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뱃지.2020.04.13 ⓒ민중의소리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논의하는 국회 전원위원회가 3월 23일부터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300명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해서 난상토론을 한다는 것이다.
논의하려면, 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1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 소위원회는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낸 3개 안을 국회 전원위원회에 올리기로 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안을 만들지 못하고, 의장 자문기구가 낸 안을 그대로 논의에 올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전원위원회가 개최되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수도 있다. 국회 전원위원회에서는 의장 자문기구가 낸 안에만 국한해서 논의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언론보도는 이 3개안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 3개안은 모두 개혁방안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방안들이다.
의장 자문기구의 ‘프랑켄슈타인’ 선거제도
필자가 보기에는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제시한 3개 안 모두가 짜맞추기식 방안일 뿐만 아니라, 현실성도 의심스러운 방안들이다. ‘프랑켄슈타인’같은 선거제도인데, 그나마 현실성도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의 1안은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배분은 병립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지역구는 1명씩만 뽑는 소선거구제로 하면서, 얼마 안 되는 비례대표 의석만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하는 것이 ‘병립형’ 방식이다. 그러나 ‘병립형’ 방식은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일치될 수 없는 방식이고, 승자독식과 거대양당 중심의 기득권 구조를 만든 원인이다. 바로 이런 병립형 방식의 문제점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 많은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어떻게 개혁방안일 수 있는가?
2안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배분은 준연동형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표의 등가성’ 측면에서는 1안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100% 배분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반쪽짜리 ‘준연동형’을 하자는 것인지 의문이다. 지금이 ‘준연동형’인데, 개혁하겠다면 ‘제대로 된 연동형’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는 국가인 독일, 뉴질랜드는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국회의석이 배분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비교적 선진적인 정치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고 ‘반쪽짜리 연동형’을 하겠다는 것은 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
더구나 1안과 2안은 국회의석을 350석으로 늘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실현가능할까? 벌써 홍준표 대구시장은 국회의석을 오히려 줄여야 한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국민여론도 확대에 부정적이다. 의석을 늘리려면 국회의원 연봉삭감, 보좌진 축소, 특권폐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딱 공격받기 쉬운 방안이다.
필자는 국회의석을 늘리자는데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현재 국민의힘의 태도나 국민여론을 보면 국회의석 확대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국회의석 확대가 안 된다면, 1안은 명백한 후퇴이고, 2안은 현상유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개혁안이라고 내놓는지 모를 일이다.
3안은 도·농복합선거구제를 하면서 비례대표는 병립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하고 농촌은 소선거구제로 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장점이 없는 방식이다. 도시지역에서 3~10인을 선출한다고 하는데, 다수대표제 방식(지역구에서 후보를 보고 투표하고 득표순으로 당선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선출하겠다는 얘기로 보인다. 그러나 10등을 한 후보가 몇 %의 득표를 하겠는가? 1% 미만을 얻어도 10등을 해서 당선될 수도 있다.
유럽에서 보는 대선거구제는 비례대표제 방식이다. 대선거구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 방식이라면 개혁방안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3~10인을 다수대표제 방식으로 뽑는다는 것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방식이고, 설득력도 없는 얘기이다.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한다는데, 영ㆍ호남의 농촌이야말로 특정 정당에 의한 일당지배가 강한 상황인 것을 무시한 방안이다. 오히려 농촌이야말로 대선거구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예상되는 ‘아무말 대잔치’
이런 상황이라면 23일부터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린다고 한들, ‘아무 말 대잔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내놓은 3가지 방안 자체가 짜깁기 방식이고 공격받을 지점들이 너무 많으니, 이 방안들 중심으로 논의가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300명이 각자 자기 생각을 늘어놓는 ‘아무 말 대잔치’로 흐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고 지역일당 지배체제를 타파하는 것인데, 오히려 ‘의석 확대냐 아니냐’가 논의의 중심을 차지할 가능성도 크다.
벌써 홍준표 대구시장같은 기득권 정치인이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이 국회에 있을 때 국회 특수활동비를 ‘생활비’로 썼다고 자기 고백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개혁론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자기가 썼던 특수활동비나 토해놓을 일이다.
한편 홍준표 시장 같은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제대로 된 선거제도 개혁방안이 논의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긴 것이다.
‘아무 말 대잔치’를 막을 2가지
시간이 많지 않지만, 23일부터 열릴 국회 전원위원회가 ‘아무 말 대잔치’가 되지 않으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지난 대선 때부터 약속했던 ‘제대로 된’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혁신위원회 등을 통해 당내 논의를 해 왔다고 하지만, 확실히 개혁적인 방안을 당론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 거론하는 ‘준연동형’은 반쪽짜리 제도인데, 이를 개혁방안이라고 볼 수 없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덴마크·스웨덴식 대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든지 해야 개혁방안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민주당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지역에서는 개혁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정치개혁특위가 제안해서 지난 3월 4일 광주광역시당 상무위원회가 덴마크·스웨덴식 대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의결한 바 있다. 이런 당내의 개혁적인 목소리를 민주당 지도부가 받아 안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제도 개혁논의가 ‘아무 말 대잔치’로 끝나면 타격을 받는 것은 민주당이다. 국민의힘은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선 때 공약을 했던 민주당은 개혁다운 개혁방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개혁논의가 좌초된다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개혁적인 방안을 내놓고,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개혁 대 반개혁의 논의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국민들이 보기에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골몰한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둘째, 의석을 진짜 확대하겠다면, 국회의원 연봉 대폭 삭감, 보좌진 축소, 국회의원을 감사하는 독립기구 설치, 국회의원 소환제도 도입 등의 구체적인 국회 개혁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을 조금이나마 설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안도 내놓지 못하면서 ‘의석확대’를 거론하는 것은 홍준표 시장과 같은 ‘진짜 기득권 정치인’에게 좋은 먹잇감을 제공해 줄 뿐이다.
예산동결과 인건비 동결을 거론하지만, 그 정도로는 국민들의 국회불신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 현재 1억 5천만 원이 넘는 국회의원 연봉을 1억 원 이하로 대폭 삭감해야 한다. 보좌진도 3분의2 수준 미만으로 축소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법위반, 윤리위반, 이권개입, 예산낭비 등을 감시ㆍ조사하는 독립적인 국회감사기구를 설치하고, 국회의원 징계위원회에도 외부인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국회의원 소환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이 정도 방안을 제시해야 의석확대에 대한 국민동의도 받을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과 국회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야말로 진짜 기득권세력임을 보여줄 수도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23일부터 열릴 국회 전원위원회가 근본적인 정치개혁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인지, 국민들의 국회불신과 정치불신을 부추길 ‘아무 말 대잔치’가 될 것인지는 앞으로 남은 며칠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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