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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난 겨울, 누군가는 출근을 시작했다···직업계고 ‘3학년 2학기’ 학생들의 취업 분투기



수정 2025.12.30 07:01

  • 김송이 기자

  • 김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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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재학생·졸업생들이 지난 4일 서울 코엑스에서 학교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에서 현장실습 중인 고3 재학생들도 이날 찾아와 학교 소개를 하고 근황을 공유했다. 김송이 기자

 

12월, 고3 교실은 적막하다.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은 입시를 마무리하며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직업계고 3학년 교실은 다르다. 학생들은 출근 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추고 일터로 향하며, 교사들은 학생들이 있는 현장실습지를 찾아 기업을 순회한다. 이들에게 12월은 ‘연말’이 아니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가장 바쁜 시기다.

지난 10일 서울의 한 스타트업 휴게 공간. 정희철 부산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이하 부산 소마고) 교사는 현장실습 중인 A군과 마주 앉았다.

 

“갈수록 얼굴이 상해가고 있다던데?” 교사의 물음에 A군은 “힘들어서 그렇죠”라고 답했다. 휴게 공간을 지나던 회사 대표는 A군을 ‘피터’라고 부르며 “우리 피터, 잘 적응하고 있고 일도 제 몫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대표의 말을 듣던 정 교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했다. “배우는 속도가 느릴 수는 있어도 욕심이 많아서 잘할 겁니다.”

 

정 교사는 이날 서울 구로구에서 강남구, 광진구를 차례로 돌며 실습 중인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게 고역” “퇴근하고 수행평가하고 자격증 공부까지 하려니 너무 피곤하다”는 말을 풀어놨다. 서울과 강원 원주, 경기 용인을 오가는 정 교사의 기업 순회는 거의 매주 2박3일 일정으로 이뤄진다. 막 사회에 발을 들인 학생들이 일터에 적응할 때까지는 교실 밖에서도 교사의 손이 필요하다.

 

경향신문은 11~12월 사이 부산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천안상업고, 서울의 한 특성화고 등 3개 학교에서 학생들의 현장실습 지도에 동행하며 이들의 연말을 지켜봤다.

 

‘학생-노동자’ ‘교사-영업사원’ 중간 어디쯤

 

부산 소마고 3학년 최성욱군(18)은 자신을 “직장인과 학생의 경계에서 막 벗어나기 직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올여름 현장실습을 나갔던 방산업체에서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다. 최군은 “일해 보니 학교 다닐 때가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이제는 정규직”이라며 웃었다.

 

‘학생이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은 직업계고 학생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이달 초 교사들이 실습 현장을 찾았을 때다. 회사 대표 중에 “고집이 세고 흡수가 느리다” “다음에는 더 똑똑한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다. 교사들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요구에도 “조금 더 신경 쓰겠다”고 답한다. 정 교사는 “저희는 영업사원 같은 위치”라며 “학생들도 잘 추스러야 하고, 회사에도 밉보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지각하지 않기, 인사하기 같은 기본을 학생들에게 반복해서 강조한다. 태도 문제로 상사의 눈 밖에 나는 것만큼은 막아보자는 생각에서다. 정 교사는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기 힘들다는 학생들에게 “단톡방에 출근 신고를 하게 할까?”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한다. 부산의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실습한 전소울군(18)은 “선생님이 항상 회사에서 인사 잘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꼭 지키라고 했다”며 “우리는 회사에서 가장 약한 위치라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습 중인 학생들은 원칙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전군은 실습을 나간 친구 10명 중 7명은 “야근 경험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습생은 원칙적으로 야근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실습생 신분으로 항의하기도, 상사가 퇴근하지 않았는데 먼저 자리를 뜨기도 쉽지 않다.

 

교육 당국은 학생들에게 매일 현장실습 일지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부당한 처우나 감정적 고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직업계고 포털 ‘하이파이브’는 인공지능(AI)으로 실습일지를 모니터링한다. ‘힘들다’ ‘피곤하다’ 같은 부정적 표현이 일정 수준 이상 나오면 학교로 안내문을 보낸다.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현장실습 일지 감정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작성된 일지 61만3089건 중 2.21%에 부정 표현이 담겼다.

