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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마저 ‘이념 갈라치기’ 윤석열 정부에 여권도 반감

윤 대통령 부친과 친분 두터웠던 이종찬 광복회장 “좌시하지 않을 것”

이종섭 국방부 장관 자료사진 ⓒ뉴스1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5명의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철거할 계획이라고 하자, ‘독립운동 지우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육사 교정에 세워진 5명의 독립전쟁 영웅 중 1명의 공산주의 경력을 이유로 5명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계획인데, 여권에서조차 “매카시즘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육사는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철거하고 독립군과 싸우던 일본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 장군의 흉상 설치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종찬 광복회장조차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항일 독립전쟁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버”라고 했고, 유승민 전 의원 또한 “이념 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그렇게 할 거면 홍범도 장군에 대한 서훈을 폐지하고 하는 게 맞지 않겠나?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에 추서한 건국훈장 말이다”라고 비판했다.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 논란에
국방장관 “굳이 육사교정에 있어야 하나”
광복회장의 경고 “좌시하지 않을 것”


지난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미국이 한미일 훈련 장소인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일과 관련한 질의에 이어 육사 교정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 논란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늘 아침 뉴스를 보고 상당히 놀란 게 있다”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질의했다.
 

김병주 의원과 이종섭 장관

▷ 김병주 :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철거한다는 뉴스를 봤는데, 사실인가?
▶ 이종섭 : 그렇다. 육사에서 육사 교정에 있는 기념물을 다시 정비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는 장교의 요람인데,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을 억지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인데,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 그런 문제가 제기되어 시작했다.


육군사관학교가 철거를 계획하고 있는 흉상은 2018년 중앙현관에 설치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다. 육사는 봉오동 전투 등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을 문제 삼았다. 박정희 정부가 1962년 훈장을 추서하고, 진보·보수 정부 가리지 않고 예우해 왔던 장군의 광복 전 경력을 문제 삼은 것이다. 또 육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내에 백선엽 장군 흉상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국방위 회의에서도 김병주 의원은 “여기다가 한미동맹공원을 만들어서 백선엽 장군과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데, 독립운동가를 대체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홍범도 장군 자료사진 ⓒ국가보훈처

하지만 이 장관은 “그분들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존중받아야 한다”면서도, “굳이 육사 교정에 그런 조형물이 있어야 하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26일에도 출입기자들에게 “소련 공산당 가입·활동 이력이 있는 분을 생도 교육의 상징적인 건물의 중앙현관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에,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 27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독립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백선엽 장군이나 그런 류의 장군 흉상으로 대치한다면 우리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회장은 윤 대통령의 부친 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친분이 두터웠고, 두 집안은 오랫동안 교류해 온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백선엽 장군은 일제 강점기 시절 항일단체를 토벌하기 위해 창설된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며 일본을 위해 항일운동을 하던 동포를 토벌했음을 일부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정부는 백선엽 장군의 친일행적을 지우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최대 국난인 6.25 전쟁을 극복한 최고 영웅인 백 장관의 명예를 지킬 것”이라며 국립현충원 홈페이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육사 교내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철거하고 백선엽 장군 흉상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홍범도 장군은 해방 2년 전에 작고하셨으니 북한 공산당 정권 수립이나 6.25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윤석열 정권의 이념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1950년대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공주의 선풍 “매카시즘”을 우려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에도 ‘일제로부터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독립운동’을 ‘이념투쟁’처럼 묘사했다. 그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라며 “우리의 독립운동은 주권 회복 이후에는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그리고 경제 발전과 산업화·민주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 등의 발언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야권을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같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반공주의 이념’을 강조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힘을 합쳐야 하는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일본 극우언론들의 찬사를 받았다.

한편,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최근 이어지는 여러 논란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해양투기 계획에 대해 “과학적”이라며 옹호하고, 지난 22일 동해에서 진행된 한미일 군사훈련 당시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한 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항의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공교롭게도 한미일 군사훈련이 있었던 날은 일본이 정한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며 칭하는 명칭)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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