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7월 26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검에서 열린 '계엄령 문건 의혹 합동수사단' 현판식에서 참석자들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군·검 합동수사단'이 꾸려졌다. 합수단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던 노만석 검사를 위시한 특수부 검사들과 군검사들로 꾸려졌다. 이들은 8월경, 국방부 청사 컴퓨터 압수수색 과정에서 괴상한 문건 하나를 손에 넣게 된다.
컴퓨터의 주인은 박근혜 정부 말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군법무관 A 중령이었다. 정권이 바뀐 뒤 다시 국방부에 복귀해 복무 중이었다. 그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문건은 2016년 10월에 작성된 보고서였다. 그때는 아직 박근혜 탄핵 촛불이 본격화되기 전이었고, '최순실 태블릿PC'도 발견되지 않았을 때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20%대로 급락한 상태였다.
A 중령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북한 급변 사태' 발생을 명분으로 남한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법리 검토가 담겨있었다. A 중령은 북한 급변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곧바로 남한의 행정, 사법 기능이 마비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요건 상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일은 어렵다고 보면서도,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되기 때문에 북한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을 빌미로 대통령이 한반도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계엄 선포 요건을 우회할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를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보고서에는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때에 저지할 방안'과 '계엄사령관을 법규가 정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으로 지정하는 방안', '국무회의를 평소와 달리 수시로 개최하여 수시 보고를 받는 방안' 등 구체적 상황별 대응 계획도 기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4개월 뒤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작성한 '계엄 문건'에도 동일하게 담기게 된다.
합수단 수사 결과 A 중령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고 보고 받은 사람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국가안보실이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법을 우회해 대한민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체포해 계엄 해제를 차단하고,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해괴한 법리 검토를 시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계엄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할 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대로 계엄을 선포하고, 평소 합참이 준비해 둔 대로 후속 절차를 밟는 것뿐이지, 국회의원들을 잡아 가둘 모략을 꾸미는 것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청와대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지휘하에 이미 탄핵 정국이 시작되기도 전인 2016년 10월,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 중인 상황에서 계엄 선포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구체적인 검토에 착수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김 전 실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특별 사면으로 복권된 뒤 국방 정책 컨트롤 타워인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대통령이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
2024년 다시 계엄령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통령실이 여소야대와 저조한 정권 지지율을 타개하기 위해 계엄령을 검토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통령실과 여당인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했다.
지난 1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야당의 계엄령 주장은 비상식적인 거짓 정치공세"라고 비난했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국민의힘 임종득 의원은 "황당무계한 정치 선동이자 극단적 망상"이라 했고, 이에 대해 김선호 국방부 차관은 "지금 계엄을 논하는 것은 망상이며 고도의 정치적 선동"이라고 맞장구쳤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2016년 11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추미애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돌고 있다"고 발언했다. 청와대는 즉시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이라 비난하며 혼란을 부추기는 발언을 자제해달라고 브리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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