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최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경기도 이천의 한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철근이 누락된 부실공사 정황을 확인하고 이천시청에 고발하러 갔다가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길게는 수십 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건설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부실공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고발을 하면 이처럼 무시당하기 일쑤다.
인천 검단신도시의 한 아파트 주차장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부실공사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면 건설현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건폭’으로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건설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이 억울하고 개탄스럽다.
국민신문고, 지자체에 민원 제기해도 묵살
언론보도 나간 후 ‘부실공사’ 정황 확인
이천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지부 광주이천여주지대의 한 조합원이 지난 4월 초쯤 다른 작업 구간에서 철근이 누락되는 부실공사 정황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사측에 “왜 철근을 누락시키냐”고 따졌다.
하지만 그가 고용돼 있는 건설업체는 이를 무시했다. “원청도, 감리도 아무 얘기를 안 하는데 우리(하청)가 그걸 왜 얘기하느냐”는 것이었다. 광주이천여주지대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자부심 있게 일하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담당한 구간에서 워낙 많은 양의 철근을 빼먹다 보니까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며 “그런데 현장에서는 (고용)구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에 노조가 선택한 방법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효과가 없었다. 광주이천여주지대 관계자는 “약 120장 정도 되는 사진을 가지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2~3번 신청했는데도 믿어주질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노조는 공사의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이천시청을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이천시는 시공사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건 작업 과정의 문제”라는 것이다. 광주이천여주지대 관계자는 “시청 담당 공무원이 우리 말을 듣고는 처음엔 ‘이 정도면 건물이 무너지겠네요?’라고 하더니, 건설현장을 다녀온 뒤로 태도가 확 바뀌더라”고 말했다.
이천시청 담당 공무원은 오히려 노조를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노조가 일자리 문제로 시비를 거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건설현장 개설 상황에 따라 취업과 실직을 반복해야 하는 건설산업 고용 구조의 특성상 노조는 사측과 조합원 채용 규모도 협의해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를 ‘채용 강요’라고 보고, 협박 등 혐의로 노조 간부와 조합원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구속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노조가 협박의 수단으로 부실공사라는 트집을 잡고 있다’는 건설업체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있었다.
부실공사 문제를 제기한 노조에 대한 이천시청 담당 공무원의 반응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부실공사를 제보한 데 대해 칭찬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비난을 한 셈이었다. 광주이천여주지대 관계자는 “우리가 담당한 구역의 공사가 다 끝나가는 판에 무슨 채용 강요인가. 우리는 이 과정에서 고용 얘기를 꺼내본 적도 없다”며 황당해했다.
노조는 이천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며 이천시의 전향적인 태도를 촉구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언론사에 이를 제보하기에 이르렀고, 노조의 주장대로 철근이 누락되는 부실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보도를 통해 드러나면서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중순 SBS에서 보도가 나가자 이천시는 부랴부랴 비파괴 검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시공사가 보강 철근을 누락한 사실이 7월 말 확인된 것이다. 건설노조의 문제 제기는 정당했음이 드러나는 계기였다.
이에 따라 이천시는 정밀안전진단을 의뢰하기로 하고, ‘작업 중지’ 같은 긴급 안전 조치 검토에 착수했다. 하지만 노조는 “부실공사 정황이 어느 정도 확인된 만큼 작업을 중지하고 안전점검을 한 후에 작업을 재개하는 게 맞다”며 이천시에 즉각적인 작업 중지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이 방송에 보도가 되는 과정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여러 언론사는 노조의 제보를 받고도 보도를 하지 않았다. 노조가 전문가의 소견을 받기 위해 구조 기술사를 찾아가도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것은 맞지만 우리는 도와드릴 수 없다. 우리가 소견을 내는 순간 우리는 이 바닥에서 먹고살기 어려워진다”는 거절의 답변이 돌아오곤 했다.
검단신도시의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부실공사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않았다면, 이천에서 발생한 사건은 어쩌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조는 이번에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부실공사 민원 제기는 줄곧 있었지만,
늘 무시당하거나 자칫하면 해고당하기도
실제로 건설노조는 그동안 부실공사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고 공론화를 계속 시도해왔다. 하지만 무시를 당하는 것을 넘어, ‘건폭’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건설노조는 지난 3월 “건설현장 불법시공·부실공사가 국민의 안전과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정부에 책임을 묻는 집회를 서울 도심에서 열었다. 당시 건설노조는 “작년 광주 화정동 아파트(현대아이파크)가 무너져 내린 것의 원인은 직접적으로 콘크리트 양생기간을 지키지 않아서 무너져 내린 것으로 정부는 이야기하고 있다”며 “문제는 현대아이파크만 이렇게 아파트를 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군 업체라고 하는 대형 건설사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 아파트 입주 이후 누수나 균열 등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현장에서, 시공과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들과 무관하지 않다”며 “부어넣은 콘크리트가 경화가 시작된 이후 추가로 콘크리트를 부어넣으면 균열이 생기는데 이를 ‘콜드조인트’라고 하며 이 부위를 현장에서는 시멘트 미장으로 가려 놓지만 결국 입주 후에 누수가 발생하고 이는 구조물의 내구성 저하로 이어져 건물의 수명을 단축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건이 있기 전이어서 그런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장마로 연일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7월에는 서울 동대문구청 앞에서 부실공사 신고에도 적극 대응에 나서지 않는 구청을 규탄하는 건설노조 집회가 열렸다.
