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지킨 갈림은 국민성이나 용기의 차이가 아니라 저항이 도착해야 할 절차가 살아 있었느냐의 차이였다. 한국에서는 국회가 끝내 열렸고, 190명의 의원이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헌법재판소도 그 신속한 해제가 가능했던 배경으로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태도를 적시했다. 서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제도의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반면 미얀마는 2021년 2월 1일 군이 새 의회가 열리기 직전에 먼저 움직였다. 아웅 산 수 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지도부는 새벽 급습으로 구금됐고, 선거로 만들어진 권력은 의회에 도착하기도 전에 끊겼다. 한국에서는 회의장 안의 숫자가 마지막 방파제가 됐지만, 미얀마에서는 그 숫자를 세어볼 장소 자체가 먼저 사라졌다.
한국에서도 12월 3일 밤 계엄 시도는 말뿐이 아니었다. 포고령은 정당 활동과 집회, 언론을 한꺼번에 묶으려 했고, 군과 경찰은 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막으려 했다. 다만 그 시도가 끝까지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국 국회가 2025년 7월, 군·경이 의원들의 출입을 막거나 국회의장 승인 없이 의사당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칙을 고친 것은, 그날 밤 드러난 문제가 과장이 아니라 실제 제도적 허점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얀마에서는 군의 강압이 제어되지 않았다. 군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파제가 아니라 쿠데타의 주력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12월 3일 밤, 현장 지휘관이 후속 병력에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은 더 크게 울린다.
그 말은 단순한 전술 판단이 아니라, 헌정질서 앞에서 고뇌하는 군인의 마지막 제동처럼 들린다. 최소한의 민주주의 교육과 헌법의식을 가진 군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이 특정 권력이 아니라 헌정질서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훈련이, 마지막 순간의 행동을 갈라놓는다.
그 뒤 미얀마는 내전과 통제 속으로 더 깊이 추락했다. 정치가 무너진 자리를 군이 차지했고, 선거는 권력을 바꾸는 절차가 아니라 이미 무너진 정치를 추인하는 형식으로 전락했다. 결국 2026년 4월 3일, 친군부 의회는 민 아웅 흘라잉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총으로 시작된 권력은 그렇게 폐허가 된 정치 위에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올라섰다.
미얀마가 쿠데타를 막지 못한 이유를 "저항이 약해서"라고 말하면 사실을 놓치게 된다. 미얀마 시민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그 대가는 훨씬 컸다. 쿠데타 이후 활동가와 민간인 사망은 거의 8천 명, 정치 구금자는 2만 2천 명을 넘었다.
문제는 용기의 크기가 아니었다. 그 용기가 도착해야 할 의회와 선거, 정당 체계가 먼저 절단됐고, 국가를 움직이는 공무원과 군·경의 내부에 헌법과 민주주의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정신이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결국 민주주의는 거리의 용기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 공권력을 쥔 사람들이 정권의 명령과 헌정질서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과 제도, 그리고 불법적 계엄을 초기에 차단할 헌법 장치가 함께 있어야 한다.
영웅이 아니라 절차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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