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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북중 이상 징후가 기회? 미·일만 바라보는 외교부터 바꿔라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 (28) 5년 넘게 북중 정상회담이 안 열리는 이유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4.09.05. 04:59:11

올해로 집권 13년에 접어든 조선(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재까지 가장 많이 만난 외국 지도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다. 두 정상은 2018년 네 차례에 걸친 김정은의 방중과 2019년 6월 시진핑의 방북을 통해 모두 다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를 통해 북중관계가 혈맹의 복원을 넘어 "하나의 사령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밀착 조짐을 보였었다.

그런데 2019년 6월을 끝으로 북중 정상회담은 5년이 넘도록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이한 올해에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아직까진 감감무소식이다.

이는 2023년 9월과 2024년 6월에 북러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려 북러관계가 결속되고 있는 것과 대비되면서 다양한 추측을 수반하고 있다. 북러 밀착에 불편함을 느낀 중국이 조선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큰 틀에서 북중관계의 동학을 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관계 동학의 가장 큰 변화는 조선에서 비롯됐다. 조선이 '가난하고 고립된 핵개발국'에서 '가난과 고립에서 탈피하는 핵보유국'이 되면서 중국이 조선을 상대하기가 과거보단 버거워진 것이다.

북핵 문제는 그 중심에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전쟁 방지 및 안정 유지와 더불어 중국의 오랜 한반도 정책이었다. 그런데 조선은 미국에 시한으로 제시한 2019년이 지나면서 핵무력을 "국체"로 삼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으로, 외교는 중국·러시아 중심으로 삼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특히 2022년 9월에는 핵무력법을 제정해 비핵화에 종언을 고하고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을 선언하면서 핵 고도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이렇게 '달라진 조선'은 중국에게 기회(전략적 자산)이자 도전(전략적 부채)으로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을 견제·봉쇄하는 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내심으론 유일한 동맹국인 조선의 핵무장이 지정학적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국이 조선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대해 연합훈련을 비롯한 한미동맹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대북 규탄이나 제재에 거리를 두어온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전략적 부채의 측면도 있다. 중국이 핵비핵확산과 안보리 결의 준수를 중시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만큼, 조선의 핵무장에 눈을 감아줄수록 국제사회에선 '중국 책임론'이 강해진다. 또 "북한 위협 대응"을 이유로 사실상의 군사동맹으로 치닫고 있는 한미일 안보협력도 중국으로선 큰 부담이다.

이렇듯 중국으로선 좌고우면해야 할 상황인데, 조선은 거침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갖고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표현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조선이 자체적으로 핵우산을 갖고 있다"는 푸틴의 발언이나 양국이 냉전 시대 동맹 복원을 넘어 전략적 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격상시킨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아마도 조선은 직언이든 묵언이든 중국에게도 마찬가지 요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김정은을 핵보유국 지도자로 대우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러한 '전략적 냉기'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흐르면서 북중 정상회담이 5년이 넘도록 열리지 않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럼 시간은 누구 편일까? 중국과 마찬가지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화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조선과의 관계를 대폭 강화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지정학적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동맹국들을 규합해 대중 견제와 봉쇄가 강해질수록 중국 내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북중관계의 이상 징후를 기회로 보면서도 한미일 동맹 구축에 '다 걸기'를 하면서 중국의 전략적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이를 중국의 대북정책을 변화시킬 압박 수단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지만, 정작 미국과 일본은 조선보다는 중국을 의식해 한미일 동맹을 추구하고 있다. 대만 문제는 그 핵심에 있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도 조선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정세의 판도는 크게 흔들릴 것이다. 윤 정부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동맹을 향한 폭주를 멈추고 사라진 외교부터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 발언권이 강해질 수 있다.

▲ 지난 2018년 5월 7~8일 이틀 일정으로 중국을 찾은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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