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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재학생·졸업생들이 지난 4일 서울 코엑스에서 학교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에서 현장실습 중인 고3 재학생들도 이날 찾아와 학교 소개를 하고 근황을 공유했다. 김송이 기자
12월, 고3 교실은 적막하다.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은 입시를 마무리하며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직업계고 3학년 교실은 다르다. 학생들은 출근 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추고 일터로 향하며, 교사들은 학생들이 있는 현장실습지를 찾아 기업을 순회한다. 이들에게 12월은 ‘연말’이 아니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가장 바쁜 시기다.
지난 10일 서울의 한 스타트업 휴게 공간. 정희철 부산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이하 부산 소마고) 교사는 현장실습 중인 A군과 마주 앉았다.
“갈수록 얼굴이 상해가고 있다던데?” 교사의 물음에 A군은 “힘들어서 그렇죠”라고 답했다. 휴게 공간을 지나던 회사 대표는 A군을 ‘피터’라고 부르며 “우리 피터, 잘 적응하고 있고 일도 제 몫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대표의 말을 듣던 정 교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했다. “배우는 속도가 느릴 수는 있어도 욕심이 많아서 잘할 겁니다.”
정 교사는 이날 서울 구로구에서 강남구, 광진구를 차례로 돌며 실습 중인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게 고역” “퇴근하고 수행평가하고 자격증 공부까지 하려니 너무 피곤하다”는 말을 풀어놨다. 서울과 강원 원주, 경기 용인을 오가는 정 교사의 기업 순회는 거의 매주 2박3일 일정으로 이뤄진다. 막 사회에 발을 들인 학생들이 일터에 적응할 때까지는 교실 밖에서도 교사의 손이 필요하다.
경향신문은 11~12월 사이 부산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천안상업고, 서울의 한 특성화고 등 3개 학교에서 학생들의 현장실습 지도에 동행하며 이들의 연말을 지켜봤다.
‘학생-노동자’ ‘교사-영업사원’ 중간 어디쯤
부산 소마고 3학년 최성욱군(18)은 자신을 “직장인과 학생의 경계에서 막 벗어나기 직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올여름 현장실습을 나갔던 방산업체에서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다. 최군은 “일해 보니 학교 다닐 때가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이제는 정규직”이라며 웃었다.
‘학생이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은 직업계고 학생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이달 초 교사들이 실습 현장을 찾았을 때다. 회사 대표 중에 “고집이 세고 흡수가 느리다” “다음에는 더 똑똑한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다. 교사들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요구에도 “조금 더 신경 쓰겠다”고 답한다. 정 교사는 “저희는 영업사원 같은 위치”라며 “학생들도 잘 추스러야 하고, 회사에도 밉보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지각하지 않기, 인사하기 같은 기본을 학생들에게 반복해서 강조한다. 태도 문제로 상사의 눈 밖에 나는 것만큼은 막아보자는 생각에서다. 정 교사는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기 힘들다는 학생들에게 “단톡방에 출근 신고를 하게 할까?”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한다. 부산의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실습한 전소울군(18)은 “선생님이 항상 회사에서 인사 잘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꼭 지키라고 했다”며 “우리는 회사에서 가장 약한 위치라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습 중인 학생들은 원칙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전군은 실습을 나간 친구 10명 중 7명은 “야근 경험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습생은 원칙적으로 야근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실습생 신분으로 항의하기도, 상사가 퇴근하지 않았는데 먼저 자리를 뜨기도 쉽지 않다.
교육 당국은 학생들에게 매일 현장실습 일지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부당한 처우나 감정적 고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직업계고 포털 ‘하이파이브’는 인공지능(AI)으로 실습일지를 모니터링한다. ‘힘들다’ ‘피곤하다’ 같은 부정적 표현이 일정 수준 이상 나오면 학교로 안내문을 보낸다.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현장실습 일지 감정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작성된 일지 61만3089건 중 2.21%에 부정 표현이 담겼다.
다만 직업계고 교사들은 이 AI 분석을 참고는 하되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성교육을 받았다”는 내용을 ‘성폭력’으로 인식하는 등 맥락을 오인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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