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총선 이후 한국사회의 지향에 대한 제언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 | 기사입력 2024.03.29. 05:03:56
70년대 당대의 저명한 원로시인에게 시대의 덕담을 듣는 자리에서, 민주세력과 진보집단은 시민들이 공감할 대중적 언어를 만들어 내는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조언을 받은 기억이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군사적 물리력을 동원해 헌정중단이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세력은 자신들의 불법 행위를 포장하고자 장면 정권의 부흥부에서 수립해 놓은 경제부흥계획을 차용하면서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정치적 슬로건으로 사용하였다. 시인이 지적한 바대로, 우리에게 참으로 부족했던 탁월한 대중적 조어 능력이었다.
이후 1987년 민주화운동의 대위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내손으로 대통령을, 직선제를 쟁취하자!'’라는 대중적 구호가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정치문화를 직업적 정상배의 영역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들에게 돌려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노무현 정권이 사용한 슬로건 역시 감동을 동반한 '사람이 사는 세상'이었다. 손학규 전의원이 외친 ‘저녁이 있는 삶’도 큰 울림으로 다가 왔다.
이제 한국사회의 분수령을 이룰 총선을 앞둔 현시점에서 현안과제와 시대정신을 올곧이 담아낼 대중적 구호는 무엇일까?
젊은 세대에게 아침이 설레는 삶을!
무도하고 무자비하게 검찰과 사법의 권력을 마구 남용하여 우리사회의 '치명적 재앙'이 된 윤석열 정권은 더구나 민족의 역사와 국가주권의 이해를 포기한 종미친일의 예속적 성격까지 지니고 있다.
이에 윤의 무리를 심판하고 처벌하자는 분노의 외침이 일상에서 차고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릇된 일을 바로잡고 이를 고쳐 나가는 것은 응당한 것이고 현 시점에서 절체절명의 시대과제적 요구를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과연 무도한 한줌의 검찰 법비 세력을 심판하고 이들을 정치권에서 축출하면 대한민국에 쉬이 새날이 열리고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 과거에 대하여 간략하게 복기해 보고자 한다. 1960년 이래 4.19혁명과 부마와 광주의 항쟁을 거쳐 민주화 운동을 통해 군부 독재를 종결시켰지만, 이후 한국은 시장만능주의에 포획되어 장사꾼 이명박과 아바타 박근혜의 시대를 겪어야만 했고 촛불 혁명을 이루며 어렵게 새로움의 가능성을 열었건만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문재인 집단으로 인하여 오늘의 재앙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를 격하게 비판하며 최근 어느 미디어 언론 매체에 기고한 정범식 생명평화 민주주의 연구소 이사장의 칼럼 일부를 아래 인용해 본다.
"생명평화운동’은 보수 야당과의 연대를 통해 한국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환상과 헛된 희망고문을 멈춰 세워야 한다.
지금 한국 보수야당의 과오와 한계를 지적하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당시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여 국민적 좌절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러왔던 장본인이다. 오늘날 더욱 기승을 부리며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김대중 정부에서 도입되었다.
대북 송금 특검으로 남북의 신뢰를 흔들고, 전 국토를 개발대상으로 만들어 부동산 폭등과 불평등을 심화시킨, 그리고 남의 나라 전쟁터에 군대를 파견한 당사자는 노무현 정부였다.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합의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개헌만 빼고 다할 수 있는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 수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의 자구 하나 바꾸지 못하면서 극우 검찰독재정권을 탄생시킨 장본인은 문재인 정부다."
한마디로 구한말 이래 누적된 인적 물적 기반과 구조의 재구성 내지 혁파 없이는 설령 민주개혁을 표방하는 정권이 집권에 성공한들 상기에 언급된 '악순환의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보이는 모습은 민족의 자기결정권을 상실한 채 지난 백여 년을 유영하면서 누적해온 한국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반영이자 반민족매판의 기득세력이 깊이 뿌리내린 잔상일 뿐이다.
이들에게 분노하고 심판하여 검찰과 사법의 개혁을 이루는 일은 분명코 중요한 일이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에 좌표를 제시하고 희망을 찾아가기에는 참으로 역부족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제3 세계권에서 어렵게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업을 일구어내어 세계인들에게 모범적 발전국가로 주목을 받는 한편, 미국과 쌍벽을 이루며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 그리고 노동의 강도가 강장 극심한 사례로 거론되는 등 상위계층 중심의 과두적 사회이며 출생률이 0.7이하로 떨어지면서 인구 절벽으로 장래에 국가의 소멸이 예측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매우 극심한 양가적 대비이다.
이미 공칭 GDP 3만 불(구매력 지수로는 5만9000불)이 넘어선 지 오래이건만, 성숙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논하기는커녕, 후진국 형의 민생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정치권의 일상적 용어로 등장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아직도 기본적 조건과 토대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결핍국가임을 반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고사하고 야권의 일부에서 여전히 양적인 신성장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칭 GDP 5만 불에 세계5대 경제대국 등을 운위하고 있다.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가계 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운데 전 인구의 20%인 천만 명 가량이 천형적인 절대빈곤 속에 갇혀 있고, 젊은 세대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기한 체 ‘이번 세상엔 망했다’고 외쳐대는 상황에서 GDP 5만 불이 무슨 소용이며 허울뿐인 경제 5대 강국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이미 일단의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기후와 생태 등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인지하고 탈성장을 선언하면서 기존의 경제학과 정책분야에서 관행적 평가로 삼았던 양적 성과와 효율이라는 기준을 지속과 회복 그리고 삶의 질로 대체할 것을 강력하게 제안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추구해가야 할 방향은 GDP 성장 또는 경제강국론이 아니라, 사회현안의 해결을 정책의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출생률을 제고하여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능력중심에 따른 극심한 경쟁적 개인주의가 아니라 함께함에 기초한 공동체를 복원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을 축소시키고 생태 및 기후 환경과 개별적 삶 그리고 사회적 제 조건에서 포용 및 회복과 지속의 조건을 형성해 가는 일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굴하면서 미래의 꿈을 실현해 갈수 있는 역동적 기회가 주어지는 ‘모두에게 공정한 열린 사회’이어야 하며, 이에는 혁신을 동반하는 참여와 공유, 배분과 순환의 고리가 핵심 내용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언급한 기본사회라는 전략을 실천 가능한 정책의 수준에서 가열차게 꾸준히 추구해 가야 하며, 기본사회의 프로그램에는 기본소득, 기본금융(자산), 기본주거, 평생교육 등이 포함되어 시행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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