 

다만 직업계고 교사들은 이 AI 분석을 참고는 하되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성교육을 받았다”는 내용을 ‘성폭력’으로 인식하는 등 맥락을 오인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 위해 ‘3년 배운 전공’ 포기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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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권기승 직업계고 교사가 입학 상담을 위해 학교를 찾아온 중학교 3학년 학생에게 자동차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취업 대상 지역과 경기 상황은 직업계고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충남 천안처럼 기업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도 올해 채용 공고는 예년보다 3분의 2가량으로 줄었다. 박광래 천안상고 교장은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나간 현장실습을 포기하고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이현수군(18·가명)은 “선생님들은 정 힘들면 돌아오라고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언제 다시 취업할 수 있을지 몰라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듬해 1월 전까지 취업을 시도한다. 졸업 이후에는 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취업 실패가 반복되며 상처를 받은 일부 학생은 ‘위클래스’ 상담을 받기도 한다.

 

정홍주 천안상고 진로부장은 “최근에 회사들이 ‘통통 튀는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외향적인 학생을 보내 달라고 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내향적인 학생들의 장점도 많은데”라고 덧붙였다.

 

취업이 최우선 목표가 되면서 전공과 무관한 기업을 택하게 되는 학생들도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특성화고 자동차과 권기승 교사는 물류 자동화 스타트업을 찾았다. 실습 중인 김도신군(18·가명)은 자동차 정비 실습 프로그램에서 탈락한 뒤 이 회사를 선택했다. 제어 업무를 회사에서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권 교사는 “지금 선택한 길을 계속 가려면 회사에 꼭 필요한 엔지니어가 될 수 있도록 특별한 기술을 빨리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실 절반’은 취업 대신 대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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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3학년 학생들이 실습실에서 작업 중이다. 이 학생들은 졸업 직후 취업 대신 대학 진학 등 다른 경로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지역과 학교 유형에 따라 졸업 이후 풍경은 달라진다. 마이스터고 졸업자의 36.4%는 1000명 이상 사업장에 취업했지만, 특성화고 졸업자의 62.3%는 300명 미만 사업장에 들어갔다. 서울의 한 마이스터고 교사는 “하이닉스나 삼성 계열사, 공기업에 가는 아이들도 많다”며 “마이스터고는 취업 걱정이 특성화고에 비해 크진 않다”고 했다.

반면 수도권 밖 직업계고 학생들의 최우선 선택지는 인근 대도시·수도권 취업이나 진학이다. 부산 소마고 3학년 60명 중 절반가량은 서울에서 취업해 실습을 받고 있다. 부산·경남 지역 IT 기업의 초봉이 2800만원 수준인 반면, 서울은 3000만~3600만원 선이다. 학생들은 월세 60만원이 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서울을 택한다. 향후 이직을 고려해 포트폴리오를 쌓기에도 서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보이지 않을 때 진학을 선택한다. 직업계고 진학률은 제주가 64.1%로 가장 높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통계조사 확대 방안 탐색’ 보고서에서 “제주처럼 서비스·관광 중심 지역은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고등교육을 통한 진로 모색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25년 2월 기준 직업계고 졸업자 5만9661명 중 절반(49.2%)인 2만9373명이 진학했다. 마이스터고보다 특성화고에서, 공립보다 사립학교에서 진학률이 높았다.

 

당장의 취업보다 더 넓은 선택지를 기대하며 대학 진학을 택하는 학생들도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특성화고 실습실에서는 졸업을 앞둔 박주현양(18)과 3학년 학생 8명이 모여 자습을 하고 있었다.

 

취업 대신 진학을 택한 박양은 “수능 합격자 현수막을 보면 우리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 같다”면서도 “그래도 대학에 가면 더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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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진 기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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