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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쿠팡 택배노동자가 ‘개 같이’ 뛰었던 이유...“쿠팡이 직접 추가노동 지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7/04 09:31
  • 수정일
    2024/07/04 09: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쿠팡 대리점, 택배노동자 유족에 “저라면 산재 안 해” 회유도

쿠팡 본사 자료사진 ⓒ뉴시스


쿠팡의 새벽 로켓배송을 하다 사망한 택배노동자가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쿠팡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쿠팡 측은 "표준계약서에 따라 관리해 줄 것을 배송업체(대리점)에 요구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택배노동자에게 직접 추가노동을 지시한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나왔다.

또 사망한 택배노동자가 산업재해 인정 기준을 초과한 장시간 노동을 했음에도 쿠팡 택배대리점 측이 "나라면 산재 신청을 안 할 것"이라며 회유한 사실도 드러났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3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쿠팡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한 쿠팡의 책임을 물었다.

대책위에 따르면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쿠팡CLS) 남양주2캠프에서 새벽 로켓배송을 하던 택배노동자 정 모 씨(41)가 지난 5월 28일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했다. 병원에서 밝힌 사망원인은 '심실세동'과 '심근경색의증' 등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과로사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정 씨는 평소 오후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 6일을 근무했다고 대책위는 설명했다. 주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으로, 업무상 질병 판정기준에 따라 야간노동시간(오후 10시~오전 6시) 30% 할증을 적용하면, 주 평균 노동시간은 77시간 24분으로 늘어난다. 심야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2급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특히 대책위는 "정 씨가 쿠팡CLS로부터 본인의 일을 빨리 끝내고 타 구역의 배송까지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아 추가 노동까지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 씨의 사망에 대해 쿠팡CLS는 "택배기사의 업무가 과도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주당 작업 일수와 작업 시간에 따라 관리하여 줄 것을 계약 내용을 통해 전문배송업체(대리점)에 요구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씨 등 쿠팡 택배노동자의 노동환경은 택배대리점이 책임져야 할 사항이라는 주장이다. 그동안 쿠팡CLS는 로켓배송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에 대해 '택배대리점에 소속된 개인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라며 책임을 회피해 왔다.

그러나 쿠팡CLS가 밝힌 것과 달리 정 씨는 일상적으로 쿠팡CLS로부터 직접 업무지시를 받아왔다고 대책위는 반박했다. 대책위는 "쿠팡CLS는 캠프별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계정을 운영해 왔다"면서 "원청인 쿠팡CLS 캠프 직원들이 직접 하청 노동자인 로켓배송 택배노동자들과 1:1 대화를 통해 업무를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계정은 사람이나 단체의 공식계정으로, 관련 없는 사람이 만들거나, 대화 상대방이 이름을 다르게 설정할 수 없다.

대책위가 공개한 정 씨의 카카오톡을 보면 정 씨는 '쿠팡플렉스_남양주_CLS'라는 계정과의 1대1 대화방에서 일상적으로 업무를 보고하고, 업무지시를 받고 있었다. 정 씨는 카카오톡을 통해 매일 쿠팡CLS에 입차시간, 배송완료시간, 배송물량 등을 보고했다.

또 배송물품 파손·분실을 비롯해 건물 출입구가 잠겨 배송이 불가하거나, 배송주소가 명확하게 표기돼 있지 않는 등 특수한 상황에서도 정 씨는 쿠팡CLS에 보고했고, 쿠팡CLS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상황이 대화에 담겨있다. 또한 주요 공지사항도 쿠팡CLS가 직접 카카오톡 1대1 대화방을 통해 알려줬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할 경우 '불법파견'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대책위는 쿠팡CLS가 카카오톡을 통해 정 씨에게 추가노동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쿠팡CLS 관리자는 정 씨에게 "(오전)6시 전에는 끝나겠느냐. 00(동료 기사)가 어마어마하게 남았다"며 재촉했다. 정 씨가 맡은 배송을 끝내고, 배송이 밀린 동료 택배노동자를 도우라는 지시다. 이에 정 씨는 "개처럼 뛰고 있긴 하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가 공개한 정 씨와 쿠팡CLS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전국택배노동조합


