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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오만한 힘 과시' 베트남,이란 전쟁은 이란성 쌍둥이

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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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악마, 미국은 구원자' 성전으로 미화 똑같아

폭격을 역사의 한 수단으로 설정한 두 전쟁

"석기시대" 발언은 히틀러의 인종 청소 닮아

삶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극한 교만

'힘의 오만'이 불러온 베트남 패전 교훈 새겨야

도널드 트림프 미국 대통령과 각료들이 지난해 3월 26일(현지시간) 제2기 첫 백악관 각료 회의를 시작하기 전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는 최근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고 자신을 구원자로 제시하는 이미지를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전쟁을 성전화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2025.3.26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며칠 후면 두 달이 된다. 지금은 잠정 휴전 합의에 따라 미국, 이스라엘의 폭격과 이란의 드론, 미사일 반격이 공식적으로는 중단된 상태다. 언제 또 군사 행동이 재개될지 모른다. 양측 모두 전쟁으로 지치고 중단의 필요를 느끼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이 날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으며, 휴전 협상 의제인 이란의 핵 정책에 대해서도 진전이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와의 휴전 합의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이란 전쟁의 피해와 비용은 엄청나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4월 중순 현재 이란인 약 3500명이 사망했다. 이중 383명의 어린이가 생명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공격과 침공을 당한 레바논에서는 약 2500명이 사망했고 12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어린이 희생자 수는 약 2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 피해는 13~15명, 이스라엘은 약 30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사망하는 피해를 보았다.

전쟁의 경제적 비용은 정확한 계산이 어렵다.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까지 전쟁을 위해 300억~500억 달러를 군사비용으로 지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쟁 비용이 1조 달러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전쟁이 끝난다 해도 세계 경제는 오랫동안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물가 상승은 이미 당면한 문제이고, 앞으로 장기 불황이 덮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경제 성장률을 지난 1월 3.3%에서 4월 중순 3.1%로 하향 조정했다. 만약 이란 사태가 지속된다면 성장률은 2~2.5%로 더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 불안한 경제 상황의 피해는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전쟁이 나면 가난한 가정의 자식이 전장에서 싸우고 부모는 뒤에 남아 가계부와 싸운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형국이다.

돌아보면 이란 사태가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이란은 미국에 분명 불편한(uncomfortable) 상대였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painful) 나라는 아니었다. 이 둘은 다르다. 외교에서 불편한 상황은 두 국가가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갈등의 소지가 있지만 서로에게 존재적 위협은 아니다. 소화가 잘 안돼 몸이 불편하다고 할 일을 못하지는 않는다. 고통은 다르다. 통증은 일상의 기능을 저해한다.

이란은 미국에 그냥 불편한 상대였다. 핵무기 개발, 석유 수출을 통한 중국과의 밀착, 반이스라엘 무장단체 지원 등은 불안 요소였지만 미국의 헤게모니를 막고 저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협상과 설득의 공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줄다리기가 팽팽했지만, 협상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던 미국과 이란의 핵을 둘러싼 마찰이 왜 전쟁까지 불러왔나? 갑자기 이란이 미국에 불편함을 넘어 통증을 안기는 존재로 변했다. 따라서 치유책도 압력과 봉쇄에서 폭격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의 근저에는 ‘힘의 오만'(Arrogance of Power)이 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던 1966년, 아칸소주 출신 제이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외교위원장)이 베트남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책을 발간했다. 책 제목이 바로 ‘힘의 오만’이다.

 

'힘의 오만'의 저자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의 생전 모습 (IMDB.com)

“’힘의 오만’이란 국가들이 다른 국가보다 더 크고, 더 낫고,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심리적 욕구를 말한다. 이러한 욕구에는…무력이 우월성의 궁극적인 증거라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즉, 한 국가가 더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더 나은 국민, 더 나은 제도, 더 나은 원칙, 그리고 일반적으로 더 나은 문명을 갖고 있음을 증명한다는 생각이다.”

풀브라이트는 “미국이 전례 없는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과 다른 국가 간 힘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힘의 오만에 빠져든다고 보았다. 이때 오만한 힘에서 비롯된 군사 행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책임과 사명으로 미화된다.

