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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로 바뀐 가자 병원…피난처 아닌 죽음의 덫으로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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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전쟁범죄 ④] 의료체계 파괴

근거없이 하마스와 한패 몰아 병원 930개 폭격

의료진 993명 피살… 감옥 끌려간 520명 고문

'병원 안전하겠지" 대피한 주민 많아 피해 더 커

MRI "0"…손 놓은 의사들 “환자 앞에서 울기만”

의사 공격은 환자생명 위태롭게 하는 '예비 살인'

국제사회, 감옥 끌려간 아드완 병원장 석방 운동

유엔총장 "인종청소" 비판에 이스라엘은 귀막아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알-나자르 병원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이들을 슬퍼하는 가족들(2023년 11월7일) ⒸAbed Rahim Khatib/Flash9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지구촌의 변두리처럼 모든 물품이 귀한 곳이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 탓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는 탓일까, 줄담배를 피우는 골초들이 많다. 가자지구로 취재를 갈 때마다 그곳 통역자는 “미스터 킴, 빨간 말보로 담배를 가방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사오라”고 이메일로 거듭 부탁했다. 담배야 건강에 좋지 않으니 그렇다 치고, 가자지구엔 치약이나 칫솔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늘 부족하다. 의약품은 더 구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의 봉쇄 탓이다.

가자지구의 의료 인프라는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매우 열악했다.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을 통해 합법적으로 세워진 하마스 정권을 이스라엘은 미국과 손잡고 1년 뒤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빚어진 크고 작은 무력충돌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20년 동안 봉쇄정책을 펴왔다. 의료 서비스를 포함한 사람과 물자의 가자 출입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에 따라 가자 주민들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런 판에 또 전쟁이 터졌다.

“의사로서 우리는 눈먼 장님이 됐다”

가자지구 병원들은 지난 2년 반 동안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스라엘군은 폭격기 공습, 대포와 탱크 포격, 보병의 지상작전 등으로 병원들을 두들겼다. 갓 태어난 신생아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질 못해 숨지고, 임신한 여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조산을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미숙아를 살리는 인큐베이터, MRI 등 고가의 의료장비를 비롯해 거의 모든 시설물이 망가졌다. 저격수들은 병원 안에서 일하는 의료진이 하마스에 연루된 ‘불법 전투원‘이라며 붙잡아갔다. 환자를 나르는 구급차도 공격 목표가 됐다. 이렇듯 전쟁범죄 논란을 부르는 마구잡이 살상과 파괴 행위가 잇따랐다.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 규정 제8조에는 ‘병원 및 병자와 부상자를 수용하는 장소가 군사 목표가 아닌 한, 이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공격을 하는 행위’(제2항)를 전쟁범죄로 못 박고 있다. ‘병원, 의료수송수단, 의료 포장을 한 건물에 대한 고의적인 공격’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은 (굳이 법조문을 외울 것 없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치군사 지도부는 이를 아예 무시하는 모습이다.

[가자지구의 보건 시스템은 지속적인 공격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악화되었다. 36개의 모든 병원과 대부분의 1차 보건센터가 파괴되었다. 2023년 10월 이후 의료 시설에 대한 공격이 930건 이상 기록되었다. 현재 모든 병원의 절반만이 부분적으로 운영되며, 많은 병원이 수용 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https://www.un.org/unispal/document/occupied-palestinian-territory-who-health-emergency-appeal-2026/)

위에 옮긴 글은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팔레스타인(특히 가자지구)의 보건 상황이 위기에 처했음을 세계에 알리면서 긴급 지원을 호소하는 대목이다. 현재 많은 부상자와 만성 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분쟁으로 인한 정신건강 피해 또한 매우 심각하다. 어린이들을 포함해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심리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의료 인력의 부족, 필수 의약품과 장비 부족 등도 큰 문제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36개 병원 가운데 특히 알-시파(Al-Shifa), 나세르(Nasser), 카말 아드완(Kamal Adwan) 병원 등 이른바 거점 병원들을 거듭 공격해 망가뜨렸다. 2026년 5월 현재 암, 뇌졸중, 간질 등 수백 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데 필수적인 MRI 장비가 가자지구에서는 한 대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곳에 딱 하나 있는 암 전문 병원인 ’터키-팔레스타인 우정병원‘의 소아신경과 전문의 모하메드 아부 나다의 한탄을 들어보자.