대책위는 "쿠팡은 배송업무에 있어 고인에게 거의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직접 지시하고 통제했고, 반대로 고인인 거의 모든 것을 쿠팡에 구체적으로 직접 보고했다"면서 "처참한 로켓배송으로 쓰러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쿠팡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쿠팡CLS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채널의 운영을 중단하는 등 직접 지시에 대한 증거 인멸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대책위는 쿠팡CLS가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주당 작업 일수와 작업 시간'을 대리점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새벽배송을 하는 쿠팡의 경우 당연히 야간에 대한 기준을 별도로 정해 관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택배기사 과로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된 표준계약서에는 '일 12시간, 주60시간', '4주간 주 평균 64시간'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간 노동에 대한 기준이므로 야간 노동을 하는 쿠팡 로켓배송 택배노동자들에게는 그에 맞는 기준으로 관리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대책위는 "산재 과로사 판정기준에 따르면 야간노동은 근무시간 계산시 30% 할증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대략 '일 9시간, 주 46시간', '4주간 주 평균 49시간'으로 변경돼야 한다"면서 "쿠팡은 새벽배송 노동자들에게 이 기준을 적용해 업무시간을 관리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쿠팡CLS는 고인의 노동시간이 매일 10시간,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을 넘음에도 이를 관리하거나, 대리점에 관리를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추가 노동을 지시했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정 씨의 과로사는 개인적이거나 일시적인 사유로 인한 것이 아니며, 쿠팡의 장시간 노동 제도와 이를 강제하는 상시 해고제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즉시 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정부는 쿠팡을 즉시 사회적합의에 포괄시키고, 생활물류법과 표준계약서를 위반하는 쿠팡의 계약서를 정상적 계약서로 변경토록 관리해야 한다"면서 "클렌징, 입차제한 등 사실상 상시 해고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쿠팡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쿠팡CLS와 계약한 택배대리점과 유가족 간 대화 녹취록 ⓒ정혜경 의원실

산재 기준 초과한 장시간 노동에도 "나라면 산재 안 한다" 회유하기도


정 씨가 산재에 해당하는 장시간 노동을 했음에도 쿠팡CLS와 계약한 택배대리점 측이 유족에게 산재 신청을 회유하는 정황도 드러났다.

3일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공개한 정 씨 유족과 정 씨가 소속됐던 쿠팡CLS 남양주2캠프 굿로지스대리점 점주 사이의 녹취록을 보면, 대리점주는 지난달 3일 유족을 만나 "제가 유가족이면 산재 (신청) 안 한다"며 "산재는 일단 기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확실히 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조금 안 좋다는 내용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쓰고 있는 노무사, 다른 노무사, 대외협력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다"고도 덧붙였다.

또 "(산재 신청을 하면) 각 언론에서 유가족을 엄청 괴롭힌다고 한다"며 산재 신청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라 지난 2023년 7월부터 택배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무재공자'로 규정해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리점이 나서 산재 신청을 그만둘 것을 회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리점의 이 같은 대응은 쿠팡CLS와 대리점 간의 계약내용이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쿠팡CLS는 대리점과의 계약에서 "'택배기사 과로방지 사회적합의' 이행을 위한 쿠팡CLS의 요청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위 사항의 위반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와 민·형사상의 손해는 영업점의 책임과 비용으로 해결하고 쿠팡CLS를 면책시켜야 한다"며 책임을 대리점에게 떠넘기고 있다.

한편, 쿠팡 택배 대리점에 소속된 택배 노동자 2만여명이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은 쿠팡과 계약을 맺은 택배 영업점 528개소와 물류센터 위탁업체 11개소를 대상으로 산재·고용보험 미가입 여부를 전수조사한 결과, 2만868명이 산재보험, 2만80명은 고용보험 등 총 4만948명이 산재·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3일 밝혔다.

공단은 이들에 대해 보험 가입을 처리했으며, 누락보험료로 산재보험 20억2,200만원, 고용보험 27억1,500만원 등 총 47억3,700만원을 부과했다. 산재보험에 1억4,500만원, 고용보험에 1억5,100만원 등 과태료 2억9,600만원도 부과 의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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