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가 불을 당긴 이유
2015년 건설현장 철근노동자로 일을 시작한 열사는 2018년 강원건설지부가 생기고 그 이듬해인 2019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고성, 속초, 양양, 강릉의 건설 현장을 책임지는 3지대장을 맡아 활동했다.
열사의 동료들은 양 열사가 지난달 1공수(하루 일당)밖에 받지 못한 것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열사와 함께 조합원 고용과 교섭 관련 일을 함께 한 윤강희 강원건설지부 조직부장은 “자신은 하루(1공수) 일했으면서, 조합원들에게 ‘몇 공수 일자리 마련해줬다’며 누구보다 기뻐했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열사를 3지대장으로 추천했다는 김기형 강원건설지부 1지대장은 “조합원 아닌 사람들에게도, 주변 기능공들에게도 일자리 소개해 주려고 힘썼던 친구였다. 저녁마다 전화해서 ‘오늘은 5명 일자리 만들었다’고 기쁘니까 소주 한잔하자고 연락하는 동생”이라고 회고했다.
자신은 하루 일당밖에 못 벌면서 양 열사가 건설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닌 이유가 있다.
1998년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는 임차진 강원건설지부 형틀팀장은 “건설노동자들은 평생토록 일자리 걱정하면서 하루하루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현장에 들어가면 짧게는 한 두 달, 평균 3~4개월 일하면 일거리가 끊긴다. 한 현장에서 1년 이상 일할 수 있는 건 운이 좋았을 때다. 요즘 같아선 일을 못해 8개월 동안 쉬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생긴 현상이다.
25년을 건설 현장에 있었던 임 팀장은 “윤 정부가 건설사들 편을 들고 건설노조 죽이기에 나서면서 조합원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속초, 강릉엔 대규모 현장도 생기고, 중소 현장도 존재했다. 건설 현장 잔뼈가 굵은 그의 눈에도 ‘내년까지 일자리는 희망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었다. “작년 말부터 윤석열 정부를 등에 업은 건설사들이 돌변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채용은 족족 거부”당했다.
열사는 조합원들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니네(건설노조)가 할 수 있으면 해봐”라는 비아냥과 협박, “(노조)조끼 벗고 와라”, “휴일 수당 포기하면 써줄게” 등의 말을 들어야 했다. “민주노총이랑 같이 일하고 싶은데 대표님이 고용하지 말래요”라는 말까지 들렸다.
시작과 끝에 윤석열 정부가 있다
임 팀장은 “회의 때 지대장이 고용 보고를 올렸다. ‘용건만 얘기하고 가라’고 내치는 건설사들에게 양 지대장은 ‘조합원들 안 굶게 도와달라 사정하면서 나왔다’고 보고했다.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누구한테 하소연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반성하는 사람”이었다고 떠올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윤석열 정부가 저렇게 나오는데, 형님은 뭐 한 거 있냐’라고 말할 법도 한데, 남을 탓하지 않고 자기가 더 분발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규모가 큰 건설 현장에 여러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만들고서는 자신에 대한 공치사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 현장에서 일하게 된 조합원들은 양 열사가 서울 화상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병원 앞을 꼬박 지켰다.
김기형 1지대장은 “교섭자리에서 욕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일 좀 시켜달라’고 하는 게 공갈이 되고 협박이 되었으니 그게 얼마나 억울했겠나”라고 분개했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동자의 일자리 갈취했고, 결국 양회동 열사에게 공갈 협박죄를 씌워 억울한 죽음을 만들었다. 시작과 끝에 윤석열 정부가 있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윤석열 정부 퇴진’을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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