트럼프를 지배한 힘의 오만은 단순한 군사력에 있지 않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을 통해 신성함을 보았다. 풀브라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 반복해서 나타난 의식 구조이고 행동 양식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다량의 네이팜탄(소이탄)을 투하했다. 태워서 없애고 죽이는 네이팜탄 공격은 마을과 사람들을 광범위하고 강한 불길에 휩싸이게 한다. 미국의 한 공군 지휘관은 이런 공격으로 베트남을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고 공언했다. (Public Domain)

“우리 (미국) 역사를 통틀어 두 가지 흐름이 불안정한 공존 관계를 이어왔다. 하나는 지배적인 흐름인 ‘민주적 인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그 비중은 작으나 끈질기게 지속되어 온 ‘배타적 청교도주의’이다.” 미국이 “민주적 인본주의”를 견지했을 때는 “상황이 그럭저럭 순조롭게 돌아가거나 당면한 문제가 명확하고, 한정적이며,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일 때”였다. 이 경우 “이성과 절제가 우위를 점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나 여론 주도자가 대중을 격앙된 감정 상태로 몰아넣을 때면, 우리의 청교도적 정신이 불쑥 튀어나와 (미국이) 가혹하고 분노에 찬 도덕주의라는 왜곡된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란과 싸우는 미국과 트럼프의 생각과 행동이 바로 이렇다.

가혹하고 분노에 찬 ”청교도적 도덕주의"는 마녀사냥 같은 극단적인 내부 통제와 원주민 학살이란 팽창주의로 나타났다. 마녀는 신성한 신앙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이고, 토지를 생산수단, 부의 척도로 간주하지 않는 원주민은 청교도 공동체의 번영과 발전을 저해하는 방해 요소가 되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력은 성전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1630년대 청교도 정착민들이 지금의 코네티컷주에서 피쿼트 원주민을 상대로 벌인 전쟁을 묘사한 19세기 판화. 청교도들의 압도적인 힘과 승리를 표현하고 있다.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은 이런 역사와 사고가 '힘의 오만'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Public Domain)

청교도들이 마녀를 사냥하고 원주민과 전쟁하며 그랬듯이 트럼프는 이란 전쟁에서 절대적 선과 압도적 힘의 우위를 믿었다. 그는 미국의 군사행동에 힘입어 이란인들이 압제의 상징으로 채색된 이란의 신정 체계에 반기를 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또한 이란의 비대칭 군사력을 “활과 창”으로 무장한 원주민 수준으로 깔봤다. 체계적인 분업과도 같았던 이스라엘과 미국의 폭격으로 이란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란은 부서졌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의 지적대로 진정한 이란의 능력과 위협은 핵탄두가 아니라 지리적 위치(geography)에서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외부 압박과 공격에 대한 이란의 투쟁성과 능력 또한 없어지지 않는다.

 

공격 첫 날인 2월 28일, 폭격을 당한 이란의 도시들이다. 트럼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폭격으로 이란을 무릎 꿇릴 것을 자신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이란을 "석기 시대로 돌리겠다"고 극언에 가까운 경고를 날렸지만 이란은 아직 전쟁을 포기할 태세가 아니다. (알자지라)

그래서 나온 답이 트럼프의 “석기시대” 발언이다. 그는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석기 시대로 되돌려 보낼 것”이라며 문명의 종말을 경고했다. 단순화하면 인류 지도에서 없애주겠다는 뜻이다.

한 민족을 완전히 파괴해 문명사와 결별시키겠다고 위협한 인물은 아돌프 히틀러 이후 처음이다. 히틀러 사고 체계의 핵심인 우수 민족(지배자 민족) 독일에 꼭 필요한 “생존 공간(lebensraum)”도 같은 맥락이다.

독일이 침략해 차지할 땅을 역사의 실수 때문에 열등 민족이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공간을 비워야 한다. 잘못 형성된 민족 공간을 원점으로 돌리고 그곳에서 게르만 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펼친다는 논리였다. 히틀러는 폴란드를 시작으로 러시아에 이르는 땅을 독일화하기 위해 극도로 파괴적인 전쟁을 벌였다. 인종 청소 전쟁이라고도 한다.

트럼프의 석기시대 발언도 이란의 민족성이 사라진 공간에 미국 문명을 옮겨 심겠다는 사고를 반영했다. 그는 대규모 공습을 앞두고 “오늘 밤, 하나의 문명 전체가 소멸할 것이며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기존 통치 체제가 무너졌으니 "이전과는 다르고, 더 현명하며, 덜 급진적인 사고를 지닌 이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니, 어쩌면 혁명적일 만큼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트럼프도 히틀러처럼 문명의 소멸을 역사의 전환이며 진보로 보았다.

 

트럼프는 이란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을 자신하면서 전쟁 후에 이란은 물론 세계 공동체가 새로운 역사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아돌프 히틀러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우수 민족 독일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을 불러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Publid Domain)

문명의 소멸과 부활은 절대자 창조주의 권능을 떠올리게 하는 언어이다. 히틀러가 이 언어에 능했다. 유대인 차별과 학살 정책에 대해서 “오늘 나는 전능하신 창조주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유대인들을 배척함으로써, 나는 주님의 대업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 대업을 예수가 시작했으나 끝내지 못했다며, 그러나 “나 아돌프 히틀러가 완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1939년 9월 3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틀 후 히틀러는 세계대전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에도 신이 등장한다. “자신을 돕기로 굳게 다짐한 사람(민족)에게 언제나 자비를 베풀어 오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땅을 우수 민족 독일의 "생활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의 열등 민족을 다스리면 인류 역사가 새롭게 쓰일 것이라는 히틀러의 망상으로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은 사람들을 살육하고 집을 불태웠다. (Publid Domain)

트럼프는 이란과의 전쟁 초기부터 신앙을 끌어들였다. 전쟁의 성전화를 위해서였다. 이란 폭격 개시 일주일 뒤인 3월 초 백악관에 모인 종교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둘러싸고 합심해 기도했다.

