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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의 2025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oht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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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들레 광장

  • 입력 2025.12.31 17:00

  • 수정 2026.01.0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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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희망을 말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내란 불씨 제거가 ‘희망 2026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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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지긋지긋했던 2025년 을사년이 저물고, 2026년 병오년이 시작됩니다.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릴 때 쓰는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이 일제의 조선 침탈 출발점이 된 1905년 을사년에 이루어진 을사늑약과 연관 지어 해석되기도 하는 만큼, 을사년을 보내는 마음은 가뿐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봄은 왔지만 봄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심정에 가깝습니다. 내란의 우두머리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내란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란은 단순히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라는 단일 사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권력 구조와 이를 비호·묵인했던 정치·사법·언론의 관행, 그리고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잔존 영향력까지 포함합니다. 이런 점에서 내란은 하나의 사건을 넘어, 2025년 한국 사회를 관통한 구조적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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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5일 밤새 눈을 맞으면서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시민들 모습. 2025. 01. 05 [출처. 강경희님 페이스북]

‘다사다난’이 아니라 내란 한 사건이 지배했던 ‘일사일난’의 해

 

한 해를 정리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 다사다난(多事多難)입니다. 누구나 한 해를 되돌아보면 희로애락을 안겨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5년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 해는 다사다난한 해가 아니라, 일사일난(一事一難)의 해였습니다.

 

전 대통령 윤석열을 수괴로 하는 내란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2025년 한 해를 온통 지배했습니다. 올해 벌어진 대부분의 주요 정치·사회적 사건은 내란이 만들어낸 긴장과 틀 짓기 속에서 해석되고 전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구나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내란 잔당이 아직도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채 고개를 들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의 2025년’이 끝났다고 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달력을 넘길 수는 없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근현대사 4부작 중 20세기를 다룬 『극단의 시대』에서 20세기를 ‘단기 20세기’라고 규정했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시작되어 1991년 소련 붕괴로 끝났으니, 20세기는 100년이 아니라 77년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1914년을 기점으로 삼은 것은 전쟁을 통해 19세기적 자유주의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며, 1991년을 종점으로 본 것은 볼셰비키 혁명으로 시작된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극단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시작된 대한민국의 '장기 2025년’

 

한 시대를 규정하는 기준이 연도가 아니라 그 시대를 지배한 결정적 사건이라면, 대한민국의 2025년 역시 달력상의 시작과 끝으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는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단절시켰습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로, 내란이 지배했던 2025년은 실질적으로 이 시점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끝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야구 격언처럼, 내란이 완전히 진압되어야 비로소 2025년도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홉스봄의 시대 구분 방식을 빌리면, 대한민국의 2025년은 2024년 12월 3일에 시작되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프랑스혁명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를 ‘장기 19세기’라 불렀듯이, 지금의 우리는 ‘장기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내란의 불씨 제거가 ‘희망의 2026년’으로 가는 길

 

내란의 2025년이 끝났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기준은 내란 수괴에 대한 첫 형사 판단이 내려지는 시점일 것입니다. 필요조건은 내란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와 관행의 개혁이며, 충분조건은 내란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사회적 인식이 힘을 잃는 것입니다. 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될 때 우리는 비로소 대한민국의 2025년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란의 2025년이 끝을 알 수 없는 ‘장기 2025년’으로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란 극복 외에도 기후 위기, 안보 불안, 생활고라는 복합 위기가 한국 사회를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임박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합 위기에 서둘러 대응해야 한답시고 내란의 불씨를 대충 덮고 넘어가는 건 최악의 선택입니다. ‘천천히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을 지침 삼아, 정치·검찰·법원·언론·군 등 사회 각 영역에 남아 있는 내란의 잔불을 차분하고 확실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란의 2025년’을 끝내고 ‘희망의 2026년’을 맞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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