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2일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전두환 신군부에 맞선 농성 결의가 몇 시간 만에 뒤집혔다. 학과 선배는 해산을 막으려 했다. 유시민 당시 총대의원회 의장은 그 선배에게 "목숨 부지하십시오"라고 말하고 떠났다. 이 장면을 직접 겪은 사람은 이선근 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이다. 유시민 작가의 서울대 경제학과 74학번 선배이자 1981년 학림사건 피해자다. 이 전 본부장은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군대 온다는 말에 울며 흩어진 학생회관
이 전 본부장에 따르면 그날 서울대 총학생회는 학생 전원이 학생회관에서 농성하기로 결의했다. 전두환에 반대하는 농성이었다. 그런데 결의 몇 시간 뒤 해산이 결정됐다. 당시 총학생회장은 심재철, 총대의원회 의장은 유시민이었다.
이 전 본부장은 바깥 약속에 나갔다가 농성에 합류하려고 학교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학생들이 울면서 밖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붙잡고 물으니 군대가 들어올 것 같아 해산하기로 결의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학생회관에 가 보니 유시민 의장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 전 본부장은 그 표정을 "아주 자랑스러운 얼굴, 보람 있는 얼굴"로 기억했다.
그는 지금 해산하면 안 된다며 둘이라도 남아 농성하자고 했다.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다는 말도 했다. 유 의장의 대답은 짧았다. "목숨 부지하십시오." 그러고는 그대로 떠났다고 한다. 유 의장은 해산 결의의 이유를 그때도, 그 뒤로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 전 본부장은 당시 전두환이 이미 두 번 쿠데타를 했다고 봤다. 집권을 막을 길은 학생들의 장기 농성뿐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돌아와 보니 군인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 전 본부장은 보안사가 흘린 역정보에 지레짐작으로 놀라 도망간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학생들 사이에서는 총학생회장단이 물러나라는 요구가 터졌다. 이 전 본부장은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이 나서서 총학생회를 감쌌다고 기억했다. 퇴진 요구가 가라앉자 학생들은 다시 서울역으로 나갔다. 사흘 뒤인 5월 15일, 서울역에 모인 학생들은 해산을 결정한다.
유 작가는 서울역 회군 당시 자신은 반대했다고 설명해 왔다. 이 전 본부장은 이 대목을 두고 "그게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는 "5월 12일도 그랬고 5월 15일도 그랬다"며 지도부에 투쟁 의지가 없었다고 했다. 당시 서울대 학생운동 지도부에는 "내 목숨이 먼저라는 사고"가 있었다는 말도 했다. 학생들이 끝까지 맞섰다면 "광주에서 그렇게 처참한 건 일어나지 않았겠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유 작가는 닷새 뒤인 5월 17일 밤 학생회관에서 연행돼 두 달 가까이 영장 없이 갇혔다. 취재진은 유 작가에게 카카오톡으로 이 전 본부장을 기억하는지, 목숨 부지 발언이 사실인지 물었다. 유 작가는 메시지를 읽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그때 결정이 지금도 옳다고 보는지 묻는 추가 질문도 나중에 읽었지만 답이 없었다.
진술서 끝에 적힌 1980년 6월 12일
김어준씨는 지난 6월 다스뵈이다에서 유 작가를 "40년 만에 탄생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20대의 유시민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도 곁들였다. 유 작가의 설명은 이와 다르다. 그는 2019년 5월 알릴레오에서 학생회 간부를 맡을 때 이미 준비가 돼 있었다고 했다. 잡혀가면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낼지 미리 다 얘기가 돼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합동수사본부에서 쓴 진술서를 두고 심재철 전 의원은 2019년 유 작가가 77명을 적었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은 공개된 진술서 전문의 이름을 하나하나 셌다. 학생·복학생이 40명 안팎, 교수·관료·정치인이 10명 안팎이었다. 이 진술 때문에 누가 수배되거나 처벌받았다는 기록도 공개된 적이 없다. "77명 밀고"는 지금 공개된 자료로는 입증되지 않는다. 진술서에 비밀조직 이름이 없다는 점도 유 작가의 설명과 맞는다.