 

이란에 대한 폭격이 시작된 일주일 뒤 백악관에 모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를 위해 안수 기도를 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고통과 파괴,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를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구하는 부활절을 앞두고 트럼프는 또 기독교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이들도 트럼프와 미국, 전쟁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로 힘을 얻었는지 그는 부활절을 맞아 이란에 위협을 날렸다. 곧 “발전소의 날이자 다리의 날 -- 이 모든 ([공격 목표가) 하나로 어우러진 특별한 날”을 맞이할 것이라며 민간의 고통을 극대화할 폭격 대상을 콕 집어 경고했다.

최근에는 트럼프의 이란 전쟁 신성화 캠페인에 성직자들을 넘어 예수가 직접 등장했다. 그는 예수와 연계된 두 개의 이미지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트루스소셜 갈무리

예수가 왼팔을 트럼프의 왼쪽 어깨에, 오른손은 오른쪽 가슴에 대고 그를 축복하는 모습이다. 뒷배경에 빛을 발하는 성조기가 있다. 구약 이사야서 41장 10, 11절을 떠올리게 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다음 이미지는 앞엣것보다 먼저 트루스소셜에 올린 것이다. 한 발짝 더 나갔다. 예수 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수준을 넘어 트럼프는 예수가 되었다. 얼굴만 다를 뿐 예수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의 트럼프는 왕권을 상징하는 보주(십자가가 달린 구슬)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을 병자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치유의 기도를 하고 있다. 평범한 미국인들을 상징하는 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뒤에는 성조기, 미국의 상징 독수리, 자유의 여신상과 전투기, 참전 병사들의 모습이 형상화됐다. 그가 구세주로 격상했다. 논란이 일자 두 사진 모두 SNS에서 내려졌다.

 

트럼프는 최근 병자를 치유하는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란과의 전쟁을 성전으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 트루스소셜 갈무리

전쟁을 성전, 또 자신을 구원자로 채색하려는 트럼프는 교황 레오 14세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 14세가 힘의 오만과 같은 맥락인 “전능의 망상” 때문에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하자 트럼프는 신앙 지도자로서 교황의 능력을 문제 삼았다.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교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좋은 교황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쏘아붙였다.

베트남 전쟁 때도 미국을 신성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65년 5월 미 해병대 3500명이 남베트남 다낭에 상륙했다. 베트남이 미국의 전쟁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 달 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워싱턴 D.C. 인근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을 찾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연설했다. 연설의 결론 부분에서 존슨은 구약 성서 신명기 30장 19절을 인용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사백 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도자 모세는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여호와를 믿고 따라 생명과 복을 얻을 것인가 그의 뜻을 어겨 사망과 저주의 길을 갈 것인가? 하늘과 땅을, 증인을 선 절체절명의 선택이었다. 모세는 물론 이스라엘 민족이 복되게 사는 길을 택하라 했다. 존슨에게 베트남 전쟁은 “파괴할 것인가, 건설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 도울 것인가. 미워할 것인가, 이해할 것인가”의 선택일 따름이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이 어떤 쪽을 택하든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규모”의 파괴 또는 건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했다. 존슨에게 미국의 선택은 "선한, 생명의 길"이었다. 그렇게 해서 전장에서의 적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적, 그리고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적들을 싸워 물리칠 것이라고 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은 존슨이 권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은 베트남을 마치 석기 시대로 돌리려는 듯 맹폭을 가했다. 그는 “평화의 수호자들은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견뎌낼 것이며…기필코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했다. 이렇게 베트남 비극도 미국은 신성한 전쟁으로 포장했다.

 

1975년 4월 베트남 패망 당시 헬리콥터를 바다에 내버리는 미군. 미국은 자유 독립 국가 남베트남을 지킨다는 신성한 전쟁 목표를 내세웠지만 전쟁은 큰 아픔과 치욕을 안겨주었다. (Public Domain)

결과는 참담했다. 연인원 약 300만 명을 베트남에 보냈고 이 중 거의 6만 명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부상자는 30만이다. 요즘 가치로 약 1조 달러를 베트남에 뿌렸다. 1975년 4월 베트남은 패망했다. 전혀 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

그리고 반 세기가 흘렀는데도 미국은 그 교훈으로부터 배우지 못해 이란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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