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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장관, 논란의 ‘두 국가’ 표현 왜 고수할까?

입력 2026.05.23 08:00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광진구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예방하고 이 의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주장에 대하여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관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다.

- 통일부, <2026 통일백서 : 2025 한반도 평화공존의 기록들> 22p

이 한 문장이 이번주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정확히는 ‘두 국가’ 세 글자 때문입니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헌법과 충돌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이 표현은 무엇을 뜻하길래 논쟁의 중심에 선 것일까요?

위 문장은 통일부가 지난 18일 발간한 이재명 정부의 첫 통일백서, <2026 통일백서>의 한 대목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통일백서는 정부의 통일정책 추진 실적을 1년 단위로 정리해 발간하는 정부 보고서입니다. 영문판으로도 제작돼 정부의 통일정책 기조를 대내외에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통일백서에 남북관계의 지향점과 관련해 두 국가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문장도 있었습니다.

남북이 사실상의 두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하여,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관계로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 통일부, <2026 통일백서 : 2025 한반도 평화공존의 기록들> 25p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응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평화적 두 국가론’입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평화적 두 국가론에 ‘위헌’ ‘역대 정부 입장과 배치’ 주장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의 양측 수석대표가 1991년 12월 11일 하오 국립극장에서 서울예술단의 영혼의 노래를 관람하면서 프래그램을 함께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 연형묵 당시 북한 총리. 경향신문 자료사진

첫째, 북한에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헌법에 배치된다는 주장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 지역 역시 대한민국 영토이며, 북한은 통일의 대상인 만큼 헌법상 별개의 국가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헌법 해석을 바탕으로 진보·보수를 막론한 역대 정부가 대북 정책의 대전제로 삼아온 ‘남북한 특수관계론’과도 충돌한다는 주장입니다. 특수관계론은 남북이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는 것으로, 1991년 12월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전문

남한과 북한의 기본적인 관계를 규정한 남북관계발전법도 3조에서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 제기에 통일부는 어떻게 반박했을까요? 통일부가 백서 발간 다음 날인 지난 19일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의 일부분입니다.

‘평화적 두 국가’는 북한을 법적인 국가로 승인하는 것이 아님. 사실상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북한의 체제와 주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임. 이는 앞서 밝힌 대로, 남북이 유엔 동시가입 등 사실상 두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과 ‘남북기본합의서’의 특수관계를 존중하는 전제 위에 있음.

- 통일부, 지난 19일 언론 배포 입장문

평화적 두 국가론의 ‘국가’는 북한을 일본, 미국과 같은 별개 국가로 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는 역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위헌적이지도 않고, 역대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북한 국가로 인정 안 한다면서 ‘두 국가’ 고수하는 이유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전군의 사·여단 지휘관들의 회합을 소집하고 남부국경을 지키는 제1선부대를 강화해 국경선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기 위한 군사조직구조 개편 구상을 밝혔다고 조선중앙TV가 1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라는 표현에 포함된 ‘국가’라는 단어 때문에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통일부는 ‘북한을 진짜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는 취지의 논리로 대응했습니다. 이런 설명이 당장의 쟁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남습니다.

그렇다면 정 장관은 왜 굳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두 국가’ 표현을 고수하는 걸까요? 국가라는 단어 없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면서 평화 공존하는 관계로 만들고자 한다’는 표현만으로도 의도는 충분히 전달됩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걸며 대남 단절 노선을 고수하는 북한의 호응을 유도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는 한국이 체제 붕괴와 흡수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인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처음 선언한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연설에서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당시 연설 일부분입니다.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조선 것들과의 관계를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생각합니다. (…) 북남관계는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습니다.”

-조선중앙통신 2023년 12월 31일 보도

이에 통일부 당국자는 “평화적 두 국가는 북한에 흡수 통일을 추구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상대방으로서 북한의 체제를 존중한다는 의지를 극대화해서 전달하기 위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적대적 두 국가라는 유례없는 상황에 맞서 남북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내놓은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통일부 당국자들은 이를 “평화공존의 말 걸기” “바늘구멍 뚫기”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합니다.

통일부는 19일 입장문에서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해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이행하기 위한 현실적·실용적 이행전략”이라며 “평화통일은 상대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냉전적 적대만 반복한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남북관계 개선 여부에 성패 달린 정동영의 두 국가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평화적 두 국가론의 성패는 남북관계가 개선되느냐에 달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는 현재로선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는 데다, 외부 정보 유입 등으로 인해 체제 내부의 불안정 요인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과거에 북한은 금강산 관광이나 대북 지원 등 남북관계에서 경제적 효과를 얻었지만, 지금은 중국·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남한에 미국과의 가교 역할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북·미 간 직접 소통이 가능합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명예교수는 “북·미 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이 되면 거기에 연동돼 남북관계가 풀릴 가능성은 있어도 현재 우리 자체 동력만으로는 어렵다”며 “남북관계에서 크게 얻을 것도 없는데 (외래) 문화 침투 가능성 등 체제를 걸고 도박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평화적 두 국가론에도 북한이 별다른 반응 없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고수한다면 정 장관은 논쟁적인 표현으로 내부 갈등만 일으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통일부의 존재 이유와 충돌할 수 있는 ‘두 국가’ 표현을 통해 오히려 존립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에 통일부가 사회적 논의를 보다 충분히 거친 후 평화적 두 국가론에 입각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의 제언입니다.

“정부의 정책과 전략이 효과가 있으려면 국민의 지지와 국제사회의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통일부는 국민보다 반 발짝 앞서나가고 있다. 통일부는 전문가나 시민단체, 정치권과의 토론 등을 거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 북한도 (남한 내에서) 국내 지지가 있어야 평화적 두 국가론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은 최장기간 단절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구상이라고 보십니까? 성과 없이 내부 갈등만 키울 수 있는 설익은 시도라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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