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파’로 분출되는 정권 심판론, 밑바닥엔 경제실정 분노

대통령 부정평가 상승...‘경제·물가’ 이유 가장 많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 등 채소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2024.03.18.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손에 들어 보였던 '대파 875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시세보다 크게 할인된 대파 가격만을 두고 '합리적'이라고 표현한 윤 대통령이 물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윤 대통령의 부정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심의 '대파 분노'가 윤석열 정부의 경제 실정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아 대파 판매대 앞에서 "나도 시장을 많이 가 봐서 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날 대파 한단(1kg)에 875원이란 가격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할인가였다. 윤 대통령이 방문한 하나로마트 양재점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대파를 현재 가격의 3배 넘는 가격에 판매했다. 해당 매장은 지난 11~13일 할인 행사를 통해 대파를 한단에 2,760원에 팔았다. 당시 매장은 농식품부 지원 20% 할인 가격이라고 광고했다. 이후 1,250원에서 250원을 할인한 1,000원에 판매하다 윤 대통령이 방문한 지난 18일부터는 대파 한단 가격을 875원까지 낮췄다. 이마저도 20일까지, 하루 1,000단에 한정해 판매됐다.

하나로마트 측은 농림축산식품부의 30% 할인 지원에 자체 할인까지 더해져 875원이라는 가격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농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유통업체 특성이나, 정부 할인 지원을 받은 것을 고려해도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낮은 가격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875원짜리 대파를 보고 "다른 데는 그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거 아니냐"라고 묻자 옆에 있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관료들은 "5대 대형마트 다 (할인)을 한다", "재래시장까지 정부 할인쿠폰을 적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875원의 대파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대형마트도 정부 할인을 적용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대형마트와 시장의 대파 한단의 가격은 2배가 넘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8일 기준 전국 대파 한단의 주요 시장·대형마트의 평균 소매가격은 3,018원으로 나타났다. 서울 경동시장은 4,500원, 복조리시장은 3,660원으로 집계됐다. 대형마트들은 대부분 1,980원에서 3,690원 사이의 가격을 보였다. 최고가는 7,300원으로, 하나로마트 양재점의 가격보다 무려 7배를 넘었다. 최저가격인 875원이 실재하기는 했으나, 800원대 가격은 'B유통' 한 곳이 유일했다.

'대파 한단 875원'이 '합리적'이라고 표현한 윤 대통령이 물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서민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오른 신선식품 가격으로 무거워진 장바구니 물가를 체감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2월 채소류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12.2% 올랐다. 지난해 3월(13.8%)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채소류 물가는 지난해 10월(5.9%)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파는 지난 2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가격이 50.1% 급등했다. 파 물가상승률은 작년 10월(24.7%)부터 11월(39.7%), 12월(45.6%), 올해 1월(60.8%) 등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상황이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대파 한단이 875원이라니 시장에 가면 말이 안 되는 가격인데 대통령이 합리적이라고 하니 사실은 물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실망을 소비자들이 느끼는 것 같다"면서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다."라고 말한지 5일이 지난 22일 서울 한 마트에서 쪽파가 4,990원에 판매되고 있다. 2024.03.22 ⓒ민중의소리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상승...'경제·민생·물가' 이유 가장 많아


윤 대통령의 물가 점검 자리에서 물가 현실 파악보다는 정부의 성과 치적을 내세우는 모습에 민심은 반감을 보이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이 나온 후 한국갤럽이 지난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에게 물은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부정 평가는 전주 대비 1%P(포인트) 올라, 58%를 기록했다. 3주째 상승세다. 긍정 평가는 2%P 내린 34%로, 2주째 하락세를 보였다.

부정 평가 이유에는 '경제/민생/물가'가 22%로, 가장 많이 꼽혔다. 전주 대비 6%P 오른 수준이다. 채소, 과일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지난해 추석 이후 '경제/민생/물가' 항목은 부정 평가 이유 1위로 계속 꼽히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그동안 내세웠던 '운동권 척결' 총선 기조를 '민생'으로 돌렸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23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유일호 전 의원과 추경호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민생경제특위를 구성했다. 그러나 야당이 '875원 대파'를 기점으로 강조하고 있는 '경제 심판론'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각 대형마트에서 대파 한단 가격의 사진을 찍어 '875원 대파'를 꼬집는 동안, 국민의힘 민생경제특위에서는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거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등을 내놓았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 2년 동안보인 경제 실책에 대한 분노가 이번 '875원 대파'를 통해 분출됐다고 보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 교수는 "이번 정부의 경제 정책이라는 게 사실 감세 말고는 없다"면서 "그러니까 집권 2년이 되면서 제대로된 경제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책임이 이번 정부에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2년 차인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0.7%)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도 1%대 성장률을 보인다면 1954년 경제성장률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1%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저성장의 대표격인 일본(2.0%)의 경제성장률보다도 낮다. 한국이 일본보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것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로는 처음이다.

경제성장률 저조에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실패에 따른 수출여건 악화가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정권 초기부터 미국의 대중국 견제 외교에 적극 동참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가장 큰 수출대상국인 중국과 갈등을 빚었다. 한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1,248억달러로 전년(2022년) 대비 20% 감소해 사상 최대의 감소 폭을 기록했다.

내수는 축소되고 있다. KOSIS의 경제활동별 GDP를 보면 지난해 4분기 도소매 및 숙박음식업은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했다. 음식점 등 중소상인을 비롯한 국민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된 것이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가처분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6%로, 미국(3.4%)과 일본(2.8%)에 비해 높았다. 두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았던 것을 생각하면, 경제는 더 나빴고, 물가는 더 오른 상황이다.

정부는 세계적인 불황에 따른 영향이라는 입장이지만, 이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 정부 대응은 미비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등 재정 역할을 축소했다. 더구나 공격적인 부자감세로 세수가 부족해지면서 복지 등 써야할 분야에 돈을 쓰지 않아 재정이 제대로 역할을 못 했다.

박상인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미국을 제외하고는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인 건 맞지만, 그럼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 "정부가 경제 상황에 대한 대응 정책 없이 감세만 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김백겸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