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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47]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막 던지는 한미 당국의 처지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4/0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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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말고’

 

최근 기사를 보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정부가 전략적 계획과 뚜렷한 목표 없이 마구잡이 식 발표를 하거나 정책을 내놓는 일들이 잦습니다. 

 

먼저 우리 정부가 러시아 기업, 개인 등을 처음으로 독자 제재한 일부터 봅시다.

 

외교부는 4월 2일 “러북 군수물자 운송에 관여한 러시아 선박 2척과 북한 해외노동자 송출을 통해 북한 핵·미사일 개발 자금 조달에 관여한 러시아 기관 2개, 개인 2명을 4월 3일 자로 대북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북한과 관련 있기에 대북 제재라고 했지만 러시아 선박, 기관, 개인을 제재한 것이니 실질적으로는 대러 제재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러 독자 제재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재란 상대방이 피해를 보고 어려움을 겪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이번 제재로 러시아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지난 2년 동안 대러 제재를 했으나 러시아는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가 독자 제재를 한다고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역으로 우리 쪽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에너지 자원을 정상적으로 수입하지 못하여 지금까지도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하루 만에 러시아가 반박 성명을 냈습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4월 3일 브리핑에서 “한국이 러시아 시민과 선박, 기관을 일방적으로 제재한 것은 비우호적인 조치”라며 “매우 유감”이라고 했습니다. 

 

▲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 러시아 외무부

 

이어 “이번 조처가 한러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러시아도 제재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러시아 외무부는 5일 이도훈 러시아 주재 한국 대사를 초치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제재를 포기하라”라고 촉구했습니다. 

 

다음으로 통일부가 4월 2일 발표한 「북한의 우리 총선 개입 시도 관련 통일부 입장」을 봅시다.

 

통일부는 “북한은 우리 선거 일정을 앞두고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의 관영 매체를 통해 대통령을 모략·폄훼하며, 국내 일각의 반정부 시위를 과장해 보도하고, 우리 사회 내 분열을 조장하는 식의 기사가 계속 실리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총선을 앞두고 강화되고 있는 북한의 불순한 시도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히 경고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통일부 당국자가 기자들과 만나 “노동신문 등을 보면 우리 총선을 ‘심판의 날’로 규정하고 반정부 여론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라며 ‘대통령 모략·폄훼’, ‘정권 심판론 날조’, ‘전쟁 위기 조장’, ‘우리 사회 내 분열 조장’, ‘독재 이미지 조작’ 시도 등을 구체적인 이유로 들었다고 합니다.

 

통일부 발표 자체가 뜬금없고 근거조차 빈약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윤석열 정부가 불리한 총선 판세를 뒤집으려고 북풍을 급조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북쪽의 비난이 우리 총선과 어떻게 연결되나”라며 “북쪽이 발끈해서 뭐라도 해주기를 바라고 밑밥을 까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으면 통일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엔 미국으로 눈을 돌려봅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2일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두 정상의 직접 소통은 4개월여 만이며 두 시간 가까이 통화했다고 합니다. 

 

백악관은 통화 후 보도자료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끈질긴 헌신(enduring commitment)을 강조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미국의 의지를 중국에 전달하고 중국도 나서주기를 바란 것 같은데 뭔가 해결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중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북한을 제어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미국도 알고 있는데 ‘고장 난 레코드’처럼 끊임없이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라

 

이런 ‘아니면 말고’ 식의 하나 마나 한 정책이나 발언들이 왜 나올까요?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거나 분석하지 못하고 주관적 욕망에만 기대어 판단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를 독자제재하려면 군사적, 경제적으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힘이 있을까요?

 

군사적으로 보면 러시아는 핵보유국이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군사강국입니다. 

 

반면 우리는 전시작전권도 없는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의 제재에도 끄떡없습니다. 

 

반면 우리는 제재를 받지도 않는데 상당한 경제적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우리가 러시아를 제재할 상황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우리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역학관계를 냉철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부의 북한 총선 개입 발표는 정말 한심하기에 그지없습니다.

