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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등 조짐 보이는 반도체…국제 갈등 고조에 불확실성도 커져

감산 효과·기술 고도화로 메모리 단가 상승…수요 확대 전망은 불확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자료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시장이 꿈틀거린다.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D램 단가가 2년여 만에 상승 전환하면서 회복론에 무게가 쏠린다. 업계의 감산 공조가 효과를 내기 시작했고, 기술 고도화에 따른 고사양 칩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회복이 더디게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제 정세 불안이 커지고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

2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1,100원(1.60%) 오른 6만 9,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7만원까지 올랐다. SK하이닉스는 5천원(4.16%) 오른 12만 5,300원에 장을 마쳤다. 반도체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기업은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서도, 적자 폭을 줄여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3조 7,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상반기에 이어 3개 분기 연속 적자다. 올해 총 적자 규모는 12조 6,9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적자 폭은 1분기 4조 5,800억원, 2분기 4조 3,600억원에서 축소됐다.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적자 규모는 1조 7,920억원으로, 전 분기 2조 8,821억원보다 38% 감소했다.

양사는 공히 실적 개선 배경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를 꼽았다.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 연산이 고도화하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늘고 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제품이다. 대규모 서버를 운영하는 구글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이 주요 고객사로 있다. DDR5도 고성능 D램을 대표한다. 기존 DDR4보다 성능을 높인 차세대 제품이다.

다만, 고부가 제품은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D램 시장에서 HBM 비중은 물량 기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매출 기준으로는 10% 수준으로 추산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올해 DDR5의 매출 기준 비중을 20%로 전망한다. 아직 주류는 DDR4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평균판매단가(ASP) 상승도 적자 감소에 주효했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반도체 업황이 저점을 지나 4분기, 내년까지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는 4분기 전망에 대해 “메모리 시장 회복 추세가 가속화하고, 전 분기 대비 가격 상승 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도 “D램은 생성형 AI 붐과 함께 시황이 지속해서 호전될 전망이고, 낸드도 시황이 나아지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면서 “재고가 줄어든 고객사 중심으로 메모리 구매 수요가 창출되고, 가격도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DDR4 가격 상승이 반도체 업황 개선 전망에 힘을 싣는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인 DDR4 4Gb의 10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15.38% 오른 1.5달러를 기록했다. D램 고정 거래가격이 상승한 건 2021년 7월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DDR4와 DDR5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정부 통계에서도 반도체 반등 조짐이 보인다. 전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3.1% 감소한 89억 4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감소세가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낮은 감소율이다. 올해 1분기 저점 이후 점차 회복하는 추세다. 반도체 수출 감소율은 지난해 4분기 25.8%, 올해 1분기 40%, 2분기 34.8%, 3분기 22.6%를 기록했다.

정부는 반도체 수급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보는 근거로 업계의 감산 확대와 AI 서버용 고부가 제품 수요 확대,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를 들었다.

증권가도 업황 개선을 점친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가 4분기 D램에서 흑자 전환하고, 낸드도 적자 폭이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마트폰과 PC용 메모리 가격 상승세를 전망하면서 “메모리 업황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공급자 우위의 가격 협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화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가 4분기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측했다.

 

 

 

SK하이닉스 HBM3 자료사진. ⓒSK하이닉스

지정학적 갈등·세계 경기 회복은 여전히 불확실

업황 반등을 공급과 수요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공급 측면에 기인한 메모리 가격 상승 전망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은 이르면 지난해, 늦어도 올해 4월부터 감산에 돌입했다.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최근의 가격 상승은 주요 기업 감산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된다. 하나증권은 전날 보고서에서 “공급 업체의 강도 높은 감산과 낮아진 가격이 고객사 재고 확보를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향후에도 해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메모리 업황의 방향성과 업체들의 실적 개선 가시성은 확보됐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유안타증권도 “메모리 공급 업체의 감산으로 4분기부터 재고 감소세가 확대될 것이라는 점은 가격 상승 탄력도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감산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내년에도 업계의 일부 선별적인 감산이 이어질 것”이라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시설투자 축소 현상을 감안하면 업계 비트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 성장률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빠른 시간 내 재고 정상화를 구현하기 위해 추가 선별적인 생산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실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도 “감산 원복은 재고 수준과 시장 상황에 맞춰 점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며 당분간 감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제는 수요다. 서버와 스마트폰, PC 고객사가 재고 소진에 대응하는 측면 외에 추가적인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가 관건이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발달하고 스마트폰과 PC 성능이 높아지면서 고부가 제품 수요가 증가하는 건 긍정적이다.

다만,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호황과 불황을 지나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업황 회복 조짐을 전하면서도 “2020년의 광란(반도체 슈퍼사이클)으로 즉시 복귀할 것이라고 보는 경영진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트렌드포스도 “공급 업체가 4분기에 공격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반면, 내년 상반기 수요 전망은 보수적이고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 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패권 경쟁 속에 상호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중동 정세도 불안하다. 한국 반도체 수출 주요 시장인 중국의 경기 반등도 기대와 달리 미진하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업황 회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업계의 감산 공조가 전제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진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실적 관련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 메타·스냅·월풀·마스터카드 등 기업의 4분기 소비 둔화 경고를 감안할 때,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국면”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황이 다시 고꾸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이투자증권은 전날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기존 9만 5천원에서 7만 7천원으로 낮추면서 “경기선행지표 하락에 따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조만간 하향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개월 이후의 반도체 업황을 알려주는 경기선행지표가 곧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게 하이투자증권 설명이다. 하이투자증권은 “경기선행지표가 조만간 하락세로 전환한다면, 이는 내년 중순경 반도체 수요와 업황이 둔화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인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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