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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대보다 생산 절벽의 시대가 먼저 도착한다면?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아직 오지 않은 미래, 계획과 준비 없으면 폭망

 
 

 

 

"전기차 시대가 오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 인류의 미래 어딘가에는 분명 '전기차 시대'가 위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좀 더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해야 한다. 일단은 몇 가지 데이터를 놓고 상대적으로 좀 쉬운 얘기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자.

 

주춤거리는 유럽 전기차 시장

 

전기차로의 전환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전만 해도 이 전환은 하이브리드(hybrid) 단계를 거쳐 순수 전기차로 이동하리라는 것이 업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을 겪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급등하면서 이 상식은 완전히 뒤집힌다. 하이브리드 단계를 건너뛰고 순수 전기차로 넘어가는 추세가 분명해진 것.

 

그러나 팬데믹이 지나고 엔데믹이 시작되면서 추세에 변화가 생겼다. 팬데믹 기간 중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던 유럽 쪽 데이터를 보면 2022년부터 전기차로의 전환이 주춤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아래 표) 

 

 

유럽에서 전기차 수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올라왔지만 속도가 식어버리는 것도 빨랐다. 2020~2021년에 매년 2~3배씩 성장하던 전기차 판매량이 2022~2023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연간 3% 포인트씩 성장하는 수준으로 낮아졌다.

 

표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판매량에 포함된 나라들은 우선 유럽연합(EU) 회원국 26개 나라, 그리고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유럽자유무역협정(EFTA) 체결국인 3개의 나라(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위스), 마지막으로 최근 EU를 탈퇴한 영국의 판매량을 모두 합산한 것이며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가 발표한 자료를 기초로 삼았다.

 

아직 4분기 판매량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매년 1~3분기까지의 누적 판매량을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4분기에 특별한 변화 요인이 없었기 때문에 4분기 데이터가 공개된다 하더라도 추세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 봐도 될 것이다. 위 표에 기반해 그래프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미국과 글로벌 업체들 상황도 마찬가지 

 

전기차 하면 모두들 테슬라(Tesla)만 쳐다보는데 그건 시야를 너무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테슬라의 성장세가 눈부신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미국에서 테슬라 혼자 앞서나가고 있을 뿐 다른 업체들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는 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 GM, 포드 등 글로벌 업체들의 전기차 전환 포부는 장대하였으나 최근 보이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먼저 지난해 7월 말, 포드의 CEO 짐 팔리(Jim Farley)는 새로운 생산 전략을 발표하게 되는데, 생산전략의 변화 핵심은 지속적으로 적자가 이어지는 전기차 증산 계획을 연기한 것이다. 대신 이윤율이 높고 판매도 성장하고 있는 내연기관차 픽업트럭 등 상용차 부문에 투자를 더 확대하겠다는 것. 

 

GM 역시 전기차 전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CEO 메리 바라(Mary Barra)는 특히 공개석상에서 GM이 자랑해온 전기차 전용 Ultium 플랫폼을 활용하는 전기차에 공급할 배터리 모듈 조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GM은 자신의 시그니처 전기차 모델로 선정한 GMC 허머와 캐딜락 Lyriq 생산 목표치는커녕 그 1/1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포화 상태에 이른 중국 시장 

 

지난해 중국 시장은 사상 최초로 3천만 대 이상의 자동차 판매량을 기록했다. 글로벌 판매량이 아직 8~9천만 대 수준인데 중국에서만 전세계 1/3 이상의 자동차를 빨아들인 것이다. 또한 중국의 경우 유럽과 달리 전기차 판매량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이 벌써 30%대에 진입한 상태이다. 

 

위 그래프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3분기까지의 중국 시장 판매량을 분석하여 그려본 것이다. 판매량 데이터는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의 자료를 활용했다. (단위 : 만 대) 참고로 여기서 '전기차'라 함은 배터리전기차(B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수소연료전지차(FCEV) 3가지를 의미한다. 플러그인을 제외한 하이브리드는 전기차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 역시 이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중국이라고 직선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 메이커들의 성장은 이제 중국 내수시장을 포화상태로 만들어 버렸고 점점 과잉생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외 수출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바로 그 대목에서 미국과 유럽의 보호무역이라는 강력한 견제 앞에 직면해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해외 수출시장 개척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지난해 중국에서 생산되어 수출된 차량 수는 491만 대로 이제 독일·일본을 넘어 글로벌 자동차 수출 1위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에 나서면서 완성차업체 철수를 단행하자 중국 메이커들이 러시아로의 수출을 늘리며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로? 

 

한국 시장 역시 전기차 판매량이 팬데믹 기간 동안 급속도로 높아졌으나 유럽 시장과 똑같이 2022년부터 열기가 식어버린 상태이다. 3분기까지의 전기차 판매량을 연도별로 그래프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지난해(2023년)의 경우 전기차 판매량은 2022년 대비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이 걱정해야 할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주요 시장들, 즉 유럽과 중국, 미국 시장이 한국 자동차산업의 주요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시장이 고전하고 있다는 점만이 아니라 이들 모두 상당 수준의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면서 한국 업체들의 수출에 수많은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7년에 미국, 2011년에 EU, 2015년에는 중국과 각각 FTA를 체결한 바 있다. 북반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EU·중국은 3개의 가장 중요한 생태계이자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이들 3개의 생태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각각 엄청난 갈등과 경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이 3개의 권역과 모두 FTA를 체결한 나라가 전세계에 몇 개나 있을까?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만큼 3개의 생태계로부터 그동안 견제를 덜 받아왔다는 얘기다. 한국 자본주의가 (자본가들 입장에서) 운이 좋았거나 아니면 줄타기 외교를 잘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덕에 현대기아를 중심으로 한국의 완성차업체들은 이 3개 권역으로 자유로운 수출과 무역을 통해 상당한 이윤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팬데믹을 거치면서 공급망이 산업과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고, 3개의 생태계·경제권 모두가 각자 자기들만 공급망을 독점하겠다며 다른 생태계·경제권을 절멸시킬 수도 있는 갈등과 경쟁 시스템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자본주의가 누려왔던 중요한 이점들은 이제 모조리 사라지고 위기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전기차 시대'라는 예정된 미래가 오는 속도보다 수출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짐으로 인해 생산 절벽의 시대가 더 빨리 도착할 지도 모른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 그 어느 때보다 위기 경보가 울릴 가능성이 높은 지금, 이를 극복하려면 어떤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할까.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뤄보도록 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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