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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없이 ‘상처’만 계승한 가톨릭 병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2/28 10:51
  • 수정일
    2013/12/28 10:5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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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C 해고자 복직, 어떻게 풀 것인가 - 1]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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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27 14: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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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반포동에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산하 서울성모병원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지난 1월,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와 노력해야 할 실천들을 제안하면서, 가톨릭중앙의료원(이하 CMC) 해고자 복직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기사 ‘가톨릭중앙의료원 해고자 복직, 치유의 시작이다’ 참조)

그 후 1년여, 5명의 CMC 해고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답은 ‘없다’. 지난 1년간, 해고자들을 비롯한 연대단체들은 매주 촛불집회와 1인 시위, 다각적인 대화 시도 등을 통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측에 복직을 호소해왔지만 2013년을 닷새 남겨둔 현재,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남게 됐다.

사실상 해고자 5명의 복직은 법적 차원이라기보다 인간적 차원의 문제다. 이들은 2002년 고등법원까지 갔던 해고 무효를 위한 소송에서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다른 조합원들의 복직 문제를 우선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법정 싸움보다는 대화와 교섭으로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02년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이들의 해고는 법적 근거를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터와 삶의 근간을 잃은 채 지낸 10년의 시간은 파업의 대가로 충분하지 않았느냐는 것, 이제는 이들에게 일터를 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이 사태를 지켜본 이들의 의견이다.

김영숙 · 이숙희 · 박기우 · 한용문 · 황인덕 씨. 이들이 해고자로 살았던 시간은 이제 해가 바뀌면 13년째 해를 맞는다. 그러나 이들의 복직 가능성에 대한 예상은 여전히 분분하다. 가톨릭교회를 잘 알고, 겪어본 이들일수록 “복직은 쉽지 않을 것이며, 교회가 해결을 하려고 하더라도, 복직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받은 상처란 ‘모욕감’이다. 217일의 파업이 끝날 때까지 의료원 측은 단 한 차례도 협상에 나서지 않았고,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회유와 협박, 공권력 투입 등 극한의 갈등 상황을 야기했다. 양측의 관계는 악화 일로로 치달았고, 이에 대해 거세게 항의할 수밖에 없었던 조합원들은 교도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인식됐다. 물론 노조 측도 이에 대해 “우리에게도 잘못은 있다. 우리가 다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복직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 지난 8월,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 자리 잡고 있는 서울 서초동 서초평화빌딩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복직을 호소하는 가톨릭중앙의료원 해고자들 ⓒ정현진 기자

 

성직자 권위주의, 노동조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상처’

인간적인 호소에도 불구하고 다섯 명의 해고자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교회가 받았던 ‘상처’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성직자 권위주의’에 있다. 다른 의료원과는 달리 가톨릭 의료원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책임자의 위치에 있으며, 경영과 운영상 ‘교계제도’의 특성이 반영된다. 노동자, 노동조합이 병원 경영을 위한 동반자로 인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는 ‘교도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다. 교회와 기업의 상(像), 성직자와 경영자의 입장이 혼재된 것이다. 당시 CMC 노조가 교섭이나 파업 과정에서 특히 힘들었던 일의 하나로 꼽는 것도, 의료원 관리자였던 사제들이 “어떤 때는 경영자로, 어떤 때는 사제로 입장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직자 권위주의는 병원과 노조의 대립을 선악구조로 인식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극단적 갈등 상황을 야기했다.

두 번째는 노동, 노동조합, 연대투쟁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부재다. 교회의 왜곡된 노동관은 파업 당시 발표된 서울대교구의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노사 간에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인 힘을 앞세워 자신들의 불법 부당한 주장을 관철하려는 노동조합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하여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였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불법 파업을 통해 환자들을 기만하고, 국민 불편을 가중하며, 법질서를 무시한 그 동안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병원 경영을 악화시키고, 한국 의료발전을 저해하며, 국민보건의 백년대계를 위태롭게 하는 불법 파업을 즉각 중단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올바른 노사문화 정착에 적극 동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02년 10월 6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

이 발표문에 따르면 노동자는 병원 운영의 동반자가 아니며, 노동조합은 환자를 볼모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불법 부당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 무력화해야 할 대상으로 드러난다.

또 의료원 측이 가장 비판했던 것은 보건의료노조의 연대활동이었다. 당시 보건의료노조에 대해 병원 측은 성명서를 통해 “노조 조합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노조 집행부가 주도하는 병원 파괴행위이며, (보건의료노조는) 일터를 파괴하러 온 외부 사람들”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이런 태도는 과연 교회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일까? 가톨릭교회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조의 역할, 노동자들의 연대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정당한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은 상대 집단 특히 고용주들에게 대항하는 최종 수단으로서 파업 또는 작업 중지가 있다. 이 방법은 올바른 조건과 정당한 한도 내에서는 합법적인 것이라고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은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자들은 파업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따라서 파업에 참여했다고 하여 어떠한 개인적인 처벌이나 규제를 받아서는 결코 안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노동하는 인간> 20항)

또 상급단체나 연대투쟁을 불온시하는 노조관에 대해서 <새로운 사태> 14항과 <노동하는 인간> 8항 등은 “자본가에 비해 노동자가 열악하고 불리한 처지에 있음”을 인정한다. 또 <어머니요 스승> 97항은 “자기 기업의 범위를 넘어 또 국가의 모든 계층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며 적어도 시의적절한 일”이라면서, 노동의 힘이 자본에 미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양자의 힘은 비대칭적 관계에 있으므로, 노동자들 간의 단결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이른다.

 

   
▲ 지난해 5월 ‘가톨릭교회와 병원, 그리고 노동’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 때 전시된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 당시 사진. 2002년 9월 11일 새벽, 강남성모병원 성당에서 연행되는 조합원들의 모습이다. ⓒ정현진 기자

 

“교회만 상처 받았나? 상처 앞세워 해고 문제 덮을 수 없어”

적어도 CMC 사태를 두고 보면, ‘노동권’을 둘러싼 교회와 가톨릭중앙의료원 노동자들의 입장이 명백히 달랐고,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는 CMC 해고자 5명의 복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노동관과 가톨릭 사업장 노동자들의 입장이 대립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교회가 말하는 ‘상처’, 노동자와 교회가 서로 주고받은 상처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CMC 문제를 지켜봐 온 서울대교구의 A 신부는 “상처받은 이가 먼저 용서해야 한다”면서, 교회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교회가 받은 상처가 무엇인가” 하고 되물으며, “그 상처를 내세우면서 5명을 해고한 것으로 교회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상처를 받았다면, 노동자들 역시 상처를 받았다. 오히려 교회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노동자들의 상처가 더 클 수도 있다”면서 “가치관과 입장이 확연히 다른 두 집단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상처를 앞세워 노동, 경영, 윤리의 문제를 덮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B 신부는 “현재 교회는 당시의 책임자가 없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상처’만 계승하고 ‘책임’은 계승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지적하며 “10년간 삶의 터전을 잃고 살아왔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치러야 할 것을 치렀다고 본다. 인간적으로 해고자들의 호소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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