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신동훈 제주 평화쉼터 대표를 향한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검찰의 거대한 '간첩 조작'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고 끝난 게 아니다. 국가기관의 집착에 가까운 항소와 무리한 수사로 평범한 시민활동가의 삶은 처참하게 망가졌고 아직도 회복이 되지 않았다.
신동훈 대표는 수사 단계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고, 재판 과정에서는 국정원이 들이민 조작된 증거들을 논리적으로 격파하며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국정원의 수사는 위법하고 무리한 것이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이 승리의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사법 정의를 조롱하는 검찰의 무책임한 태도와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의 존재다.
1심 완패에도 '복사 붙여넣기'… 피고인을 말려 죽이는 '묻지마 항소'
1심 법원은 신동훈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의 요지는 명확하고 단호했다. 국정원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간첩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캄보디아 현지 불법 사찰, 서로 시선도 맞지 않는 황당한 영상 증거, 수사관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간 조서 조작 시도, 오락가락하는 '전문 증언꾼'의 진술 등 검찰이 내세운 칼날은 법정의 엄격한 증거주의 앞에서 모두 무디기만 했다. 상식적인 법조인이라면, 그리고 최소한의 인권을 생각하는 국가기관이라면 여기서 멈췄어야 한다. 잘못된 기소를 인정하고 피고인에게 사과하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다.
하지만 검찰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다. 문제는 항소의 근거다. 형사소송법상 항소는 1심 판결에 사실 오인이나 법리 오해가 있을 때 제기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항소하기 위해서는 1심 판결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논리적인 반박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단 하나의 새로운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1심에서 이미 탄핵당한 논리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복사해서 붙여넣기' 수준으로 반복했다.
심지어 검찰은 항소 이유서에서 '피고인이 캄보디아에서 공작원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피고인 스스로 증명하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것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악마의 증명(Probatio diabolica)' 요구와 다름없다. 이는 법리적 다툼이라기보다, 무죄 판결로 인한 조직의 타격을 최소화하고 피고인을 끝까지 괴롭히겠다는 '오기'이자 '사법 폭력'에 가깝다.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의 판단 역시 1심과 다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대법원 역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 사법부는 일관되게 혐의를 입증할 '증거 없음'을 알렸지만, 검찰은 귀를 막고 무조건 항소 진행만을 고집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검찰의 무책임한 '아집'이었다. 과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 다수의 공안 사건에서 보았듯, 검찰은 무죄가 명백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조직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기계적으로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는 악습을 반복했다. 이른바 '침대 축구'식 소송 지연이다. 그들에게는 자존심 싸움일지 모르나, 피고인에게는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고통의 시간이다. 신 대표는 "증거가 없다는 판사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정황상 간첩이 맞다'는 식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고 회고했다. 이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한 명백한 국가폭력이자 한 시민의 삶을 볼모로 잡은 사법 농단이었다.
조작 수사 주도한 검사는 로펌으로… 책임지지 않는 권력
더욱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이 무리한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책임자의 행보다. 수사 검사이자 공판 검사였던 한은지 검사는 1심 무죄 판결 이후,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기 전에 슬그머니 검사복을 벗었다. 그리고 곧장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지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신 대표에게 "입을 열면 구속을 취소시켜 주겠다"고 지속적으로 회유했다. 신 대표가 이에 반발해 묵비권을 행사하며 저항하자 구치소에 '자해 우려가 있으니 특별 관리하라'는 공문을 보내 압박했던 당사자다. 헌법이 보장한 피의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인신 구속을 무기로 자백을 강요했던 검사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사과나 반성도 없이 '전관예우'를 받으며 변호사로 변신한 셈이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그의 현재 전문 분야다.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아넣으려 했던 그는 현재 '중대 재해 및 산업안전' 전문 변호사를 자처하고 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분야에서, 조작 수사의 주역이 기업을 변호하며 정의를 논한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이런 수준의 '과거 세탁'은 단순히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 문제를 넘어선다. 공안 수사의 실패를 책임지지 않는 검찰 조직의 도덕적 해이와 전관 변호사를 모셔가는 법조계의 거대한 카르텔이 만들어낸 볼썽사나운 단면이다.
간첩 조작에 실패해도 검사는 거대 로펌으로 영전하여 부와 명예를 누리고, 피해자는 평생을 트라우마와 싸워야 하는 현실. 그 피해에 대해 국가는 쥐꼬리만한 형사보상금으로 입을 막으려 하는 행태.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 사법 정의의 현주소다.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시스템 속에서라면 '제2의 신동훈'은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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