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영화인들에게 ‘학습효과’를 초래한 사건이 있다. 2005년 개봉한 10·26 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당시 박지만씨는 신청서를 통해 “실존 인물을 영상표현물로 재구성할 때 인격권 침해나 명예훼손이 되는 허위사실을 적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영화에 삽입된 장면 3가지를 삭제한 뒤 상영하라고 결정했다.
‘서울의 봄’과 같은 시대를 다룬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은 방영 전부터 압박을 받았다. 신군부 세력인 장세동, 정호용, 허화평 등이 쿠데타 사실을 부인하며 대본 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실존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이들 인물의 묘사나 상황 설정이 사실과 다르다면 이것은 역사의 조작이라는 차원을 넘어 개인 인격의 모독이자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방영 이후엔 1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 등 줄소송이 이어졌다.
판례를 보면 큰 틀에서 ‘창작의 자유’를 보호하는 편이다. 2013년 대법원은 “상업영화의 경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더라도 영화제작진이 상업적 흥행이나 관객의 감동 고양을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다소간 각색하는 것은 의도적인 악의의 표출에 이르지 않는 한 상업영화의 본질적 영역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의 한계로 인해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용이하지 아니한 점 등도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제작자 입장에선 상영·방영금지 가처분이나 소송이 제기되면 그 자체로 피해를 받게 되고 콘텐츠 평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명을 쓰지 않거나 허구라는 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관련 소송이 잇따르자 영화진흥위원회는 2019년 <실화 기반 영화 제작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가이드라인은 “최대한 특정 인물이 연상되거나 그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도록 실제 사실과 인물의 특징을 각색하여 영화에 반영하도록 한다”며 “반드시 상영 전후에 ‘인물, 지명, 상호, 회사 단체 및 사건과 에피소드 등이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임을 자막으로 명시해 게시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미국에선 실명을 가감 없이 쓴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다룬 ‘프로스트 vs 닉슨’,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의 성희롱을 폭로한 내용을 담은 ‘밤쉘’,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를 부정적으로 그린 ‘바이스’ 등이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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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준경 기자teenkj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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