“MRI 장비의 손실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치명적인 장벽이다. 의사로서 우리는 사실상 눈이 먼 장님과 마찬가지다. 난치성 간질, 뇌염, 또는 소아종양 초기 단계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우리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도구가 (망가진 채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방에 쓸모없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https://www.972mag.com/doctors-blinded-gaza-mri-crisis/)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는 2023년 11월과 2024년 3월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촬영작가 미상

병원은 더 이상 안전지대 아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슨 이유로 병원과 의료진을 공격하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리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평화적 생존권과 건강권을 앗아가 말살시키려는 속셈 말고 다른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공격 근거는 “하마스가 병원을 보호막 삼아 군사기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병원 밑에 지하 터널을 파놓고 엄청난 양의 무기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주장도 편다. 의료진들 가운데 일부는 하마스와 밀착돼 있다고도 했다. 따라서 가자 병원들은 보호받아야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스라엘은 병원과 하마스의 밀착 관계를 증명하는 빼도 박도 못할 구체적인 물증을 내놓지 못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와 같은 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병원 시설물들의 보호 조치를 거둘만한 어떠한 결정적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라고 거듭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병원뿐 아니라 이슬람 사원(모스크)과 학교를 하마스가 군사 목적의 시설물로 바꾸었다”는 주장을 펴면서 이들 공공 시설물을 공격하곤 했다. 그에 따라 병원이나 학교, 모스크를 ’안전지대‘로 여기고 피난해 온 민간인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

병원에는 환자만 많은 게 아니었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해 주민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설마 병원을 포격하겠느냐”며 병원마다 주차장이나 복도에 난민들이 꽉 들어찼다. 이를테면,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에는 한때 5~6만 명의 사람들이 머물렀다. 하지만 병원은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병원이 공격을 받게 되자, 난민들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진료 자체가 쉽지 않다. 중상을 입고 의식마저 없는 어린이를 비롯한 부상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의료진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그저 울면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답니다.”

1000명 가까이 의료인 희생

병원들에 대한 공격은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의 목숨뿐 아니라 그곳에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그뿐 아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치료받으면 목숨을 건질 이들의 생명줄마저 미리 끊어버리는 ‘예비 살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10월 이후 2026년 3월까지 2년 반 동안 가자지구에서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이 930건을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국제법상 보건의료 인력은 분쟁 중에도 절대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의료 중립성(medical neutrality)’의 대상으로 꼽힌다. 가자지구에서는 병원 자체가 군사작전의 주요 공격 목표물 목록에 오르면서 의료 전문인력과 환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WHO 집계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등 보건 의료 인력의 누적 사망자 숫자는 993명에 이른다(2023년 10월7일~2026년 1월31일). 여기에는 가자지구의 거점 병원(대형 병원)을 지키던 이름난 전문의(정형외과 과장, 의대 학장 등)뿐만 아니라, 의료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실어 나르던 구급대원, 간호사, 조산사 등이 포함돼 있다(https://www.emro.who.int/images/stories/palestine/Sitrep_68.pdf).

위의 같은 자료에서 부상자 수는 1654명으로 기록된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의 병원 공습, 구급차 포격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거나, 병원 주변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군-하마스대원 사이의 전투에서 날아든 유탄에 다친 의료진까지 포함한 숫자다. 이들은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대체 인력이 없어 현장에서 붕대를 감고 진료를 이어가는 등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하려 애썼다.

