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한겨레>는 "삼성전자·하이닉스, 호남에 첫 반도체 공장 설립 추진"이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통해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 주요 기업들과 비수도권 투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안이 이 자리의 주요 안건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뒤이어 <연합뉴스>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설비 투자를 호남 및 충청권으로 신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반도체 특별과외>를 통해 수차례 "수도권에 추가로 반도체 산단을 지을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저로서는 "호남에 첫 반도체 공장 설립 추진"이라는 기사 제목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기사 내용을 자세히 보니 두 회사가 호남권에 지을 가능성이 있는 공장은 반도체 팹(FAB)이 아니라 반도체 패키징(Packaging) 공장이라고 합니다. 이는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온전히 만족할 만한 소식은 아닙니다.
세계적인 패키징 기업, 이미 호남에 자리 잡고 있어
오늘 <반도체 특별과외>에서는 반도체 팹과 패키징이 어떻게 다르며, 왜 호남에 지어야 할 핵심 시설이 패키징이 아닌 팹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반도체 제조는 크게 '전공정(Front-end)'과 '후공정(Back-end)'으로 나뉩니다. 전공정은 둥근 실리콘 웨이퍼 위에 나노 단위의 미세한 회로를 찍어내고, 깎고, 덮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전공정을 진행하는 곳을 반도체 팹이라고 부릅니다. 먼지 한 톨까지 관리되는 클린룸에서 한 대에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장비들이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겨 넣습니다. 막대한 전력과 물이 필요하며, 반도체의 핵심 성능을 결정짓는 기술의 집합체가 바로 팹입니다. 요즘은 이 팹 하나를 건설하는 데만 50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반면 후공정은 전공정을 마친 웨이퍼를 낱개 칩으로 잘라내고(다이싱), 기판과 연결한 뒤 외부 충격이나 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포장(패키징)하는 과정입니다. 회로를 얇게 새기는 전공정 기술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칩을 수직으로 쌓거나 여러 칩을 이어 붙이는 첨단 패키징 기술이 반도체 기업의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패키징 등 후공정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 : 반도체 후공정 외주 기업)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팹에서 사용되는 장비에 비해서는 비교적 가격이 낮아, 패키징 공장 건설에 필요한 비용은 대략 5조 원 정도로 팹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수도권에 이미 수많은 반도체 팹이 있고 용인 산단에도 여러 팹이 들어설 예정이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팹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세계 유수의 패키징 전문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OSAT 분야 세계 1위인 대만의 ASE는 경기도 파주에 'ASE 코리아'를 운영하며 전장용(차량용) 반도체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세계 2위인 미국의 '앰코 테크놀로지'는 아남반도체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현재 광주광역시에 대규모 사업장을 운영 중입니다. 특히 앰코는 국내 사업장에서만 매출 규모가 5조 원 수준에 달할 만큼, 호남은 이미 세계적인 후공정 생태계와 인프라를 경험한 지역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을 패키징 기지로 검토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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