비가 쏟아지는 도중 콘크리트 타설을 강행했다는 입주민들의 민원이 접수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에 대해 동대문구가 부랴부랴 작업 중지를 명령했는데, 건설노조는 동대문구가 관할하는 또 다른 건설현장에서도 이런 부실공사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동대문구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타설 과정에서 물이 들어가면 콘크리트 강도가 약해져 부실공사의 원인이 된다.
서울경기북부지부 동북지대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비가 오는 도중에 타설을 하는 건 부지기수”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저희가 구청에 (부실공사에 관한) 민원을 제기를 하면, 일단 실사는 나가더라. 문제는 언제 몇 시에 점검하러 간다고 (사측에) 미리 전화를 넣는다는 것이다. 이건 상황을 연출하는 거 아닌가”라며 “불시에 점검을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콘크리트 강도를 약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인 타설 시간 지연도 건설현장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관행 서울경기북부지부 동북지대 교섭위원은 당시 집회에서 레미콘 운송 차량이 건설현장에서 정해진 시간을 넘겨 타설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동대문구청에 ‘빨리 와서 관리·감독을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타설이 다 끝날 때까지 동대문구청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부실시공을 체증해서 관공서에 민원을 제기하고 고소·고발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 뭐 하나. 나와서 시정 조치도 하고 관리·감독도 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고 있다”며 “결국 부실시공을 하면 100년은 가야 할 아파트가 20~30년이면 무너지고 부서지고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노조 입장에선 부실공사 문제를 제기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실상 일당을 받고 사는 불안정한 고용구조 탓에 사측의 눈에 거슬리면 언제든 잘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 의정부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부실공사 문제를 제기했던 건설노조 조합원 전원이 집단으로 해고당한 일이 발생했다.
건설노조는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지난 3월 초 조합원들이 고용돼 있는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시공사에도 알려 부실공사 현장을 함께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적합한 합판으로 거푸집 작업을 한 점, 일부 구간에 내진 철근을 사용하지 않은 점, 흙막이 가설재가 파손된 점이 대표적인 부실시공 정황이었다.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는 “부실시공은 우리의 일자리 보존만을 위해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며 “지난해 발생한 광주 아파트 건설현장처럼 붕괴가 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부실시공을 확인한 시공사와 하청업체는 보수 공사를 하겠다고 밝혔다고 노조는 전했다. 하지만 이후 보수 공사가 실제로 진행됐는지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문제가 제기된 지 약 보름이 지날 무렵, 노조 조합원들이 갑자기 전원 해고 통보를 받으며 건설현장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80명이 넘는 조합원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
해고통지서에 적혀 있는 해고 사유는 ‘현장 내 불법 집단활동, 태업, 업무방해’였다. 실제로는 사측이 노조 활동을 트집 삼아 해고한 것이라고 노조는 보고 있다. 즉, 정부의 ‘건폭’ 몰이에 편승해 사측이 노조를 건설현장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노조 배제된 자리에 남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부실공사 근본 원인
그런데 문제 제기하면 ‘건폭’으로 매도당하는 노조 조합원들
노조가 배제된 건설현장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들어선다. 하도급 단계가 많아지고 복잡해지면서 건설업체들은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건설자재를 빼돌린다. 현장에서는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경력이 많은 기능공이 아니라 건설 과정과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인력들을 쓰게 되는데, 업체들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넘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선호한다. 임금을 빼돌릴 수 있는 데다, 현장에서 자재를 빼돌리거나 부실시공을 해도 반발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감시의 눈조차 사라진 현장에 부실공사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건설노조가 오히려 현장에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려고 노력해왔다면, 그걸 지금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윤석열 정부”라며 “그래놓고 이제와서 갑자기 건설현장의 부패 카르텔 잡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건설노조의 견제 기능을 오히려 높여주고, 건설현장에서 법 준수를 촉구하는 기본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해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그런 건설노조를 마치 공갈이나 협박을 하는 범죄조직인 것처럼 몰아가서 건설노조가 가지고 있던 견제 기능 자체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있지 않나”라며 “그 결과 부패 카르텔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게 윤석열 정부”라고 꼬집었다.
건설노조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에는 눈을 감고 숙련공을 양성하는 국가정책의 부재 속에서 부실공사·불법시공을 척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이러한 건설사의 부조리를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건설노조 때려 잡기에만 앞장서는 윤석열 정권은 결국 건설자본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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