병원 점령 자체가 전쟁범죄이지만, 이스라엘군은 점령 뒤에도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가자지구의 주요병원 3개(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 베이트 라히아의 카말 아드완 병원,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가 점령됐을 때 현장에 있던 의료진과 환자들을 인터뷰해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를 낱낱이 드러냈다(2025년 3월 20일). 그 한 대목을 보자.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점령한 뒤 부상자와 아픈 환자들의 치료에 심각하게 간섭했다. 의사들의 약품 전달 요청을 거부하고 병원과 구급차 접근을 막았다. 그 때문에 부상자와 만성 환자, 투석 중인 어린이들이 죽었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다리를 잃고 목발을 써야 했던 안삼 알샤리프는 "우리는 (이스라엘군 점령) 나흘 동안 음식, 물, 약도 없이 지냈다"고 말했다. 알샤리프는 그 시기에 4명의 노년 환자가 숨을 거두는 것을 봤다.]

(https://www.hrw.org/news/2025/03/20/gaza-israeli-military-war-crimes-while-occupying-hospitals).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는 2023년 11월과 2024년 3월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뒤 폐허처럼 바뀌었다. 이스라엘군이 물러난 뒤 병원 마당에서 처형된 것으로 보이는 시신들이 포함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어 충격을 안겼다. 일부 희생자들은 양손이 묶인 채 숨져 있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이스라엘 쪽의 조사나 처벌은 아직 없다. 다만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전쟁범죄를 조사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들이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파괴된 알-시파 병원 부지에서 의료진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의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페르 감옥에서 고문 받아 2024년 4월에 숨진 아드난 알-부르시의 사진도 보인다(왼쪽 두 번째). ⒸYousef Zaanoun/Activestills

감옥행 의료진 520명, 고문받고 숨지기도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와 내통했다’ 또는 ‘하마스 협조자’란 구실을 붙여 가자지구의 의료인들을 붙잡아갔다.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습격·점령하는 과정에서 붙잡아 강제로 끌고간 이들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여러 구금시설에 갇힌 숫자는 적어도 520명에 이른다. 대부분이 이렇다 할 기소 절차도 없이 장기 구금되어 있다. 더구나 일부 의료진은 실종상태다.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어 가족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감옥으로 끌려간 의사들은 그 안에서 고문을 받기도 했다.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의료 시설인 알-시파 병원 정형외과 과장 아드난 알-부르시가 그러했다.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알-시파 병원의 기능이 마비되자, 그는 북부 가자의 알-아우다 병원으로 옮겨 가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해 12월 말, 이스라엘군이 알-아우다 병원을 습격했을 때 수십 명의 의료진과 함께 붙들려갔다. 구체적인 체포 사유도 듣지 못하고 ‘불법 전투원(unlawful combatant)’으로 분류된 그는 여러 수용소를 거쳐 오페르 감옥에 갇혔다(팔레스타인 저항을 옥죄기 위해 지난 20002년 만들어진 ‘불법전투원 구금법’은 이스라엘 인권침해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문제의 악법이다).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는 오페르 감옥은 팔레스타인 저항운동가들에게는 인권 침해로 악명 높은 수용시설이다. 그곳에 갇혔다가 풀려난 동료 의료진들의 증언에 따르면, 알-부르시는 수감 직후부터 심한 구타와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가 끝내 숨졌다. 그의 사망일은 2024년 4월19일. 그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부상을 입었음에도 숨지기 직전까지도 감옥 안의 다른 수감자들을 돌보려 애썼다고 한다.

