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모습. ⓒ EPA=연합뉴스
우리는 무력 충돌을 억지하기 위해서나 만약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군사안보 태세를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묘수는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나무를 심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 체제는 어느날 갑자기 소나기 내리듯 오는 것이 아니다. 신뢰와 환경이 마련되는 만큼 평화 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공고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수반한 단계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단계적 접근은 평화 유지(peace-keeping), 평화 만들기(peace-making), 평화의 구조화(peace- building)가 그것이다.
평화 유지는 전형적인 소극적 평화 확보의 개념으로 군사력을 통한 도발의 억제를 의미한다. 군사적 억지(deterrence)와 동맹 강화가 이를 가능케 한다.
평화 만들기는 평화 유지보다는 한 단계 위 개념이다. 신뢰 구축이 평화 만들기의 핵심 개념인데 경제·사회·정치적 신뢰 구축의 단계를 거쳐 군사적 신뢰 구축이 이루어져야 평화 만들기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평화 만들기 또한 불안정한 상황을 관리한다는 면에서 소극적 평화 유지책이라 할 수 있다.
평화의 구조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다. 이는 분쟁의 구조적 원인을 없앤 것이다. 적대적 쌍방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거나 선린 관계가 형성되어 추구하는 목표에 충돌 여지가 없어지면 분쟁은 구조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단계적 접근에서 알 수 있듯이 평화는 소극적 의미에서 적극적 의미로 확장할 수 있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군비 통제, 북미·북일 관계 개선, 동북아 안보협력 등 '안보레짐'이나 북한 비핵화와 연결한 경제협력 등으로 협소하게 봤다.
그러나 평화 체제의 범위는 국가안보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 안보와 같이 개인과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다양한 요소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이런 적극적인 평화 개념과 평화 만들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평화의 개념을 단순히 전쟁의 부재라는 의미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와 수준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폭력과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차별·불평등의 해소와 함께 전염병·기후위기·재해·생물권 보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안보레짐에만 매몰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 있는 한국의 운신의 폭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로 참여 주체도 국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 필요한 평화 만들기는 적극적인 평화 개념에 입각한 접근이어야만 한다.
이런 적극적인 평화 개념에 입각한 평화 만들기는 다양한 영역에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그리고 시민의 힘과 참여로 만드는 평화는 국제 무대에서 우리 정부의 자율성과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정부는 때론 적극적으로 때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와 선택지를 갖게 될 것이다.
성공의 열쇠는 신뢰, 시작은 대화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나 우리의 안녕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우리의 노력이 집중해야 할 지점은 평화 만들기다. 그러나 평화 만들기는 남·북의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한데 현재 남·북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남·북 간에 신뢰 구축이 어려운 이유는 북한의 마음이 안심되어야 신뢰 형성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 만들기는 현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대북정책과 한반도 평화 관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
적극적인 평화의 출발점은 대화이며 대화는 상호 신뢰형성뿐만 아니라 당면해서 한반도 위기 관리를 위한 총체적 신뢰와도 직결된다. 적극적인 평화가 좋은 것은 현재와 같이 정부와 당국 간 대화가 막혀 있을 때에 다양한 주제와 영역, 주체들의 만남과 대화, 협력과 협업을 통해 여론과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경제 협력마저도 현재 세계 정세와 구도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코로나, 휴전선 지역 공동 방역, 기후 변화 공동 대응 등 인도적 측면이나 민간 협력을 위한 대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대화를 시작하는 자세로는 다양성의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해결도 중요하지만, 결국 남한과 북한 주민들의 마음의 분단, 정신적 갈등과 적대감의 해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 통일과 평화를 대비하는 마음의 근간은 바로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철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나와 다른 것을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오히려 소중히 여기는 가치,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풍요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하다. 한반도 전쟁 반대,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한반도와 세계, 제재와 압박이 아닌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 해결, 군비 경쟁 악순환 종식과 시민 안전을 위한 중단 없는 평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평화 행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평화 행동을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실천에 옮기며 민간을 지원하는 것이 현재 정부가 해야할 첫 번째 의무이자 과제일 것이다.
시민들 역시 현재 첨예한 정세와 상황이 우리와 나의 일임을 자각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는 긴장은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CNN의 보도가 아니다. 영구적인 평화가 오지 않았기에 한반도의 운명은 세찬 바람 속의 촛불이 아닐 때가 없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긴장과 전쟁 위기의 기로에서 늘 평화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힘은 평화의 마음을 놓지 않은 시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난경에 들었다 하여도 평화의 마음을 놓지 않고 세상에 평화를 불러오는 주인된 시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깨어있고 행동하는 시민과 평화 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 정부가 절실한 오늘이다.
* 필자소개 : 서울디지털대 교수, 코리아연구원 이사, 민주평통 상임 위원으로 2001년 첫 평양 방문과 이어진 40여 차례의 방북 이후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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