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엽절제술(lobotomy)은 한때 정신병 치료라는 이름으로 행해졌지만, 실상은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뇌의 핵심 부위, 즉 전두엽 전부피질(PC: prefrontal cortex)을 망가뜨리는 수술이었다. 정신 이상의 폐해를 피차 견디는 대신 사람을 차라리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PC 기능에 차질이 생기면 사람은 눈앞의 손익을 제대로 따지지 못한다. 공포와 강박에 휘둘리며 뻔히 불리한 거래 앞에서도 멀쩡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과거 한미 FTA를 국익이라 외치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한국 정부의 태도가 딱 그 짝이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2025년 11월 한미 공동 팩트시트를 최선의 결과라 선전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도 유럽도 우리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더군다나 한국은 상호관세로 사실상 죽어버린 한미 FTA를 미국이 자기 입맛대로 되살려내는데도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이걸 가리켜 PC에 이상이 생겼다고 말하지 않으면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미국 CIA가 1953년부터 20년 동안 비밀리에 행한 엠케이 울트라(MK-ULTRA) PC 실험이 혹시 한국인에게도 행해진 여파는 아닐는지.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를 약속했고, 국방비를 GDP 대비 3.5% 수준까지 올리겠다는 계획과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 구매 계획까지 내놓았다. 반면 한국이 받은 것이라고는 상호관세 15%와 핵잠수함 연료, 농축·재처리에 관한 흐릿한 문장 몇 줄뿐이다. 성과라고 내세우기에는 너무도 민망한 수준이다. 미국이 휘두른 몽둥이를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훨씬 더 세게 맞으면서도 말이다. 더군다나 농축·재처리는 “그렇게 될 수 있는 과정을 지지한다”는 식이니 약속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그나마도 미국은 이행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상호관세가 나온 순간 우리는 당연히 한미 FTA를 파기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오히려 미국이 그들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협정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바른 소리는커녕 어서 마음껏 가져가라고 손짓하기에 바빴다. 지금 미국은 쿠팡에 대한 차별대우니 망 사용료 부과 검토의 불공정성이니 하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정동영 장관에 대한 기밀누설 ‘혐의’ 모함 역시 기본적으로 미국의 한국 ‘흔들기’다. 문제는 한국의 소위 ‘동맹파’들이 앞장서 한국인들을 겁주면서 미국의 행태를 북돋우고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인 숭미가 아니고서는 우리 모두 죽는다는 강박이요 미국에 거슬리면 나라가 망한다는 막연한 공포가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해 왔다. 근원은 결국 한미동맹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도 좋다는 식으로 비뚤어진 숭미주의다. 숭미동맹의 언어체계 안에서 한미 FTA는 국익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진작 죽었어야 할 협정이 지금 미국만 혜택을 보는 해괴한 좀비로 되살아난 것이다. 숭미교 논리가 아니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 숭미교 신자들은 미국을 유일신처럼 떠받드는 믿음에 어긋나는 모든 생각을 악마화한다.

2011년 11월 한미 FTA 비준 논의 당시 남경필 의원은 반대하는 쪽을 향해 “결국 반미하자는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의도는 공포 반사의 회로를 건드리자는 것이었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래치드 간호사가 환자의 약점을 찌르며 통제하듯, ‘반미’라는 말 한마디로 상대를 오그라뜨리자는 저의였다. 한미 FTA가 무엇을 가져오고 무엇을 앗아가는지에 대한 계산은 사라지고 오로지 미국에 대한 충성 여부만이 남은 것이다. 남경필의 반미는 미국을 유일신으로 떠받드는 숭미적 사고에 어긋나는 모든 생각을 뜻하는 말이었다.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정했다. 그쯤 되면 한국은 당연히 팩트시트를 전면 재검토했어야 한다. 상호관세라는 전제를 깔고 만든 문서를 계속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여태껏 팩트시트를 고수하고 있다. 유일신을 분노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서운 신 앞에서도 유럽은 관련 합의를 전면 보류하기로 결정했고, 말레이시아도 다시 검토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유럽도 알고 말레이시아도 아는 것을 한국만 모르는 척한다. 이것도 역시 전두엽 전부피질의 이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PC의 이상을 치유하려면 우리가 그동안 사이비 종교의 마수에 걸려 있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미국이 호르무즈로 당장 달려오라는데 대꾸하지 않은 것만 해도 과거와는 다르다. 이스라엘의 행패를 비판하고 미국의 전쟁범죄 앞에서 보편적인 인권을 찾는 언사도 예사롭지 않다. 쿠팡의 범행에 눈을 감고 고압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미국 의원들의 행태를 내정간섭이라 일갈하는 한국 의원들의 결기 역시 괄목할 일이다. 더 당당하고 거세게 표출되어야 할 조짐들이다.

영화 <이지 라이더>(Easy Rider)의 제목은 쉽게 올라탈 수 있는 탈것이나 그렇게 올라타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은 미국의 이지 라이더가 되어 왔다. 올라타라고 등을 내줘 멸시와 업신여김을 자초하면서도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해 왔다. 상호관세로 미국이 한미 FTA를 죽였으면 그 죽음을 확인하고 새로 계산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을 거들어 시체를 살려내고 대미 강제투자는 특별법으로 못 박아 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3불 원칙’(이면합의, 불공정 협상, 국익저해 협상 불허)에도 어긋나는 결과다.

미국은 핵잠과 농축·재처리 약속을 이행할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 이런 형국임에도 숭미주의자들은 우리의 ‘자주적’ 태도에 문제가 있다면서 ‘정상적인’ 굴종 상태로의 복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최근의 긍정적인 신호들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는 아직 멀었다. 국힘과 조중동은 한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앞잡이로서 한국을 무릎 꿇리려는 매국에 혈안이 되어 있다. 정부 안에도 정체를 숨긴 이완용과 박제순이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온전히 꽃피우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마음 내키는 대로 올라타는 이지 라이더가 아니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하겠다면 한미 FTA는 당장 파기하고 공동 팩트시트는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야 한다. 또 쿠팡이든 망 사용료든 온플법 문제든 우리가 세운 원칙은 주체적으로 실행에 옮겨나가야 한다. 경제문제만이 아니다. 한미동맹이라는 맹목적 슬로건 아래 만들어진 수많은 제도와 정책도 하나씩 다 없애거나 고쳐야 한다. 결국 숭미를 몰아내고 건강한 한미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상적인 전두엽 전부피질의 회복이다. 뇌엽절제술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끝.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s://www.minplu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