알-부르시의 체포와 사망 과정은 의료진에 대한 조직적 폭력의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이스라엘 교정국은 쉬쉬하며 숨기다가 2주가 지나서야 사망 사실을 알렸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국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밝히지 않았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은 “알-부르시 박사의 사망은 이스라엘 교도소 내 고문의 증거”라며 독립적인 부검과 조사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엔 인권위 최고대표사무소(OHCHR)도 알-부르시의 사망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의료진을 겨냥한 초법적 고문 및 처형 가능성을 꼽았다. 알-부르시 의문사를 둘러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전쟁 뒤 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이스라엘군의 마구잡이 공격이 빚은 가자 의료체계의 붕괴와 그곳 의료진이 겪는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한둘이 아니다. 가자지구 북부 카말 아드완 병원의 원장인 후삼 아부 사피야와 그의 아들이 겪은 비극적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2024년 10월 25일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급습했다. 그때 병원 입구에 있던 사피야 원장의 15살 아들 이브라힘은 이스라엘군이 띄운 드론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병원 마당에 아들을 묻은 사피야 원장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수술실로 돌아가 그의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을 돌보아야 했다.

2024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이 카말 아드완 병원을 다시 공격해 왔다. 이번엔 의료시설을 파괴하고 화재를 일으켜 병원 기능을 아예 마비시켰다. 그런 다음 사피야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 350여 명을 붙잡아 갔다. 앞의 알-부르시와 마찬가지로 '불법 전투원’이란 혐의를 걸어서였다.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감옥에 갇힌 사피야는 갈비뼈 4개가 골절되는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 밥도 제대로 주질 않아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건강이 아주 나빠졌다고 알려진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인권침해의 중범죄를 사피야에게 저지르고 있다고 여긴다. 이탈리아 출신의 UN 팔레스타인 인권상황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세는 2026년 3월 ‘명백히 자의적이며 국제법 위반’이라 비판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샤피아 석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알-부르시와 샤피아, 이 두 사람의 경우는 드러난 사례일 뿐, 이스라엘의 인권침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중이다(이스라엘 감옥 상황에 대해선 따로 곧 살펴볼 참이다).

 

2023년 10월19일 요아브 갈란트 당시 국방장관이 가자지구 장벽 인근 집결지에서 이스라엘 군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년 11월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갈란트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이 나온 전범 수배자 신분이다. ⒸChaim Goldberg/Flash90

‘치유와 회복’의 장소가 ‘죽음과 학대’로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병원에서 ‘점령군이자 지배자’로서 행동했다. 군인들은 의료진들에게 거칠게 굴고 환자들에게 물과 전기 공급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막판엔 총구를 앞세워 ‘대피’라는 구실 아래 환자와 의료진을 강제로 내몰고, 병원을 파괴했다. 하마스 연루자로 몰아 의료진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해 숨지게 만들기도 했다. 가자지구 병원의 피해를 조사했던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아동권리 부국장 빌 반 에스벨트는 “이스라엘 군대가 병원을 점령하면서, 치유와 회복의 장소들이 죽음과 학대의 중심지로 바뀌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관련자들은 모두 언젠가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가자지구의 끊임없는 폭격과 심각한 인도주의적 상황만으로도 매우 고통스러운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할 유일한 피난처가 오히려 죽음의 덫이 되었다. 전쟁 중 병원 보호는 최우선 과제이며, 모든 당사자가 언제나 이를 존중해야 한다.”(https://www.un.org/unispal/document/pattern-of-israeli-attacks-on-gaza-31dec24/)

위에 옮긴 글은 유엔 인권위 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보고서(「가자지구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패턴은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2024년 12월31일)를 내면서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UN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가 했던 말이다. 보고서는 국제 인도법 및 인권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공격으로 의료인들과 환자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는 사실을 짚으면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비판했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돌이켜 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이스라엘이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기구와 인권단체의 공식 발표와 보고서는 한둘이 아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가자지구의 상황이 ‘대재앙(catastrophe)’이며 “이스라엘의 공격 목적이 인종청소(ethnic cleansing)일 수 있다”고 나무라는 등 비판적 담화를 여러 번 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초강대국 미국의 뒷심을 믿고 그런 비판들에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고, 국제평화유지군 파병이라는 물리력으로, 또는 전쟁범죄 관련 국제법으로 이스라엘을 제대로 응징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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