어긋나는 것은 작성 시점이다. 유 작가는 같은 방송에서 공개된 진술서를 "최소한 7월 중순 이후에 쓴 걸로 보인다"고 했다. 심재철 전 의원이 6월 30일 붙잡힌 뒤 다시 쓴 것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진술서 끝에는 "1980. 6. 12"라는 날짜가 적혀 있다. 심 전 의원이 연행되기 18일 전이다.
진술서에는 이해찬 당시 복학생 대표에 관한 대목도 있다.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이 진술서는 영장 없는 구금 속에서 쓴 문서다.
조국 앞에서 접힌 잣대
2019년 7월 유 작가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를 높이 평가했다. 청와대 참모까지 예외 없이 법을 집행할 사람이라고 했다. 두 달 뒤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수사하자 말이 바뀌었다. 그는 이를 "위헌적 쿠데타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유 작가는 지난 6월 다스뵈이다에서 그때 왜 나섰는지 직접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장관 임명 여부를 묻자 진영이 무너진다며 임명을 권했다는 것이다. "진영을 결속해야 6개월 후에 총선을 치를 수가 있습니다"라는 말도 했다. 이 통화 내용은 유 작가 본인의 설명이며 문 전 대통령 쪽 확인은 없다.
구속영장 잣대도 달랐다. 2017년 3월 유 작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풀려나면 말을 맞출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냥 영장 발부해야 맞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2019년 9월에는 정경심 교수 영장 발부 확률이 "정상적인 국가에서라면 0%"라고 했다. 한 달 뒤 법원은 증거인멸 염려를 이유로 정 교수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의 원래 최대치를 설명했다. 법무부 안에서 수사 검사와 기소 검사를 나누는 안이었다. 나흘 뒤 유 작가는 미디어오늘에 나와 "그런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국민을 속인 거예요.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노무현재단 특집 대담의 사회자는 유 작가였다. 그 자리에서 당시 이재명 후보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법무부 안에 있든 어디에 있든" 두 기관을 나누는 게 맞다는 말이었다. 유 작가는 이 답에 공감을 표했다.
다만 그 대담에서 이 대통령이 "최대치"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다. 대선 공약은 수사·기소 분리였다. 실제 통과된 정부조직법으로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생겼다.
김대중에게 "하야", 서거 뒤 이희호 여사에 사과
현직 대통령을 향한 날 선 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9년 12월 유 작가는 동아일보에 칼럼을 썼다.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기대를 이제 온전히 접었습니다"라고 했다. 2002년 5월 경향신문 칼럼에서는 아들들 비리의 "근본적인 책임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있다"고 했다. 그해 여름 오마이TV 인터뷰에서는 "제가 대통령이면 하야해요"라고 말했다. 대통령 자리에 있지만 실제로는 비서들이 통치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5년 뒤 그의 기억은 달라져 있었다. 2007년 8월 유 작가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에 나섰다. YTN 대담에서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전망한 적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답했다.
사과는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나왔다. 2010년 5월 24일 유 작가는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그는 시사평론 시절 몇 차례 비판한 일이 "늘 마음에 걸렸다"며 "사과말씀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당시 유 작가는 9일 뒤 선거를 앞둔 경기지사 후보였다.
말을 거둬들인 시점마다 선거가 있었다. 유 작가는 2020년 4월 17일 알릴레오에서 4년 전 총선 때 방송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다. 민주당의 부탁을 받고 새누리당이 180석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였다고 했다. 그날 그는 정치비평 중단을 선언했다.
그 고백은 누가 캐내기 전에 유 작가 스스로 한 것이다. 지난달 대통령 배후 의심을 꺼낼 때도 그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죠"라고 덧붙였다. "국민을 속였다"는 말에는 그런 단서가 없었다. 비평을 그만두겠다던 그는 지난 6월 다시 비평에 나선 이유로 "1년 10개월 후에 총선"을 들었다. 46년 전 학생회관 계단에서 선배에게 남긴 말에 대해서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
유 작가의 40년 발언 403건은 유시민 발언 검증 자료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언마다 날짜와 출처를 붙였고, 영상이 남은 발언은 말한 시각부터 재생된다. 1985년 항소이유서 원본과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 회의록도 함께 실었다. 자료실 주소는 https://newtamsa.org/p/yoo-archiv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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