은 각각 160만, 117만 가구다.

올해 들어서는 에너지바우처를 비롯해, 차상위계층에도 적용되는 가스요금 할인 금액을 인상하고, 도시가스뿐 아니라 지역난방 할인 대책도 마련했지만, 등유를 쓰는 김 할아버지는 해당이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사각지대가 없도록 촘촘하게 살피라”는 주문은 현장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벌써 2월인데, 정부는 아직도 무대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차상위계층 지원책을 묻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성북구 북정마을 골목에 배치된 LPG 가스통.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취사용으로 LPG를 쓴다. ⓒ민중의소리


난방비 지원 ‘신청제’의 허점

도시가스를 쓰는 독거노인에게도 난방비는 무섭다. 조종인(84세) 할머니는 지난달 가스요금이 25만원 가까이 나왔다. 지난겨울에는 15만원 정도였다. 조 할머니는 “도둑맞은 거 같다”고 하소연했다.

외출이 잦지 않아 난방을 켜놓는 시간이 길다. “끄고 못 살지는 못하고, 나올 때는 외출로 돌려놓고 나온다”는 조 할머니에게 ‘가스요금이 싸서 국민이 펑펑 쓴다’는 문제의식보다 이 겨울을 버티는 게 우선이다.

차상위계층인 조 할머니는 한국가스공사의 가스요금 할인 적용 대상이지만, 신청하지 않아 지원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는 기존 14만 4천원이던 가스요금 할인 금액을 최대 59만 2천원으로 인상했다. 조 할머니는 “TV에서 난방비 깎아준다고 하는 거 보긴 했는데, 기초생활수급자만 되는 거라고 해서 신경 안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상이면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오겠거니 했다”며 “내일이라도 동사무소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정부 정책을 기민하게 챙기지 못해 지원을 놓치는 사례는 많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산업부와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스요금 할인 대상이지만 신청하지 않은 가구는 지난해 전국 41만 가구 이상이었다. 전년 36만명보다 늘었다. 복지부는 매년 한국가스공사 자료를 받아 요금을 감면받지 못한 가구들에 신청 절차를 안내하고 있지만, 사각지대를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가스요금 할인과 마찬가지로 신청제로 운영되는 에너지바우처도 지난해 미신청 가구가 13만 가구를 넘었다. 두 제도 모두 신청을 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사하는 등 변동 사항이 생기면 신규 신청을 해야 한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다. 산업부는 홍보를 강화하고 신청률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일부 지자체는 적극 행정으로 가스요금 할인 신청률을 끌어올렸다.

광산구는 지난 2021년 1~2월 누락 대상자를 발굴하고, 담당 부서가 직접 방문해 신청을 도왔다. 그 결과 미신청 1만 3천여 가구 가운데 약 1,800가구가 새로이 가스요금을 할인받게 됐다. 신청 처리가 불가한 가구는 주로 다른 가구원 이름으로 이미 할인받고 있거나, 도시가스가 설치되지 않은 사례였다. 광산구는 신규 대상자와 기존 대상자에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는 등 미신청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은평구도 같은 해 사각지대 발굴 사업을 통해 가스요금 할인을 신청하지 않은 5,830가구를 찾아 이 중 약 2천 가구의 신청을 도왔다. 이후 동주민센터와 연계한 매뉴얼을 확정해 100% 신청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가 대상자의 신청을 대신 수행해 줄 수 없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걸린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직권신청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이용·제공 허용 조건에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필요한 경우’를 추가하는 내용의 개인정보보호법·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이용빈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 검토 당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자체 업무가 가중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는데, 적극행정 사례에서 보듯 동 단위로 쪼개서 직권신청을 진행하면 큰 부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은평구는 미신청자 발굴 조사에 공공일자리 인력을 활용하기도 했다.

지난 7일에는 이용선 민주당 의원이 지자체의 에너지바우처 직권신청을 허용하는 내용의 에너지법을 발의했다.

이용빈 의원실 관계자는 “대상자가 신청하도록 기다리겠다는 정도에서 나아가 정치권이 적극 나서 사각지대 해소를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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