 

통일부에서 그렇게 발표하면 국민들이 믿어줄까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국민들은 이것이 북풍 조작인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여당에 총선이 어려운 것은 북한 때문이 아닙니다. 

 

그냥 윤석열 대통령과 국힘당이 잘못해서입니다. 

 

이것이 객관적 현실입니다.

 

문제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니 이상한 해법과 꼼수가 나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국힘당은 북한이 아니라 국민에게 응징당할 것입니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북한을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중국이 설득한다고 해서 되고 안 되고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미국이 제시한 금지선(레드라인)을 모두 넘어서 실질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가진 전략국가가 되었습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것이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북한 비핵화가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중국을 움직인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단지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미국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주관적인 욕망, 바람일 뿐입니다.

 

관심은커녕 조롱만

 

예전에는 이런 뉴스들 하나하나가 주요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호응과 지지, 울림이 없습니다. 

 

그냥 나왔다가 흘러가는 그저 그런 뉴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차피 발표한 내용에 실현 가능성이 없고 효과에 대한 기대도 없기 때문입니다.

 

언론에는 한국의 대러 독자 제재 발표보다 러시아의 맞대응 경고가 더 비중 있게 실립니다. 

 

한국의 대러 제재가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은 없고 한러관계만 악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집니다. 

 

대러 제재에 동참한 한국이 경제적 피해를 보는 사례도 이미 나왔습니다. 

 

지난해 12월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을 러시아 업체에 단돈 14만 원에 매각했습니다. 

 

2년 내 공장을 되살 수 있는 조건을 달았지만 한러관계가 2년 이내에 개선되지 않으면 공장 하나를 그냥 날리게 됩니다. 

 

공장을 인수한 러시아 업체는 올해 1월 9일 공장 재가동을 시작했습니다. 

 

통일부 발표 역시 호응은 찾아볼 수 없고 비판과 조롱만 나오고 있습니다.

 

보수언론 기자들조차 황당한지 통일부 당국자에게 조목조목 따져 물을 정도입니다. 

 

북한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일반 국민들이 볼 수 없는데 이런 매체를 통해 북한이 우리 총선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기자들이 지적하자 통일부 당국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노동신문 보도 내용을 접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군색한 변명을 하였습니다. 

 

또 북한은 총선과 무관하게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정권 비판을 꾸준히 해왔는데 이를 총선 개입으로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기자들이 최근 북한의 윤석열 정권 비판 보도가 더 심해졌냐고 묻자 통일부 당국자는 “심하다, 약하다 차원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국민들도 ‘또 북풍 공작이냐’라며 통일부를 조롱합니다. 

 

심지어 3월 말 이른바 ‘종북 현수막’을 게시하려다 취소한 국힘당의 총선 방향과도 맞지 않아 정부와 여당이 엇박자를 내는 모양이 한심한 수준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언급 역시 별다른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중국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새로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 매우 궁색해 보입니다. 

 

마치 기둥이 무너지고 잡초가 무성한 폐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나오는 대책들도 시원하지 않고 새로운 것도 없습니다. 

 

최근 존 볼턴 백악관 전 안보보좌관의 발언이 미국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볼턴 전 보좌관은 4월 3일 조선일보와 대담에서 “그간의 협상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는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군축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북한의 군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또한 자명하다.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비핵화 시도는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세습 공산 독재 체제가 매우 불안정한 기반에 놓여 있다는 점도 비핵화 과정에 염두에 두어야 하는 변수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핵개발 저지는 실패하였고 앞으로 시간도 없는데 별다른 대책 역시 없다는 것을 인정한 발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고 협상하는 것도 싫은 겁니다. 

 

남은 대책은 북한 스스로 무너지는 것밖에는 없다는 것인데 그거야 열 번, 백번도 넘게 미국에서 나온 말 아닙니까? 

 

미국의 처지가 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총선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뭘 해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외교부, 통일부가 국힘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뭐라도 해보겠다고 하는 것 같은데 헛발질하고 있는 걸 보십시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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